양성관
동아시아
2023년 10월 12일
나는 땀 흘려 번 게 아니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복권이고 주식이고 해 본 일이 없다. (주식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예외적으로 딱 한 번 주식을 산 일이 있었는데, 회사가 주가 방어한다며 직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직원으로 회사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마침 받았던 보너스를 안 받은 셈 치고 털어 넣었다. 다행히 회사 주가가 회복되어 아주 짧은 기간에 투자한 돈의 세 배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식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 일로 영영 이별이 되었다. 세 배가 될 수 있다면 세 토막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설인가 과음으로 탈이 났던 일이 있었다. 인사 갔던 집마다 내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먹다가 사단이 난 것이다. 다음날 온종일 게워내고 게워내도 멈추지를 않았다. 물만 먹어도 게워내고, 그러다 보니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주사를 맞는데, 맞고 나서가 아니라 맞으면서 증상이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그것이 모르핀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주식 투자나 모르핀이었지만 그것의 놀라운 성과를 경험하고서 오히려 그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고, 그래서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산다. 아마 이런 설명에 내 논리 구조를 의심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마약은 그 놀라운 효능 때문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 줄 안다. 놀라운 효능 때문에 금단 현상이 지독하고, 금단 현상 때문에 헤어 나오지 못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마약의 가장 큰 폐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뇌와 신경의 구조를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마약은 감정이나 동기와 관련된 변연계, 그리고 기억력과 사고력과 충동을 조절하는 뇌에서 가장 중요한 전두엽에 손상을 가하며, 그래서 마약을 하면 불쾌감이나 우울증이 찾아오고 충동 조절이 안 되고 판단력이 저하되며, 마약을 장기간 사용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단 현상에도 불구하고 마약을 끊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마약 하는 일 자체가 비가역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약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니 내가 마약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
저자는 마약 끊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한다. 마약 하는 사람 중 92퍼센트가 마약을 끊기로 결심하지만, 1년 이상 마약을 끊는 데 성공한 사람은 36.9퍼센트이며, 이것조차 전문적인 치료를 받았을 때이다. 또한 어떤 이는 죽어서야 약을 끊을 수 있다고도 말하기도 하며, 치료나 도움 없이 혼자만의 의지로 끊는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고도 말한다. 약을 끊으려면 약과 관련된 모든 상황과 장소와 사람을 끊어야 하기 때문인데, 마약 중독자에게 남은 사람이라곤 마약과 관련된 자들뿐이다. 더욱이 금단 증상과 우울감에 지루함까지 괴롭힌다. 제대로 된 직장이나 모아둔 돈도 있을 리 만무하다. 새로 시작하려는 삶조차 쉽지 않다. 이래저래 마약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대검찰청이 2023년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를 인용하며, 중독을 제외하면 호기심과 유혹이 가장 많았다고 설명한다. 뜻밖에도 치료나 강압 때문에 마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조사에서도 호기심이 66.7퍼센트, 다른 사람의 권유가 60.6퍼센트에 달했다고 보고되었단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나를 보더니 한 모금 빨아보라고 권했다. 짐작 가는 게 있어서 면박을 주고 일어섰는데, 아마 그때 호기심에 한 모금 빨았더라면 거기서 빠져나올 때까지 적지 않게 고생했을 것이다. 그 친구가 그랬거든. 사실 대학 가기 전부터 담배를 피웠던 터라 한 모금 빠는 게 그다지 낯선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내 짐작이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저자는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1년 동안 대마초를 피울 확률이 무려 10배, 매일 대마초를 피울 확률이 무려 25배 높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번 마리화나를 피우다 보면 마약을 한다는 불안감도 서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고 달랐겠는가.
저자는 많은 약물 중독자들은 스스로 중독을 깨닫거나 인정하지 않는데, 심지어 법으로 치료보호를 받는 사람조차도 10명 중 3명은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디 마약 중독자만 그런가, 모든 중독자가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니 중독이 무서운 것이고. 우리는 마약 사범이 주로 연예인이나 재벌 2세인 줄 알지만, 사실은 마약 사범 대부분이 무직자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난은 만성 통증처럼 마약에 중독될 확률을 높이는데, 여러 연구에서 가난과 마약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마약 투약자 중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비율은 54.4퍼센트에 이르는 데다가 한 달 수입이 50만 원 미만이 비율은 52.2퍼센트에 달한다. 가난해서 마약을 하고, 마약을 하나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마약이 처음부터 마약이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고대 잉카제국부터 많은 이들이 마약성 식물인 코카 말린 잎을 씹으면서 배고픔을 달래고 피로를 풀었다. 마추픽추 같은 어마어마한 유적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코카 잎이었는데, 그런 코카 잎을 이용해서 만든 음료가 코카콜라다. 제약회사 머크는 1885년 코카 정제에 성공해 코카인을 만들었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은 모르핀에 약간의 화학적 변형을 가해 모르핀보다 몇 배나 강력한 헤로인을 만들었고. 헤로인은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어도, 통증 부위에 상관없이 모든 통증을 마법같이 사라지게 했다. 헤로인을 탄생시킨 바이엘은 헤로인을 ‘모르핀보다 안전하고 중독성이 없는 약’으로 광고했다. 심지어 당뇨부터 고혈압, 딸꾹질까지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고 선전했고, 유아에게도 사용했다. 하지만 장점만 있고 단점이 없는 약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아편은 약인 동시에 독이었다. 펜타닐을 약으로 가장 먼저 개발한 사람은 제약회사 얀센을 세운 폴 얀센이다. 펜타닐은 1959년 폴 얀센이 개발한 마약성 진통제로, 1981년 특허가 풀린 후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1941년에는 일본의 다이닛본 제약에서 필로폰이라는 이름으로 메스암페타민 성분의 피로 회복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물론 제약사가 처음부터 사악한 목적으로 이런 약품을 개발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선의로 개발한 것이 악용된 것인데, 그중에는 그런 문제를 알고도 제조를 계속하고 오히려 사업을 확장한 기업도 있었다. 그것은 문제를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을 만큼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었다.
상품으로서의 마약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이윤이 어마어마하기에 수많은 이들이 해롭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약 산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마약이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해서 부유한 나라로 팔린다는 것이다. (코카인은 콜롬비아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이나 유럽으로, 헤로인은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유럽과 호주로, 히로뽕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밀반입된다) 콜롬비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북한과 같은 마약 제조국에 이를 대체할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마약 사범에 관한 기사에 투약 사실을 감추려고 머리카락을 포함해 모든 털을 밀어버리고 손톱 발톱을 다 깎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하지만 그게 소용이 없는 것이, 마리화나나 필로폰이나 코카인은 소변에서 1주일까지 검출된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마약 투약은 다 잡힌다는 것보다는 그 약이 그렇게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된다는 사실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러니 마약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시작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발간될 때부터 읽겠다고 꼽아놓은 책이고, 그래서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놓았다. 그렇게 두 해 가까이 묵혀놓았다가 이제 전자책으로 읽었다.
마약에 관한 내용을 교양서에 맞게 일반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흔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책에서 느끼는 딱딱함이나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대단히 흡인력이 있는 문장이었다는 말이다. 저자의 저서를 찾아보니 단독 저서가 무려 일곱 권에 이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마약 하는 사람, 마약 파는 기업 측면에서 마약을 살피고 있다. 모두 흥미로운 주제고, 덕분에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마약 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건 우선은 내 관심이 거기에 더 많고, 다음은 두 부분을 모두 다루자니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약 산업을 다룬 부분도 또한 흥미진진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