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찬
교유서가
2025년 8월 10일
이 책은 올해 8월 10일에 출간되었다. 나는 8월 1일 한국을 떠났고. 어디선가 신간 소개 글을 읽었다.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다렸으나 출국할 때까지 책이 나오지 않았다. 전자책 발간 알림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린 지 석 달 만에 받아 단숨에 읽었다.
간혹 전자책이 나오기를 기다린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기다려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게 만든 글이 무엇이었을까? 낯선 이름인 ‘김학찬’으로 검색하다가 그 글을 찾았다.
“2025년 2월 8일 토요일 느지막한 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김학찬 작가의 아내인데, 남편이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나면서 출판사에 꼭 돈(계약금)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장례 치르고 약속 지키겠습니다.’ 울음 섞인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전화를 끊었고, 출판사에서는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께서 산문집을 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한 달 전 대화에서는 소설집을 내고 싶어 하셨고요. 이제 아내분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차차 판단해주세요. 그간의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부의금으로 생각하고 계약금은 돌려받지 않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를 진단받은 소설가 김학찬은 그때부터 일기 쓰듯 ‘투암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제, 순서를 정하고 목차를 만드는 계획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장기적인 계획은 꿈이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쓴 것까지 남길 것인가, 한 문장이라도 더 쓸 것인가. 이제 나는 그때그때 쓰기로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투암기를 쓰기 시작한 때만 해도 저자는 삶에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는 매일 써도 일기, 매일 쓰지 않아도 일기다. 이순신도 매일 난중일기를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성실하게 일기를 쓰면서 망상을 다스렸고,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이길 수 있었다. 내게는 가끔 쓰는 투암기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하나씩 삶의 스위치가 꺼져가는 걸 확인하면서 저자는 그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쓰고, 고치고, 다시 고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시간이 없다. 시간만 없는 게 아니라 힘도 없다. ... 세차를 자주 하지 않는다. 1년에 서너 번 정도, 계절이 바뀔 때 정도.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한다고 치면, 앞으로 세차를 몇 번이나 더 할까 싶다. 마지막 세차를 하고 나서 처음 사서 2년 동안 쓰던 왁스가 떨어졌는데 새로 사는 것을 보름째 고민하고 있다. 새로 한 통을 사서 모두 쓸 수 있을까.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한 번이라도 비를 맞으면 얼룩이 남을 텐데 굳이 세차를 해야 할까. 그래도 사는 쪽을 선택한다. 새로운 제품이 나와서는 아니고, 한 번이라도 더 움직여보기 위해서.”
순간 “그래도 ‘사는’ 쪽을 선택한다”는 말이 왁스를 ‘샀다’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날을 위해 ‘살기’를 선택했다는 말로 들렸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뛰어들어 십삼 년.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쏟았던 사우디 시장에서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물건 하나 살 때마다 그가 했던 고민을 나도 했었다. 면도날 하나면 두세 달은 쓰는데, 낱개를 살까 할인해주는 팩을 살까. 돌이켜보니 운전면허 갱신할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갱신 기간을 짧게 잡았다가 그 시간을 넘겨 그 귀찮은 일을 다시 하며 후회했지만, 결국 면도날은 낱개를 사고 말았다.
내가 면도날 낱개 사는 걸 고민한 것과 그가 왁스 사는 걸 고민한 걸 비교한 게 어이없어 보이는가? 그때는 그게 사회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삶을 실패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사회적 죽음이었으니 실제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다.
“필수적인 연락에는 안부가 없다. 기계적인 일은 여전히 처리하고 있다. 기계적인 일조차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내 비밀을 아는 사람의 안부에는 답을 한다. 답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걱정할 것이다. 그들의 안부는 고맙고, 귀찮고, 괜히 알렸다 싶고, 간절하고, 미안하다. 더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이미 진실을 알린 걸로 충분히 미안하고 후회하고 있다. 유일하게 누나만 마치 내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연락한다. 처음을 제외하면 누나는 내가 말할 때까지 병세를 묻지 않는다. 여전히 일상을 이야기하고 조카 사진을 보내온다. 그러나 누나는 만날 때면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하고, 헤어질 때면 한 번 안고 사라진다. 병원 검진 결과를 알리면 아직까지는 더 나쁜 소식은 아니므로 누나는 운다. 누나에게만 고충을 털어놓는다. 미안하지만 한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미안하지 않다. 아직도 엄마에게는 투암을 알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2년 동안 짝을 하고, 같은 과를 졸업하고, 은퇴할 때까지 같은 업계에서 일한 친구가 있다. 오십 년도 넘은 친구다. 어느 날 암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귀찮다고 내시경을 피하다가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다. 나도 마지막 숨 고르기 하던 형편이어서 그를 찾아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저 항암 치료일을 적어놓고 기도하는 일,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다. 항암 치료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하고 서너 번 만에 치료를 중단한다고 했다. 몸이 견디지 못하니 몸부터 회복한 후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때쯤 상황을 수용한 게 아닌가 싶다.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얼마 후 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 전화라니까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단다. 그러고 다음 날 그는 별이 되었다.
그가 별이 되고 채 한 주일이 지나기 전에 야반도주하듯 귀국해야 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서둘러 올 걸, 서둘러 왔으면 얼굴은 보고 떠나보냈을 텐데 싶은 마음에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돌아와 제일 먼저 그의 유택을 찾았다. 아담한 소나무 밑에 묻힌 그의 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 끝에 못 만나기를 잘했다, 왔어도 안 보겠다고 했겠다 싶었다.
저자는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끝내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는다. 오십 년 친구라 해도 핏줄만큼 가깝기야 하겠나만, 마지막 통화가 될 수 있었던 전화를 받지 않은 내 친구의 마음이 어머니에게까지 알리지 않았던 저자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가 항암 치료로 분투하는 몇 달 동안, 오십 년 넘게 나눴던 이야기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하고, 기도하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글을 읽어가면서 저자가 가족 이야기를 한 건 누나와 있었던 짧은 글 한 토막뿐이었다. 결혼은 했는지 궁금할 때쯤 아랫글을 읽었다.
“아내가 계속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두 해 슬퍼하는 것으로도 길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므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사랑이다. 나는 투암기에서 아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투암기를 쓸 수가 없다.”
책 말미에 아내의 글이 실렸다.
“내가 울면 자기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1년 반 동안 각별히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집에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남편이 남긴 유고 에세이를 읽지 못했다. 남편의 에세이에 나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딱 한 문장 ‘아내를 생각하면 글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 한 줄이 그의 가장 큰 사랑이라고 느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양가 부모님께 투병을 끝까지 알리지 않은 그 사실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남편의 마음이 편한 쪽이라면 다시 또 그 선택을 할 것이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무척 죄송스럽지만, 남편도 나도 잘못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덧붙일까. 모두 사족일 뿐이다.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어서 저자 이름을 듣고도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는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했고, 전태일 문학상, 최명희 청년문학상과 같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의 미묘한 결을 포착하는 작품들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는 그의 작품은 고사하고 그의 이름을 들어본 일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읽어 보리라.
그런데 저자의 삶은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경제활동을 원고료에 의지한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접자. 1년에 한 번 엔진 오일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몇 장의 원고지가 필요할까.”
저자는 암 환자가 된 후로 화가 나지 않는데, 그건 일상생활에서는 더 이상 화가 생길 이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어떤 상황이라도 암 환자가 된 것보다 화를 부를 수는 없으니까, 어떤 일도 투병보다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니까 그렇다고 했다. 그런 그가 엔진 오일을 교환하기 위해 원고지 몇 장을 채워야 하는지 고민한다.
투병하다 별이 된 작가들의 글을 모아 유고집을 발간하는 건 몇 차례 본 일이 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날짜를 받아놓고 자신이 글의 실물(책)을 볼 확률이 낮다면서 쓴 투병기를 읽어 본 일은 없다.
나이 탓일 것이다. 자식보다 젊은 나이에 별이 된 이의 글을 읽으면서 울컥거리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은. 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 까닭일 것이고. 우리나라 평균 수명까지 십이 년 남았단다.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진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변명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