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창비
2023년 6월 23일
아마 차장 때였을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사한 직원이 하나 있었다. 면접 때 인상이 깊었고, 입사하고 나서도 기대했던 대로 매사에 긍정적이고 열심이었다. 뭐든 가르치는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뭐 하나 새로운 걸 가르쳐주면 새롭게 안 것 때문에 얼굴이 활짝 펴지곤 했다. 그러니 누군들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을까.
어느 날 그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 또래 직원이 면담을 요청하는 건 그만두겠다는 한 가지 이유뿐이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친구만은 붙들 자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교만하기 짝이 없지만, 늘 배우고자 하는 그를 다른 어떤 누구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첫 마디를 듣고는 두말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연구소를 가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잘 가르칠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연구소와 경쟁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록 3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연구소에 근무하는 동안 졸업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큰 신세를 졌는데, 당신을 가르쳐서 연구소로 보내니 이제 그 신세는 갚은 셈이다.”
그 후로도 공들여 가르치고 그렇게 떠난 보낸 후배가 몇 더 있었다. 그 친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 모두 자기 몫을 잘 감당해서 아무개와 같이 일한 친구라면 묻지 말고 채용해도 된다는 소문이 날 정도여서, 훗날 그 섭섭함을 모두 덜 수 있었다.
며칠 전, 어느 소설 한 부분을 인용한 글이 올라왔다.
“내가 대리 달기 직전 즈음 입사했던 지민이. 진짜 똘똘한 애였는데 너무 똘똘해서 그런지 경쟁사에서 날름 데려가 버렸다. 내가 대리 3년 차일 때 부사수로 만났던 이유나. 눈에 띄게 잘하던 친구였는데 2년 잘 다니다가 느닷없이 옆 팀 과장과 결혼한다면서 청첩장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산휴가를 냈고 출산휴가가 끝나갈 즈음 사직계를 썼다. 얼마 전에 그 남편이 둘째 돌잔치를 했다면 돌리는 떡을 받아먹은 기억이 있다. 또 다른 부사수였던 최은서. 맞아, 은서도 진짜 빠릿빠릿했지. 대리를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사하더니 미국으로 MBA를 갔고, 거기에 눌러앉은 것 같았다. 몇 년 후 페이스북에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지는 사진이 올라왔고 그 후로도 계절마다 다른 보스턴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종종 올라왔다. 사진에 등장하는 식구들이 매년 늘어갔다. 나는 그 사진 속 모든 것들이 가끔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부러웠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던 공채 신수연. 애를 어떻게 잘 키워볼 생각에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게 즐거울 지경이었는데 입사 두 달 되었을 때 회장이 콕 집어 수행비서로 데려갔다. 발령 전날 수연이는 나를 따로 부르더니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내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3년 뒤에 꼭 우리 팀으로 다시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째에 퇴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별이. 내가 정말 예뻐하던 한별이. 한별이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그때 난 차장을 단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한별이와 함께 새로운 TF를 막 꾸린 참이었다. 그래서 한별이의 퇴사 의사를 처음 들었을 때 여느 때보다 큰 충격을 받았는데 뒤이은 그 애의 퇴사 사유가 더 내 가슴을 후벼팠다. 수능을 다시 봐서 교대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기는 원래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정말이냐고, 정말 그것 때문이냐고 물었고 그 애는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에 교육자라는 꿈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수능을 다시 본다고 했다. 수능을. 그건, 인생을 그렇게까지 리셋하고 싶을 정도로 이곳이 싫다는 말이었다. 내가 데리고 있던 애가 그런 마음을 내내 품고 있었다는 말이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론 자존심이 상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메시지를 보내봤다. 그 애의 마음을 되돌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나라도 그 결정으로 돌이키진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알고 싶었다. 여기가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싫었는지. 수정하고 개선할 여지가 있을지. 솔직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는 끝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진 않았다. 여기가 싫은 게 아니라고. 자긴 원래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하고 오래전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고.”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애의 집 근처 카페에서 그애를 기다렸다. 천의 얼굴에서 이차를 마치면 내가 늘 택시로 내려주고 손을 흔들던 곳이었다. 너희 집 근처 그 카페야. 이제 퇴사도 했으니까 한 번만 툭 터놓고 만나주지 않을래? 기다릴게. 그 애가 나타났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맹세컨대 나는 연애하면서도 이런 추태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 미안. 내가 같이 잘하고 싶었던 친구들이 다 떠나니까. 속상해서. 그냥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혹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수는 없을까. 그 애 한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차장님, 저 차장님은 정말 좋았어요. 반대 방향인데도 늘 택시 같이 타고 저 먼저 여기 내려주신 것도 고마웠어요. 차장님. 저, 전문직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거기서는 미래가 안 보였어요.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니. 네 미래가 될 수 없었던 내가 죄송하지.”
조직 생활 17년 차에 접어든 어느 여성 간부의 독백이었다.
글 올린 분께 출처를 물어 바로 전자책을 내려받았다. 읽으면서 바로 감정이 이입되었고,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유리 천정이 존재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저자는 후배에게 미래가 되어줄 수 없었던 주인공의 절망을 어떻게 그렸을까? 주인공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저앉고 말았을까, 아니면 끝내 극복하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더 큰 성장을 이루어 나갔을까? 여성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그 심리와 상황을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주제가 아니었다. 장류진 작가의 단편집 <연수>에 실린 <공모>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허망하게도. 그렇다고 다른 단편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나 에피소드가 되풀이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읽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