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산을 오를 때 위를 쳐다보면 힘만 더 든다. 그럴 땐 그저 발끝만 보고 걸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른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운가? 그러면 어떻게든 하루만 견뎌라. 괜히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힘든 걸음 더 맥 빠지게 하지 말고. 내일도 그렇게 하루만 견디고. 마치 발끝만 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는 것처럼 말이다. (1997.05)
청나라 청언집인 유몽속영에 “눈의 아름다움은 쌓이는데 있고, 구름의 아름다움은 머물지 않는데 있으며, 달의 아름다움은 찼다가 이지러졌다가 하는데 있다(雪之妙在能積, 雲之妙在不留, 月之妙在有圓有缺)”고 아름다움의 참뜻을 헤아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인생의 아름다움은 고개를 넘는데 있다.(人生之妙在登嶺)”는 말을 덧붙였으면 싶다. (1997.11)
터널을 지날 때 갑갑하다고 해서 도중에 뛰어 내려서는 터널을 벗어날 수 없다. 터널을 벗어나기는커녕 무고한 목숨만 잃게 될 뿐이다. 이럴 때는 터널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게 옳다. 무한정 긴 터널은 없기 때문이다. (2003.01)
시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험을 피해서도 안 된다. 시험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다. 시험은 극복하고 나면 더 이상 시험일 수 없지만 시험을 피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다시 시험을 만났을 때 그 시험은 여전히 시험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은 극복해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 (2003.01)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failing forward’라는 말이 있다. ‘실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실패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실패는 전진의 원동력이라는 말이 아닌가. 현명한 판단은 쓰라린 경험에서 나오고 쓰라린 경험은 현명하지 못한 판단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그 실패는 젊은 날 하는 것이 좋다. 나이 들어 실패하는 것은 추해 보이니 말이다. (2004.03)
빛이 강할수록 그늘이 짙어지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런데도 강한 빛을 구하는 사람치고 그늘이 짙어지는 걸 각오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그럴듯한 모습으로 괜찮은 자리에 앉은 사람치고 사연 없고 고통 없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치른 땀과 고통은 보려고 하지 않고 그가 거둔 결실만 보려고 하니 그늘을 못 보는 건가 아니면 안 보려는 건가. 그늘을 못 보고 안 보려는 이들이 빛을 구하기 위해서 그늘을 감당할 리 없으니 그것이 염려될 뿐이다. (2008.02)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단다.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가 맺지 않는다는 말이니 열매를 기다리걸랑 꽃 진다고 서러워 말 일이다. 그런데 어디 사는 게 그런가, 열매도 따고 싶고 꽃 지는 것도 섭섭하고 그렇지. 그러니 도둑놈 심보랄 밖에. (2010.11)
실패했다는 건 뭔가를 배웠다는 것이다. 값까지 치렀으니 배운 걸 잊을 리 없고, 그러니 약도 그런 좋은 약이 없다. 그런데 그런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걸 보면 실패가 누구에게나 다 약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2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