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세월에서 얻는 지혜

by 박인식

나이든 사람이 필요한 이유


나이가 들면 세상 보는 눈이 뜨이게 마련이며 그 세상이라는 게 상식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상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상식을 바탕으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항상 잔소리 같지만 결국 잔소리한 대로 세상일이 흘러가는 건 이러한 이치에서이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1994.03)



순리


하늘이 멀리 있다 하여 만만히 볼일이 아니라는 옛말이 있듯이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운 것 같아도 결국은 순리대로 흐른다. (1995.09)



돌부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지 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 험한 산, 고생 끝에 잘 넘어왔다며 숨 돌릴 때 눈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게 인생이다. (1997.05)



죽음


죽음 앞에서 초라해진다면 일생이 거기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1998.04)



연륜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그래서 연륜을 앞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지위나 학식이나 재물 그 어느 것으로도 연륜을 앞지를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가장 첫 번째 기준이 나이인 까닭이 여기 있다. (1998.10)



전원일기


지난 달로 22년 넘게 방송해온 전원일기가 막을 내렸다. 한 방송사의 장수 프로그램이기에 앞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줬고 어른의 의미를 새삼 깨우치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드라마가 막을 내리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그 결정에 반대했고 출연진 역시 상당히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며칠 전, 그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던 아버지 역의 최불암 씨가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출연진 대부분이 그 드라마가 종영되기를 원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밝혔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극작가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차범석 씨가 대본을 썼고 뒤이어 김정수 씨가 대본을 썼는데 최근 들어 30대 작가에게로 대본이 넘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젊은 작가가 쓰기 시작하면서 극의 중심에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이 들고나는 것을 챙기고 반기는 역할 정도만 주어져 그저 드라마의 장식품에 불과한 처지까지 전락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작가가 나이든 배우들을 역할을 축소시키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칠십 노인의 눈으로 본 세상을 풀어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른을 중심으로 하는 한 가족의 삶을 풀어나가면서 세상 사는 지혜를 가르쳤던 그 드라마가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 사는 일이 그렇다. 세상은 지식보다는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2003.01)



똑똑함


똑똑하다는 게 늘 칭찬이 되는 건 아니다. 청소년이나 젊은이에게는 칭찬이 될 수 있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왠지 개운치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아 보인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똑똑함 보다는 너그러움이나 넉넉함이 더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은 아닐까? (2004.12)



아이와 어른


아이는 세상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로 나누고 어른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나눈다. 그러니 세상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로 나눈다면 나이가 아무리 들었다 해도 어른이 아니다. (2004.12)



흰머리


흰머리는 그저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흰머리 한 올 한 올에는 다 그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것이니 흰머리야 말로 지나온 삶에 대한 흔적이 아닐 수 없다. (2005.05)



세상을 보는 눈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인다. 그러나 나이만 든다고 눈이 트이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세상 보는 눈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는데도 물색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6.01)



채움과 비움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것을 비워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오래된 것을 비워내지 않은 채 무엇인가 더 채우려고 한다. 그릇은 한정이 있는데 욕심을 낸다고 더 채워지겠나? (2006.01)



정답


경험이 많다고 해도 모든 경우를 다 경험했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경험 많은 사람은 처음 마주치는 문제라고 해도 경험 적은 사람보다 훨씬 능숙하게 대처한다. 정답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상황을 경험하면서 정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2006.08)



나이가 든다는 것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면 누군가 와서 기대고 쉴 수 있는 그늘이 그만큼 넓어져야 한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어 보이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나이 값만큼 그늘을 넓혀가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하지 않겠나. (2007.04)



가뭄의 은혜


봄비가 촉촉이 내리면 그 비로 인해 기뻐할 농부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정작 농부들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봄비가 내리는 걸 반겨하지 않는다. 비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내리면 작물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데, 이는 굳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아도 얼마든 필요한 물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란 작물은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큰비가 내릴 때 힘없이 쓰러지고 뿌리가 뽑혀나간다. 그래서 농부들은 봄에 어느 정도 가뭄이 들기를 바란다. 그래야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빨아들이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리고, 뿌리가 깊으니 어지간한 바람이나 큰비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옛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 아니겠나. (2007.05)



돈 버는 일


학교 다닐 때 동아리에서 섭외부장을 맡았던 일이 있었다. 말이 좋아 섭외부장이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선배들에게 돈 얻어오는 일 뿐이었다. 그때 선배들을 만나 깨달은 건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돈 모으기 위해 돈 버는 사람보다는 인심이 후하더라는 것이다. 가진 사람이 더한다는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 (2007.06)



수지맞은 일


생각지 않았던 재물을 얻었을 때 수지맞았다고 표현한다. 수지(收支)가 맞았다는 건 글자 그대로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횡재수를 얻었을 때 수지맞았다는 표현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표현대로라면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룬 게 횡재수를 얻은 것만큼이나 좋은 일이라는 것이니 새삼 선현들의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2007.07)



가위 바위 보


가위는 바위를 이길 수 없고, 바위는 보를 이길 수 없으며, 보는 가위를 이길 수 없다. 가위는 보에게 이기며, 바위는 가위에게 이기며, 보는 바위에게 이긴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세상의 진리가 이 놀이 가운데 들어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더구나 힘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도무지 힘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헝겊에 불과한 보(자기)가 바위를 감싸 안아서 바위에게 이긴다는 것은 통쾌한 역설이 아닌가. 그러니 가위 바위 보에는 세상의 진리와 하늘의 진리가 같이 들어 있는 셈이 아닐 수 없다. (2007.12)



세상일을 판단하는 방법


세상일을 어떤 것이 내게 유익한지를 가려 판단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이 옳은지를 가려 판단할 수도 있다. 옳은 일이 유익하기도 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마는 옳기는 하지만 그것이 손해로 돌아오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 않은가. 옳은 것을 따르려면 손해가 나고 유익을 따르려면 옳은 길을 버려야 하니 그 중에서 선택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럴 때는 그저 눈 딱 감고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게 상수이다. 그것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옳은 길은 궁극적으로 유익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2008.04)



패배


지는 것도 인생이다. (2009.09)



나이가 드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을 대하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된다. 죽음을 보고도 깨닫는 게 없다면 나이는 먹지만 어른이 될 수는 없다. (2010.01)



막막함


늘 막막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인생이란 본디 막막한 것이더라.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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