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by 박인식

김영평 외

가갸날

2019년 12월 10일


요즘은 어디라, 누구라 할 것 없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 서로가 상극인 집단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면 두 집단 모두 하나 같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민주주의의 원수인 상대를 괴멸시키는 거란다. 하는 모양을 보면 두 집단이 다를 게 하나 없는데 말이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아무튼 도처에 민주주의가 넘실대는 걸 보니 지금은 가히 민주주의 전성시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지키기 위해 애쓰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그렇게 많이 이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만큼 완벽한 가치인가?


언젠가 과학자 한 분이 “과학은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무릎을 쳤던 일이 있다. 평생 업으로 삼고 있는 지질학은 어느 학문에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지닌 과학의 한 분야인데, 그걸 배우고 그걸로 평생 밥벌이하는 동안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고, 그래서 진리로 여겼던 학설이 초라하게 퇴장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인들 다를까?


나라고 정치에 관해 관심이 없겠으며 생각이 없을까. 하지만 신념에 관한 주제는 건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 여겨 생각은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글은 쓰지도 않고 그런 글에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쓸 힘이 있으면 차라리 책 한 권을 더 읽겠다 싶은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 외면이 무관심이 되고, 이젠 냉소적인 입장이 되었다. 그래도 그건 시민으로 도리가 아니지 싶어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


마침 어느 분이 시의적절하게 좋은 책을 올려놓아 덕분에 막연하게 가졌던 민주주의에 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신간인 줄 알았더니 발간한 지 6년이나 되는 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못마땅히 여겨 자기 생각을 대변하는 책을 올려놓은 것이지 싶다.


정년을 넘긴, 그리고 넘길 학자가 의기투합하여 다른 몇몇 학자와 함께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스무 개 주제를 골라 정리하였다. 이백 쪽 조금 넘는 얄팍한 분량이지만 서문부터 시작해 하나 버릴 것 없는 진수만으로 책을 엮었다. 내가 말을 보태거나 생각을 덧붙일 것 없이 쉬운 말로 너무나 선명하게 주제를 정리하였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공감한 것은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그 무엇도 보장해 주지 않으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류가 지금까지 찾아오고 실험해 온 여러 정치체제 중 가장 낫다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알려진, 그러나 아직 최종 판정은 내려지지 않은, 정치체제라고 정의한다. 마치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이라는 어느 과학자의 통찰과 일맥상통하는 정의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지는 것도 아니라고 고발한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국민을 탄압하는 나라, 법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나라가 기금도 지구상에 널렸다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실상이다.


민주주의 못지않게 전성시대를 맞은 용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국민의 뜻’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말과 함께 짝을 이루어 다수당의 무소불위한 전횡을 정당화하고 있다. 각인각색의 세상에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니, 국민의 뜻을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도대체 무엇인 국민의 뜻인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국민의 뜻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 설사 그런 것이 있다손 쳐도 과연 누가 그걸 알거나 알 수 있는가? 있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이런 뜻에서 이 말은 악용과 남용의 위험성이 아주 크다.”


저자는 이어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바로 독재자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신형 독재자들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국민의 뜻’이고 민주주의라면서, 이들이 이런 말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국민이 이런 말에 잘 속아 넘어갈 뿐 아니라 국민이 반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요즘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법부를 입맛대로 바꾸려 드는 이들 때문에 속이 무척이나 시끄러운데, 그러면서도 딱히 그걸 반박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저자는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참된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내세우지 않는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혹은 시류나 유행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기 마련인 국민의 뜻을 묻고 또 물어서가 아니라, 이미 국민의 뜻을 물어서 굳건히 세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이 헌법 체제 안에서 필요한 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삶을 이끌어간다. 즉 참된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이 아니라 법의 지배 원리의 지배를 다른다. 철저하게 법의 지배 원리에 따를 때만 국민은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물어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물어서 굳건히 세운 헌법 테두리’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 그것이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보장된다면서 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합리적 과정과 절차라고 한다면 민주적 제도와 절차에서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어떤 일방의 세력도 국민의 뜻을 앞세워 독단하거나 전횡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만든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일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 법의 지배의 원리,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든든한 둑이고 제방이다. 이 둑과 제방이 무너지고 힘을 잃으면 민주주의는 허물어지고 만다.”


법의 지배, 그리고 견제와 균형, 이 두 가지가 지켜져야 지금까지 인간이 고안한 정치체제 중 그나마 낫다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것이고. 그런데 지금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견제와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리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선출된 권력이라는 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전횡이 발간된 지 이미 6년이 지난 이 책에 마치 보고 적은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최근의 민주주의 퇴보 현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 국민은 조속한 위기 극복을 약속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에게 표를 몰아준다. 둘째, 이렇게 집권한 지도자는 쉴 새 없이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공격한다. 셋째, 집권 세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사법부 같은 독립적인 기관들의 발을 묶거나 거세한다. 넷째,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거나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국민이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어렵게 만든다.”


“선출된 독재자들은 민주주의의 허울은 유지하면서 그것의 실질은 도려내 버린다. 이들이 민주주의의 전복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하나같이 합법을 가장한다. 의회가 승인하고 사법부가 수용하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심지어 민주주의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노력인 양 비추어지기도 한다. 흔히 사법부를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거나 부정부패를 없앤다거나 선거제도를 더 공명하게 만든다는 명분이 동원된다.”


이 밖에도 스무 개 주제 하나하나를 이러한 통찰을 통해 해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거리 모두에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이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 왜 그리고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를 널리 인식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지금 소개하는 내용은 이 책 서문에 요약 서술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읽고 생각할 게 하나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구절 두어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칠까 한다. 나머지가 궁금하면 사서 읽으시라. 돈이건 시간이건 도무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다수결에 관하여. “이성적 노력을 다하고도 그럴듯한 해법을 찾지 못했을 때, 결정에 참여한 사람 중 다수의 지지를 받는 방안이 잠정적으로 더 그럴듯한 방안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다수결이다.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과 절차를 거칠 때만 다수결은 정당성을 얻는다. 하지만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임시 결정으로 본다. 실제로 틀린 선택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결정 이후에 상황이 변해 부적절한 선택으로 판명 날 가능성도 있다.”


시민단체에 관하여. “어떤 조직을 막론하고 조직은 일단 생기고 난 다음에는 조직의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마련이다. 시민단체라는 조직이 당초 설립 목적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쉽게 자행된다. 공동체 정신을 망각하고 지엽적인 이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강변하는가 하면, 정부나 사회의 문제점을 열심히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결함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화살을 막고 꺾어버리려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갈등에 관하여. “민주주의 국가들은 갈등을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 즉, 갈등은 억압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폭력으로 흐르거나 파괴로 치닫도록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복지국가에 관하여. “국가가 더 많은 복지를 책임지고 점점 더 많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국민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침해가 불가피해진다. 복지국가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이 아니다. 복지국가가 전체주의적이고 정부 주도적인 중앙계획과 통제체제로 나가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면 복지국가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은 어렵지 않다. 현대 역사는 이를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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