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by 박인식

젊은역사학자모임

역사비평사

2017년 2월 3일


아마 80년대 중후반쯤이 아니었나 싶다. 함께 근무하던 선배께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라며 몇 권을 추천해주셨다. 하나는 농림부 공무원이었던 김성호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 기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의학박사인 이상시의 <단군 실사에 관한 문헌 고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내게 이 두 권은 큰 자극이 되었다. 이중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 기원>에서 저자는 백제 시조 온조(溫祚)의 이복형 비류가 역사의 기록처럼 자살한 것이 아니라 한강 부근에서 공주로 옮겨 비류백제를 세웠으며 이 비류백제의 왕족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 천왕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경제 사회적으로 일본에 뒤떨어져 있다는 열등감을 이로써 상당 부분 상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왜 이런 주장이 사학자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왔는지 의아했다. 말하자면 사학자는 뭘 하고 있느냐는 힐난의 일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덕일의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가까이에 있어 손에 넣기도 읽기도 쉬웠고, 지금까지 알아 온 역사를 뒤집어 해석하고 있어 흥미로웠으며, 때로는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학계를 질타하고, 식민사관을 벗어난 해석으로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만 해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전3권>, <누가 왕을 죽였는가>, <사도세자의 고백>,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를 섭렵했고, 지금도 전자책 서가에는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과 <근대를 말하다>가 들어있다.


언제부턴가 <환단고기>가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2천년대 들어서였을 것이다. 평소 책 읽는 성향대로라면 당연히 읽었어야 할 책이었는데, 그 이름이 알려진 때쯤 그것이 위서라는 이야기가 같이 돌았고, 그래서 더 이상 그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이덕일이 그 주장의 핵심 인물이었던 건 알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 하나만으로 그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설득될만한 것이 있었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전 국정 보고회에서 대통령이 난데없이 <환단고기>를 거론하며 “고대 역사에 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는 발언으로 위서인 <환단고기>를 다툼을 벌일만한 역사서의 반열에 올려놓아 소란이 일어났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확산일로에 있다. 그동안 이에 크게 반응하지 않던 역사학자들이 대거 등장해 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권한 책이 바로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 펴낸 이 책이었다.


이 책에 저자로 참여한 소장 학자 중 몇몇은 이미 내게 익숙한 이름이고, 그중 기경량 교수가 진행하는 ‘역사공작단’ 팟캐스트 방송도 들은 바가 있어 이 책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환단고기> 논쟁과 관련해 추천한 책이니 당연히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증명이 주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위서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그 배경에 대한 설명에 그쳤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처음 역사에 관심을 두게 했고, 우리 역사의 웅대함을 깨닫게 했던 앞서 언급한 두 책이 혹시 이와 같은 계열의 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경량 교수 피드에 이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고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이상시의 경우 규원사화를 믿고, 환단고기를 배척하는 태도입니다. 규원사화 역시 명백한 위서이므로, 사이비 역사학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김성호의 경우는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대체로 학문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비전공자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펼친 ‘괴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역사 연구로서 존중할 만한 부분은 딱히 없습니다.”


결국 역사에 관심을 두게 만든 두 책 모두 역사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책이라는 아이러니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면서 그동안 들어보기는 했지만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쇼비니즘 Chauvinism’이 이러한 움직임의 동력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애국주의, 또는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국수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니, 요즘 말로 국뽕이 넘치는 역사 해석방법이라는 말이다. 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이비역사학’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가짜 역사학이라는 말이다.


저자들은 <환단고기>의 위서 논쟁에 관해서는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의 문제점은 학계에서 여러 차례 검증된 바 있으며 그 조작 과정과 실체 역시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고 언급하면서 각주에 여러 문헌을 열거해 놓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학술서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접근한다 해도 쉽게 이해할 수준을 넘어설 논문으로 보인다. 혹시 <환단고기>의 문제점을 알기 쉽게 풀어낸 대중서가 어떤 게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러면 사이비역사학의 중심인물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척결의 대상인 식민사학은 무엇이고 그들의 주장이 담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기경량 교수는 ‘사이비역사학과 역사 파시즘’이라는 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안된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일선동조론ㆍ정체성론ㆍ타율성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이비역사학이 나타나게 된 것은 이중 타율성론에 속하는 반도적 성격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타율성론은 조선의 역사가 주체성이 없는 타율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선이 반도에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리적 결정론에 입각한 반도적 성격론을 제시한다. 조선 역사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낀 반도에서 전개된 역사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대결 틈바구니에 낀 수동적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한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니며 대륙에서 전개되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의 열등성을 부정하고자 고대의 우리 역사가 전개된 공간을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는 반도의 역사가 열등하다는 일제 식민주의 사관의 그릇된 명제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사이비역사학을 내세우는 이들이 일제 식민주의의 그릇된 역사관을 해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명제를 그대로 수용해 그들을 정당화시켰다는 것이다. 역사는 유불리를 따져 기록하는 게 아니고, 목표를 세우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말이지만, 식민사관을 배척하자는 그들이 식민사관을 오히려 정당화 시켜주고 있다니 전략적으로도 실패가 아닌가.


기경량 교수는 같은 글에서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이비역사학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명백하게 파시즘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도 보수 우파 뿐 아니라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이비역사학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민족주의와 반식민 사학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이비역사학자들은 역사학계의 주류를 친일파로 매도하고 그 대척점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며 대중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친일파 청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이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쉬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주장에 쉽게 동조할 만큼 사고 구조가 쇼비니즘에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역사의 교훈에서 나아갈 바를 찾는 게 아니라 나아갈 길을 정해놓고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는 전두환 정부 때 군부 인사들이 “국사 교과서는 국민들에게 민족의식과 민족적 자부심, 긍지를 심어주는 민족 경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 교과서 내용은 학문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입증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국민교육용으로 필요하다면 수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아무런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실제로도 1981년 단군조선과 고조선 문제가 사이비역사학의 주장을 반영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3차 교과서에서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이 신화임을 명확히 하고 있으나 4차 교과서에서는 단군과 고조선이 실재했던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특히 단군의 고조선 건국 연대를 표기한 것은 사이비역사학 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이는 신군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족적 긍지를 내세운 사이비역사학 측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읽어나가다가 혹시 이런 현상이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부리는 허세와 같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없다거나 모른다고 말하는 걸 몹시 부끄러운 일로 여기고 그래서 그를 감추기 위해 과장과 허세를 동원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면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조차 당당해지지 않는가. 과거 조선과 지금 대한민국 위상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자화자찬의 역사학에 매달리는 건 시대착오적인 행동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왕 문제가 불거졌으니 이참에 <환단고기>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 읽으면서 역사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직면하는 일을 하나씩 배워나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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