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어크로스
2025년 10월 24일
13년 만에 귀국한 2021년 10월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귀국해 격리를 끝내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서울-부산 평등길 걷기였다. 비록 대전-청주 구간을 이틀 동안 걸은 것에 불과했지만.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오히려 반대한다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노라고 대답했다. 같은 이유로 귀국해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중앙루터교회에 신앙의 둥지를 틀었다.
우파적인 내 성향을 아는 이들은 그 사실을 매우 놀라워한다. 하지만 의아한 건 오히려 내가 더하다. 차별금지법을 옹호하는 게 왜 좌우의 개념으로 나뉠 일인가 해서 그렇다. 차별금지법은 생명에 관한 일이고, 생명에 관한 일에 좌우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차별금지법에 크게 관심을 두게 된 건 몇몇 소장 학자들 덕분이다. 10년 전에 소수자 보호를 연구하던 김승섭 교수를, 2018년 혐오 표현을 주제로 한 <말이 칼이 될 때>를 쓴 홍성수 교수를, 2019년에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 교수를 알게 되고,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되고, 이젠 그것이 내 문제가 되었다. 이 글을 빌어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귀국하기 1년쯤 전에 한국 교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광풍이 불었다. 당시 출석하던 리야드교회는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선 온누리교회의 협력교회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목사님께 두 달 말미를 얻어 차별금지법을 법률적, 의학적, 성서적 관점에서 살펴본 보고서를 12편 작성해 제출하고, 목사님께서는 그 검토서를 보고 아예 차별금지법에 대해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뚜껑을 열지 않으면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날 일인데 일단 건들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요청을 받아들이신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내 생각과 태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 홍성수 교수가 차별에 관한 책을 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제목 그대로 사람들 대부분은 차별은 남의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예멘 난민 사태, 코로나 초기 신천지와 대구에 대한 혐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족 혐오가 기억에 생생하다. 그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그에 동조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데도 차별을 남의 일로 여긴다는 게 아닌가.
저자는 “차별 역사의 대표적인 것으로 유럽이 대기근과 흑사병 위기에 빠졌을 때 마녀사냥을 벌였고,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유대인을 원흉으로, 코로나19 확산 때는 아시아인과 중국인을 표적으로, 유럽과 미국이 만성 적자에 시달릴 때 이주노동자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고 서술하면서도 이런 식으로는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진 걸 이주노동자 탓으로 돌리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주자 덕분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주자 없이는 한순간도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이주자를 배제하고 추방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지 묻는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그렇다는 말이다.
모든 차별은 배제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차별도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차별을 정의할 때 ‘합리적 이유 없이’라는 단서가 붙는데, 이는 차별 행위를 하더라도 합리적 사유가 있으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안전은 차별을 배제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안전을 위해서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하는 건 차별 예외에 해당한다. 하지만 저자는 차별 예외는 쉽게 남용될 수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장애의 경우, 조금 불편하거나 어렵다고 해서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장애 차별금지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는 얼핏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는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거나 평등을 촉진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특정 집단을 우대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채용이나 입학에 할당제를 적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좀 엉뚱한 예이기는 하지만, 나는 교회 화장실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하곤 한다. 교회에서 수련원 리모델링을 맡았을 때 화장실을 수리하면서 여성 화장실을 추가로 지었다. 교회에는 늘 여성이 많은 데다가 사용 시간도 남성보다 길었는데도 화장실은 남녀 동수였다. 게다가 남성 화장실은 소변기가 따로 있어 변기 개수도 더 많았다. 그러니 늘 여성 화장실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야 했다. 마침 수련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면서 기회가 되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여성 화장실만 증축한 것이다. 이는 길게는 이미 이루어진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일이지만 짧게는 남성 역차별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다행히 당시 관계자들이 그를 이해 못할 만한 바보들은 아니어서 무난히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 우대 조치로서, 앞서 말한 대로 할당제가 이에 해당한다.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국회의원도 여성 의원 할당제가 주요 의제가 된 이후로 2003년 이전까지는 6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던 게 2004년 13퍼센트, 2020년이 되어서야 겨우 19퍼센트가 되었다. 하지만 할당제가 오히려 경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순경 공채에서 1,001명 모집하는 남성 부분 경쟁률은 37.9:1이었지만 153명 모집하는 여성 부분은 99.4:1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할당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배제’를 해소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여성 이사 비율이 너무 낮은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여성 이사를 금지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명시적인 차별보다는 여성 직원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와 조건을 제약하는 다양한 문제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직접적인 차별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체계, 구조, 문화가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실질적인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구조적 배제 상태’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소극적인 성차별 금지 정책으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기업과 대학이 차별금지 정책이 윤리적인 의무 때문만은 아니고 이것이 실질적으로 조직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차별을 금지해야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대학 위상이 높아진다. 유럽 DCG Survey 2016 연구에 따르면 기업 구성원의 성별, 국적, 나이, 교육, 산업군이 다양할수록 혁신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 매킨지에서 발간하는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에 윤리적으로 행동할 당위적 의무보다는 다양성이 기업이 성과로 이어진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매킨지에서 발간하였다는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 2015>, <다양성을 통한 성과 창출, 2018>, <다양성이 승리한다, 2020>, <다양성의 총체적 영향력 사례, 2023>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차별과 혐오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십 년 가까이 된다. 이에 대한 이해도 평균은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노키즈존(no-kids zone)과 관련해 아이를 거부할 수 있다면 다른 사유로도 누군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역시 차별이라는 설명에 대해. 저자는 노키즈존이 영업의 자유라면 흑인 출입 금지, 무슬림 출입 금지, 동성애자 출입 금지, 이런 것도 다 용인될 수 있는가, 이처럼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을 영업의 자유라는 이유로 배제할 수 있는 사회를 과연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인지 묻는다. 저자의 지적은 옳다. 그런데 특별한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조건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예컨대 노키즈룸(no-kids room)도 불가능한가?
저자는 학력은 사원 채용 때 적격자를 가리기 위한 불가피한 요소가 아니며, 실제로도 대졸자로 한정했던 학력 제한을 없앴는데도 신입 기자 선발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조직에 득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 회사는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고, 따라서 이에 필요한 특정 지식과 특정 조건을 갖춘 이만 뽑는다. 이것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동성애는 타고 선천적인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전환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아 왔다. 그렇게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각종 국제의학기구의 발표 자료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생명 의학계의 논의는 대략 동성애에 영향을 주는 선천적 요인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선천적 요인이 동성애를 결정짓는 건 아니라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확인이 필요하겠다.
아무튼 이 책 또한 저자의 앞선 저서와 마찬가지로 차별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었으면 좋겠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다 2019년 발간한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직도 매대에 놓여 있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 궁금해 열어보니 84쇄란다. 초판 인쇄도 다 팔리기 어려운 상황인데 84쇄라니. 우리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셈이다. 이 책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