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방 문을 열 때 책상이 바로 보이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아이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문에서 비끼게 책상을 놓아야 아이가 마음 놓고 공부에 집중한다는데, 그건 아이라고해도 나름대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공간 뿐 아니라 개인적인 비밀 역시 지켜져야 부모와의 관계가 더욱 원만해 진단다.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게 아이를 더 이해하고, 그래야 아이와 관계가 더 좋아질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업무 성격상 인터넷을 일찍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집과는 달리 자식보다 내가 오히려 인터넷에 더욱 익숙하다. 그래서 인터넷에 개인적인 공간도 내가 먼저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자식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무시로 드나들곤 했다. 이유야 자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일종의 관음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자식이 밀라노에 가 있는 동안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이나 글을 보면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지켜볼 수 있었고 또 그 공간을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받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얼마쯤 지난 후 자식이 말도 없이 홈페이지를 없앴다. 얼마 후 다시 홈페이지를 만든 것 같아서 또 그곳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내가 들여다보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에 앞의 이야기를 예화로 든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내가 얼마나 자식을 불편하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2004.09)
자식을 가르치던 선생께서 스페인 비니아스 성악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축하할 겸 통화를 했다. 통화하던 중에 선생께서 콩쿠르에 함께 출전했던 자식 또래 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분발하도록 잘 격려해주기를 부탁했다. 저녁에 자식이 들어와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미 그 학생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은 워낙 잘 하는 학생인데, 그 학생을 쳐다보고 있으면 분발이 되는 게 아니라 기가 죽어 오히려 마음이 흐트러진다. 나는 묵묵히 내 길을 갈 뿐이고,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최선의 길이다. 그렇게 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자식에게 배운 것이지만, 큰 가르침이었다. (2004.11)
자식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시험성적이 나빠서 야단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후 얼마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시험문제를 다시 풀지 못하면 야단을 쳤다. 때로는 시험지조차 챙겨두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매우 심하게 나무랐다. 시험을 잘 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렇지만 시험을 보고 난 후 뭐가 틀렸는지 답은 뭔지 맞춰보는 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가능한 일인데, 틀리고 나서 뭐가 틀렸는지 답이 뭔지도 챙겨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음 시험에 좀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겠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자식이 차를 가지고 다닌다. 언젠가 익혀두어야 할 일이고 마침 차를 바꾸느라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차가 생겨 연습 삼아 타고 다니게 했다. 잘 다니다가 며칠 전 사고를 냈다. 어느 여학교에 볼 일이 있어 갔는데 학교 입구에서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다가 건널목도 아닌 곳에서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학생을 친 것이었다. 본인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겠지만 보험회사에 연락해 조치를 취했고,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드러난 상처도 없고 자기들의 잘못도 인정하고 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하고 물리치료를 받게 한 후 돌려보냈는데, 다음날 여학생의 아버지가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교통법규 위반을 운운하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식에게 상황을 다시 물어보니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고 난 후 그곳을 두 번 이나 더 다녀왔는데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자식을 심하게 나무랐다.
“사고를 내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니 사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사고 난 후로 두 번이나 그곳을 지나갔으면서도 상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잘못한 일이다. 사고를 낸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다행히 그 일은 원만하게 해결이 되어가고 있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자식이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 일, 그것이야 말로 더 큰 잘못을 막는 길인 것이다. (2005.11)
공정한 경쟁이란 애당초 있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승부에 패하고 난 뒤 패인을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근본적으로 공정할 수 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량이 상대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기업에서 입사시험 문제를 어느 교수에게 맡겼다. 그 교수는 대학에서 늘 하던 대로 출제를 했다. 그리고 그 제자가 시험에 응시했고 늘 대하던 문제라서 쉽게 합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누구든 이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교수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강조했을 것이고 시험에도 당연히 그와 관련한 문제를 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입사시험 문제를 출제한다고 해서 달라지겠나. 결국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학교시험이 되었든 입사시험이 되었든 응시자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자식이 콩쿠르에 나갔다가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앞선 콩쿠르에서 일등을 차지한 터이라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부모 보기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내게는 앞선 콩쿠르에서 일등하고 나서 자세가 풀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내에게는 심사위원의 제자가 입상한 결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식을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본디 경쟁이란 공정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월등하게 뛰어 넘는 기량을 갖추지 않으면 결코 그 불공정의 장벽을 넘을 수 없다. 만약 이번 콩쿠르 결과에 일부 불공정한 요소가 있었다 해도 그 정도는 애교 수준을 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국에서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불공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든 국가의 위상과 관계된 것이든 지금까지 들은 것만 해도 그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니 상대보다 기량을 월등히 높이는 것 말고는 그 불공정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상대와 기량이 비슷해서는 문화가 다르고 가치기준이 다른 외국에서 결코 경쟁자를 앞설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2005.11)
계획 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식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이자 온전한 선물이니 사람이 계획할 일이 아니다. 선물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지 받을 사람이 이것저것 결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생명인데. (2005.12)
생일이라는 게 뭐 특별한 뜻이 있겠나. 그저 생일이라는 이름의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런데 요즘같이 마음이 편치 않을 때에는 그런 자리라도 빌어서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이 되면 유학을 떠나야 하고 떠나면 언제 다시 한 가족으로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을지 싶어 자식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게다가 여러 가지 힘든 일로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데, 학교에서 오페라 지휘하는 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럴만한 사정이겠지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은 영 개운치 않다. (2006.04)
자식이 성악과 입학시험에서 부를 곡을 내가 선택했다. 지도하시는 선생께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런 판단을 내릴 만큼 내가 음악에 대해 조예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뜻 주제넘은 결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도하시는 선생께서 입학시험을 얼마 앞두고 오랫동안 준비해온 곡 대신 자식의 기량을 좀 더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곡으로 바꾸려했을 때 그건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에서 자기가 갖춘 기량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수년 간 공부해온 것을 단 한 번, 그것도 불과 몇 분 안에 평가받아야 하는 입학시험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곡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준비한 걸 흔들림 없이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몸에 익은 곡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험 당일, 성악 실기에는 치명적인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약을 먹고 시험을 봐야했지만 꼬박 두 해 넘도록 불러와 언제라도 같은 수준으로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했기 때문에 거뜬히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력이 좋은 팀은 가능한 변수가 적게 작용하는 쪽으로 작전을 짜고 실력이 뒤진 팀은 요행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작전을 짜게 마련이다. 나는 자식이 입학시험을 통과할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변수가 적게 작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2006.06)
자식이 큰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나니 욕심이 생기는지 유학 날짜를 미루고서라도 기회를 한 번 더 가져보면 어떻겠느냐는 주변의 제안에 귀가 솔깃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했다.
“너는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서 이미 유학 떠날 날짜를 정해놓았다. 말하자면 졸업 후 진로를 유학으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이 틀렸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선택이 틀린 건 아니지만 나머지도 놓치기 아까워서 이미 선택한 걸 흔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뭔가 선택한다는 건 그걸 제외한 다른 걸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놓치기 싫어서는 결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2006.11)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난 후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번성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자식을 하나만 두었다. 두 사람이 만나 자식을 하나만 두었으니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구감소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는 모양이 되었다. 자식을 더 둘 수도 없는 나이이니 이제는 내가 감당하지 못한 몫을 자식이 감당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이 자기 몫만큼 최소한 아이를 둘은 가져야하겠고 힘이 자란다면 세 자녀를 두어 우리 내외가 감당하지 못한 짐까지 감당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번성하여 충만’하자면 자녀를 더 두었으면 좋겠지마는 아무래도 그건 욕심이 과한 것이고. 만일 자식이 그렇게만 하겠다면 힘을 다해 도와주리라. (2007.09)
요즘 어지간해서 듣기 어려운 말 중 하나가 바로 ‘곱다’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예전부터 그랬는지 나이가 들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아름답거나 멋있는 사람보다는 고운 사람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자식이 마음씨, 솜씨, 맵시가 모두 고운 사람을 짝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2007.11)
사우디에서 입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늘아기가 감사헌금을 했단다. (2010.01)
꼭 10년 전 일이다.
청년성가대에서 성탄절 점등예배 찬양을 맡게 되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었다. 행사를 하루 앞둔 토요일 오후에 최종 리허설을 가졌는데 아들 녀석이 없어져버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행사인데다가 성악도로서 행사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비워야겠다고 했다.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아들 녀석은 약속 장소로 가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식을 불러들였다.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자식의 따귀를 때리고 말았다. 자식이 뛰어나가고 나서 문득 상황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해서 다시 불러들였고 남 보기 부끄러워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자식도 화가 많이 났었는지 차에 타자마자 언성을 높여 대들었다.
“내가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행사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했겠나. 성가대장의 아들로서도 그렇고 성악도로서도 행사에 빠져서 안 되는 것은 물론, 누구보다 앞장서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 한번쯤 그 이유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교회의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주말에 번번이 친구들 모임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너무 미안해 자기가 먼저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공교롭게 그날 성탄 점등행사 리허설이 겹쳤다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도저히 약속을 취소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약속 때문에 리허설에 참석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물어봐주기만이라도 했다면 약속을 취소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할 말이 없었다. 옳은 지적이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과연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물음에 대답하기 직전 드렸던 묵도가 생각났다. 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묵도를 드렸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저 숨 한 번 들이쉴 정도가 아니었겠나.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헤미야의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했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를.
아마 길어야 2초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도를 마치자 있는 그대로 잘못을 시인하는 게 옳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일은 아버지가 잘못했노라, 그래서 사과하니 용서하라고 했다. 자식에게는 뜻밖의 반응이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은 끝났다. 그 날로 대학 들어갈 때까지 악화되었던 자식과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회복되었고 그 이후 자식이 가정을 이룬 지금까지 부자간에 원만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2010.11)
자식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아내와 자식의 주민등록을 효자동 선배 댁으로 옮겨놓았다. 동네 학교가 시원치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버스로 대여섯 정거장 정도이니 진학을 하고나도 다니는데 별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주민등록을 옮겨놓고 두 해인가 지나서 선배 댁에서 연락이 왔다. 6학년 여름쯤 되면 실제로 사는지 확인하러 오니 간단한 짐이라도 옮겨다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주민등록을 옮겨놓은 게 불법적인 일이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식을 위장전입 시킨 건 자식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 그 방법이 옳지 않아서 과연 자식이 잘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고민 끝에 주민등록을 다시 옮겨왔고 그것으로 그 일은 일단락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로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마다 가족의 전입일이 각자 다르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잘못한 일을 바로잡기는 했지만 그 흔적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주민등록을 되돌려놓고 나서 자식이 바로 집 앞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체격만 컸지 소심한 성격이었던 자식이 3학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어서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시작했는데, 자식이 진학한 그해 음악 특기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열정적인 음악선생님 덕분에 자식이 성악공부를 하는데 더 할 수 없는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토록 원했던 유럽무대에 연주자로 서게 되었다. 단지 잘못을 잘못으로 깨닫고 바로잡았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로 갚아주셨다. (2011.01)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페이스북 바람이 불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들 근황도 듣고 가까운 친구들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OB합창단에서 함께 지내면서 소식을 자주 전하게 된 친구가 하나 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차에 누군가 의미심장한 글을 올려놔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외손주를 얻은 지 닷새 만에 잃었다는 것이었다. 외손주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에 학회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가 외손주를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귀국해서 한 달쯤 지났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아이를 잃은 따님과 친구의 아내가 크게 상심해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 친구는 가끔씩 휴대폰에 남아있는 외손주 사진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첫 손주를 얻고 나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함으로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슴에 안고 있으면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함이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나면 나까지도 가슴이 아파온다. 첫 손주의 기쁨을 누려봤으니 그 어린 생명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 아닐까. 오죽하면 자식 잃는 것을 장이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했을까. 세상을 떠난 어린 생명과 그를 잃은 아픔으로 상심해 있을 그 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2011.11)
중국 진나라 한 병사가 협곡을 지나다 새끼 원숭이를 한 마리 잡아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데 어미 원숭이가 배를 좇아 백 여리를 따라오며 슬피 울었다.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서 몸을 날려 배로 뛰어오른 어미 원숭이는 배에 오르자마자 죽었다.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은 것(斷腸)이다.
일 년쯤 전인가,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외손주를 얻었는데 그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그만 어린 생명이 숨을 거두어 그 충격으로 모든 연락을 끊었다. 나도 그때 막 손녀를 얻어 그 생명으로 인해 새 세상이 열린 것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던 터라 불과 며칠 사이에 환희에서 절망으로 떨어져버린 그 친구의 아픔이 정말 내 아픔으로 느껴졌다. 자식 잃은 아픔을 단장의 아픔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아픔은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자식을 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식 잃은 딸을 바라보는 친구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큰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했다.
오늘 아침 새벽예배를 나가는 길에 그 따님이 다시 새 생명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 동창회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내 일처럼 기뻤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친구와 친구 따님의 가정에 위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모처럼 친구와 통화하며 마음껏 축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2013.05)
교우 한 분이 며칠 전 손녀를 잃었다. 불과 여섯 달 남짓한 삶의 흔적을 남기고 막 떠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어린 생명의 시신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빠 엄마도 잘 견디고 있었는데 나이든 사람이 오히려 그 부모 마음을 흔들어놓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다. 며칠 있으면 혜인이를 떠나보낼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한데 다시 보지 못할 곳으로 어린 생명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였을까? (2014.01)
혜인이로 인해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을 누리고 산다. 작은 생명 그 자체가 신비요 내 삶에 주어진 선물이다. 생명이란 무릇 이렇게 소중한 것인데 나는 다른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20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