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by 박인식

이상헌

생각의힘

2025년 5월 1일


평생 고용인으로 살았다. 고용이니 실업이니 하는 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말이다. 어찌 되었거나 사십 년 훌쩍 넘게 한 직장을 다닌다는 건 복 받은 게 틀림없지만, 그곳이 봄날이어서는 아니었다. 세상에 봄날만 있는 직장이 어디 있을까. 워낙 기복이 심한 업종이라 이직도 많고 툭하면 정리해고가 일어나는 곳이었는 데 용케도 살아남은 것이지.


그래서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저자의 직책과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ILO의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그가 던진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라는 화두는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독자를 의식해서였는지, 저자는 처음부터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따를 수 있는 실용적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당신의 일하는 삶에 곧장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요술 방망이는 여기에 없다”며 선을 긋는다. 하긴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한 일이다. 그랬으면 이런 책이 나올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고용이니 실업이니 하는 건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지만 그것의 정의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학자나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일이니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고용의 기준점은 ‘일주일에 1시간 노동’이다. 생각보다 작을 줄 알았어도 이 정도라면 허를 찔린 느낌마저 든다. 이에 따르면 모든 아르바이트생은 고용 상태에 놓인 것이니 어쩌면 ‘완전 고용’도 멀지 않아 보인다. 동시에 ‘완전 고용’은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고용”된 상태라고 정의하는데, 과연 ‘일주일에 1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자신을 ‘고용’된 상태로 볼지는 미지수이다.


오래전에 본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에서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주인공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이 영화는 영국의 현대 복지제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업으로 인정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국제 사회에서 채택한 실업의 정의는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라고 소개한다. 문제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자리를 찾으려는 의지와 행동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실업으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그러자면 일자리 찾는 걸 하나의 직업처럼 수행해야 실업자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사정과 개인적, 구조적 이유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 못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실업의 실제 규모는 훨씬 커진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4배에 이른다.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일하면서 지켜본 사우디 통계 중 가장 의아했던 게 바로 실업률이었다. 2010년대 당시 실업률이 1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체감하는 것과는 서너 배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한국의 4배라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고용의 정의에 따르면 고용 상태인 사람이 스스로 고용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실업자가 되기는 쉽지만, 실업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고용과 실업은 경제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의 존재 의미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일기의 이름이 ‘잉여 일기’인데, 수년 전 귀국하고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문득 자신이 잉여 인간이 된 느낌이 들어 그 좌절을 글로 쓰면서 붙인 것이었다.


저자는 2017년 미얀마 사태 때 방글라데시가 난민을 받아들였지만, 난민의 고용은 금지한 사례를 들어 실업이 존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세계은행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난민에게 단순히 현금 지원을 하는 것 말고 좀 더 효과적인 지원 방법을 찾기 위해 시험적으로 취업을 허용하고 그 결과를 관찰했다. 그들은 정신 건강, 인지 능력, 위험 대응 능력에서 현금만 받은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고, 그 차이는 무려 4배에 달했다. 설령 현금 지원이 줄거나 없어진다 해도 계속 일하겠다는 난민이 70%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 결과를 설명하면서 “일자리의 가치는 월급봉투에 적힌 숫자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이어서 2010년대 초반에 중동을 뒤흔든 ‘아랍의 봄’ 이면에는 만연한 실업을 둘러싼 불만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고등교육에 투자했던 학생들이 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크게 좌절하면서 시위 전면에 진출했다는 것인데, 바로 지금 격랑에 휩쓸린 이란의 소요 사태 또한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니 실업을 어떻게 경제 문제로 국한해 생각할 수 있을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있는 최저임금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최저임금 관련 연구가 시작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고 말한다. 아울러 최저임금의 명백한 부작용은 찾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라고 설명한다. 고용정책국장의 견해여서 더욱 신뢰할만한 의견으로 들렸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최저임금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OECD는 15년 후 입장을 급선회하여 ‘최저임금은 모든 일자리가 적정한 보상을 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고 소개하면서 최저임금을 1달러 올렸을 때 노동 생산성을 4.5% 상승했다는 수치를 제시한다.


물론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었다. 저자는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에도 이익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저임금으로 이직률도 현저히 낮아졌다. 매출도 덩달아 늘었으니 기업으로서는 일자리를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노동자들의 이직이 줄고 기업에 정착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의 이윤 축소는 단기적 현상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나는 최저임금이 성공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건 어떨까 싶다. 이에 대한 고용 전문가인 저자의 의견은 분명하다.


“나라가 넓어 지역마다 물가와 소득 수준이 다르다면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어렵다. 산업 간 격차가 커도 마찬가지여서 지역별, 산업별 최저임금이 적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진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처럼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역 편차가 큰 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수가 수백 개가 넘는다. 하지만 규모가 작고 동질적인 나라에서는 제도만 복잡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한국은 굉장히 동질적인 시장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로 요약된다. 예전에 유보적인 국제기구들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대체로 최저임금은 소득을 증가시키면서 일자리를 희생시키지도 않고, 결국 저임금 소득층의 전체 소득이 늘어난다. 미국, 영국, 독일에서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이제는 차별의 관점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돌봄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관한 저자의 견해도 귀 기울일 만 하다.


“국제노동기구가 추계한 전 세계 공짜 돌봄노동은 연간 164억 시간에 이른다. 약 20억 개 전일제 일자리와 맞먹는다. 이 돌봄노동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GDP의 9%에 이른다. 돌봄노동은 여성 고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이다. 2023년 기준으로 약 16억 명의 여성이 경제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그중 7억 명이 돌봄노동 때문에 취업에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법정 유급휴가가 보장되어 있으나 2024년 평균 16.6일 연차휴가가 주어지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연차 소진율을 76%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55시간 이상 지속해서 일하면 치명적인 심장질환 위험이 커진다.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자 노동자는 일 양을 자동으로 조정했다. 8시간 일하던 노동자에게 갑자기 10시간 일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면 일의 시작을 늦추거나 속도를 낮췄다. 흥미로운 것은 이걸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연장은 결과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가 된다.”


이 책은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정작 책에서는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머리에 이 책이 실용적 지침을 제시하지도 않고 여기에 요술 방망이도 없다고 말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오독한 것일까? 그런 가운데 저자의 다음 말은 고용과 실업이 해결하기 얼마나 지난한 문제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노동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실업을 줄일 수 있는 노동 정책을 개발한다는 건 정보와 능력, 그리고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시장에 맡겨 두면 시장 자동 조절 기능으로 해결되는가? 노동 시장의 역사와 경험을 보면 이런 믿음도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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