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역사비평사
2023년 6월 16일
몇 년 전, 한창 친일파 척결이니 반일이니 시끄러웠을 때 모든 게 마뜩잖았다. 친일이 그리 칼로 무 베듯 나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칠십을 넘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지금 따져서 뭐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였을 것이다. 친구 하나가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해서, 내가 그때 태어났으면 아마 나도 그중 하나였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날 더러 아마 너는 그랬을 거라고 했다.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날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건 아니어서 그런가 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가끔 그 말이 생각난다. 내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러면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 어린 나이에도 친일이니 반일이 그리 선명하게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살아가기 바빠서, 사회적인 구조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 누군가에 떠밀려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고미술품 수집가인 어느 한 분은 조선 후기 작품에 대해 감정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미술계 인사에 대한 정보가 누구보다 넓고 깊다. 그분이 가장 한탄하며 올리는 글이 바로 친일 미술가에 관한 것이다. 근거 없이, 때로는 사실무근인 데도 친일 미술가로 낙인찍은 일이 허다하고, 정작 친일 활동의 증거가 명백한 데도 오히려 추앙을 받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글에는 충분히 동의할 만한 근거가 함께 따른다.
반일의 선봉에 섰던 이가 알고 보니 선대가 오히려 친일에 앞장섰더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걸 감추기 위해 더 과잉 행동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뻔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친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남들도 다 하는 정도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논쟁에 신물 났다면서도 <우리 안의 친일>이라는 제목에 시선을 빼앗긴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정확히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을 짚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친일 반일을 가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기주장을 차근차근 논증해나간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크게 공감한 건 우리 상황이 아니라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 관한 부분이었다.
“아렌트는 숙고 끝에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은 출세욕이 조금 강했을 뿐 평범하기 짝이 없는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에 대해 광적인 증오심을 갖거나 광신적인 반유태주의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렌트는 유대인 자신의 책임까지 물었다. 유대인 평의회 조직이 나치를 대신해 유대인을 억압하고 심지어 유대인 학살을 돕거나 직접 실행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유대인의 자발적인 협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아렌트는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단순하고 선명한 이분법 구도를 해체했다.”
이는 아이히만이라는 전쟁범죄자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에 관한 평가이다. 나는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일반 대중에 관한 저자의 해석에 더욱 크게 공감하였다.
“많은 독일인은 홀로코스트는 일군의 사악한 인간들이 치밀한 선전 선동을 통해 집단 광기를 불러일으켰고, 거기에 순진한 대중이 속아 넘어갔다는 선명하고 단순한 구도에 기초하고 있었다. 독일인도, 세계인도, 이는 명백히 가해자를 가릴 수 있는 범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그 사악한 범죄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른 어떤 주체를 지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료사회의 위계질서, 다양한 기구와 개인 사이의 경쟁, 사회 구조에 대한 복종과 순응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이 겹치면서 초래된 비극이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가?”
아마 내가 스스로 친일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사형을 반대한 건 아니다. 아렌트가 강조한 건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행위를 반유대주의라는 맥락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유대인 아렌트는 이로 인해 유대인 사회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고립됐다.
이 글을 읽다 보니 최근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떠오른다. 몇 년 전, 이 문제에 꽂혀서 책은 물론 소송 서류 전체를 하나하나 훑어가며 논란의 전말을 살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측의 주장은 궤변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저자는 위안부를 차출해간 일본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을 허용한 우리 안에 내재한 봉건주의 가부장주의라는 구조적 결함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십 년 넘는 세월에 걸쳐 그 모진 수모를 견뎌야 했다.
또 하나 관심을 끈 건은 똑같이 일본과 독일에 고통을 당한 우리와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왜 그렇게 다른가 하는 저자의 해석이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처벌이 거의 전무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에 대한 협력자 처벌이 철저히 진행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프랑스는 독일의 지배가 4년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십 년 가까이 받아오면서 어디까지가 일상 행위이고 어디부터가 친일 협력 행위인지 불분명했다. 프랑스는 4년에 불과해 독일에 협력한 사람을 제거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은 일제에 협력한 사람을 배제하면 국가 운영에 큰 공백이 생길 형편이었다.”
나는 이중 특히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십 년 가까이 받아오면서 ‘어디까지가 일상 행위이고 어디부터가 친일 협력 행위인지 불분명’했다”는 저자의 분석에 공감한다. 이것 또한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과거사 청산이 국가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건 필연적으로 정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는 국가의 역사 개입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결코 하나의 진실로 왜소화되어서는 안 된다. 불편한 주장, 때로는 적대적인 주장까지 난무할 수 있는 논쟁의 장이 될 때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타자를 이해할 수 있고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사 개입은 절대로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국가는 자기 역사에 대해 윤리적 정치적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에 의한 폭력, 국가에 의한 범죄에 즉각 개입하고 책임져야 한다. 시민사회는 국가 폭력을 조사하고 처벌할 법적 권한이 없다. 수많은 과거사 위원회가 법률에 따라 조직되고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역사 개입은 이처럼 불가피한 영역에서조차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과거사 위원회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구성원들이 대통령과 정당 추천 몫이 되다 보니 역사적 규명이 필요한 과제들이 손쉽게 정쟁의 대상으로 전화했다.”
과거사 처리 방식에 대해 내내 못마땅했으면서도 그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저자는 2장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허구였다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시대에 세계에서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것부터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1911년에서 1940년까지 30년 동안 식민지 조선의 인구와 1인당 생산량이 꾸준히 늘었다고 본다. 쿠즈네츠가 말하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 시가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간에 인구와 인당 생산이 동시에 해마다 연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1911~1918년, 1932~1937년 사이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1920년대의 통계는 신뢰도가 낮다. 결국 이 두 현상의 동시 성장세 부합하는 기간은 1932~1937년뿐이다. 적어도 30~40년 이상 꾸준히 인구와 1인당 생산이 동시에 증가할 때 근대적 경제성장이라고 보는 쿠즈네츠의 기준에는 꽤 부족하다.”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려운데, 명지대 김두얼 교수의 <한국 경제사의 재해석> 제1부 ‘식민지기’서 저자가 식민지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기억한다. 공교롭게 써놓은 리뷰에는 60년대 고도성장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니 서울에 돌아가면 두 책을 비교하며 읽어봐야겠다.
경제에 문외한이니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만큼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비록 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는 해도 당시 일본이 벌여놓은 각종 개발이 근대적 경제성장으로 이어졌거나 최소한 그 바탕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근대적 경제성장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근대적 경제성장의 바탕이 될만한 시설은 모두 북한에 몰려있다고 말한다.
불과 이백 쪽 조금 넘는 이 책을 일주일 넘게 붙들고 씨름했다. 빠짐없이 읽기도 했고, 읽다가 궁금한 것도 확인해 가면서, 가끔 앞뒤로 오가기도 하고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이번이 저자의 책을 세 권째 읽은 것인데, 찾아보니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가 남았다.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온 차별금지법에 대한 글도 있고,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관한 글도 적지 않다. 전자책이 없으니 휴가를 기다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