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균
동아시아
2025년 7월 18일
올해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그 기준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몇 달째 그런 궁금증을 풀 만한 책이 없을까 찾고 있지만, 어느 쪽으로든 크게 치우친 책만 눈에 띌 뿐, 믿고 읽을 만한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카이스트의 바이오 뇌 공학 교수가 보수층을 해부한 책이 나왔다고 했다. 심리학, 행동경제학, 뇌과학, 유전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왜 보수주의자들이 종교나 음모론에 빠지는지, 왜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한 분배를 용인하는지, 왜 젊은이들이 우경화하는지 밝히겠다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정치와 거리가 있어 보이고, 다른 것도 아니고 뇌과학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겠다니 최소한 편파성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나는 스스로 타고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육십 년 가까이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그런 내 성향에 비추어 요즘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극우 보수들이나 이들과 다를 바 없는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의 행위는 도저히 그들을 같은 보수주의자로, 같은 기독교인으로 여길 수 없게 만든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런 내 생각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건전한 기독교는 세간으로 손가락질받는 기독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종교인가? 중세의 마녀사냥, 종교 재판,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창조과학 신봉, 백신 반대 운동, 성 소수자 혐오, 광적인 포교 활동, 연신 할렐루야를 외치는 정치집회로 대변되는 기독교 말이다. 소위 정상적인 기독교인은 이들을 극단적인 예외로 치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몰지각과 무지, 만행이 시대와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반복된다면, 그들이 공유하는 그 교리 자체에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는 게 마땅치 않은가?”
물론 그런 사안이 두드러지게 보도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정상적인 기독교인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고, 정상적인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는지 알 방법도 없다. 게다가 손가락질받는 기독교인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교리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저자의 지적을 반박할 논리가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후로 내내 문제적인 보수주의자와 문제적인 기독교인을 한 묶음으로 다룬다. 보수주의자이면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저자가 말하는 보수주의자의 정의를 살펴보자. (저자는 보수주의자를 여러 갈래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지만, 나는 그게 보수의 공통적인 성향이자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힘과 능력에 기반한 위계를 지지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계층적 질서를 선호한다.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 복지정책에 반대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복종하며. 권위에 반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기존의 규범과 전통을 따르는 성향을 말한다.”
여기서부터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여기는 내 성향과 조금씩 빗나간다. 위계를 지지하고, 권위에 반하는 이들을 배척하며, 기존의 규범과 전통을 따르고, 불평등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걸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걸 어쩔 수 없는 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일까?
저자가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살펴보자.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현재의 체재, 제도, 관습을 보존함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을 말하며,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개혁하고 혁신함으로써 발전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실제로 광범위한 주제들이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양분되어 있다. 경제 체제는 자유시장과 사회복지로, 종교는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국제관계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로, 이민정책은 폐쇄와 개방으로, 성 소수자의 권리는 부정과 지지로, 페미니즘은 반대와 지지로, 임신중지권 역시 반대와 지지로, 과학기술은 불신과 옹호로, 교육은 엘리트주의와 평준화로, 총기 규제는 반대와 찬성으로 나뉜다.”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지적은 이런 구분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경제학의 사조는 진보-보수-진보-보수 성향으로 엎치락뒤치락 변해왔고, 미국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임신중지권 판결을 뒤집은 극히 이례적인 상황은 보수적 태도가 아니라 급진적 개혁을 추구한 진보적 행위로 보이며, 보수가 신앙적 배경으로 삼는 성경은 보수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토지 사유화를 금지하고, 사마리아인을 찾아간 예수를 모델로 삼는다면서 이민자를 배척한다.”
“주요 보수 사상가들인 기독교를 그들의 핵심 세계관이라고 주장하는데,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인 예수의 발언과 실천은 당대의 종교적, 정치적 질서 자체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예수의 행동과 성서의 내용은 보수주의 이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실제로는 이렇게 전면적으로 개념을 뒤집는 경우도 많고, 잘 들어맞지도 않는 사전적인 뜻 말고는 널리 통용되는 정의도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자 과연 이 책을 더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보수와 진보를 규정할 기준도 마땅치 않고 있는 기준도 맞지 않는다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보수인지 아닌지 구분 못하는 게 내 문제만은 아닌 모양이다. 워낙 그렇다지 않는가.
저자는 그렇기는 해도 보수라는 성향을 결정짓는 요소를 심리학, 뇌과학, 유전학 관점에서 해석하고 유전자와 사회 환경의 상호 작용도 살펴본 결과 보수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유전적 요인에서 출발하며, 종교를 가진 이들이 종교가 없는 이들에 비해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처럼 뚜렷한 특징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활발히 공유된 5천여 개 뉴스 기사에서 진위가 확인된 정치적 진술을 가려낸 연구가 최근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보수적인 사람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서 거짓 정보가 더 널리 퍼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보수의 인지적 편향이 단순한 편견이나 주관적인 인상이 아니라 실증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연구 결과 혐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보수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수가 부정적인 자극에 더 강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며 더 많은 심리적 자원을 할애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이 높을수록 타인에 대한 보편적인 인류애보다는 자기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사람을 더 강하게 중시하는데, 이것이 국제관계의 맥락에서 보수가 민족주의 경향을 나타내는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법과 질서를 중시하고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지지한다. 인간 사회를 자연 상태로 보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어 해서 경쟁과 생존 능력이 우선시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강자 생존의 논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강자 생존의 논리를 옹호하는 이러한 신념은 전반적인 사회 안전망 구축에 소홀한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진보 정권이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전체가 연대할 것을 강조하며 선제적 재난 대응 시스템 마련에 적극적인 데 비해 보수 정권은 암묵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개인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수나 진보 모두 어느 게 자기 정체성인지 모르고 행동한다지만, 저자가 서술한 보수주의자의 특징은 왜 하나같이 반사회적이고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혹시 저자가 진보주의자에 관해서도 같은 책을 낸다면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반사회적이고 어리석은 모습이 보수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헷갈리는 건 진보도 다르지 않은지 궁금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