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일기 2026.02.02 (월)

by 박인식

저는 작업지침서 쓰는 일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설명할 때마다 전원이 모이는 일도 쉽지 않고, 설명 듣는다고 다 기억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며칠 전 조사자료를 검토하다가 11월에 보낸 작업지침서에 오류가 있었던 걸 확인했습니다. 즉시 바로잡았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잘못 알려준 기준으로 작업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수정해야 할 작업량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류가 왜 생겼는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작업량은 얼마나 될지, 또 다른 오류가 없는지 살피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걸 정리해 다시 작업지침서를 보냈습니다. 오류의 배경과 수정 방법을 설명한 후에 오류를 인정하고 그것이 제 책임이라고 사과했습니다.


이런 형태의 문서에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을 적는 게 과연 적절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오류가 제 잘못으로 일어났고, 그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업무로 지쳐있는 현장 기술자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되었으나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동료들은 어쩌면 제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제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아무런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렇게 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빨리, 깔끔하게 끝내는 방법인 걸 익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히 사회생활을 한 분이면 그게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이라는 정도는 다 압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2010년 11월에 ‘느헤미야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


꼭 10년 전 일이다.


청년성가대에서 성탄절 점등예배 찬양을 맡게 되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었다. 행사를 하루 앞둔 토요일 오후에 최종 리허설을 가졌는데 아들이 없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행사인데다가 성악도로서 행사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비워야겠다고 했다.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아들은 약속 장소로 가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들을 불러들였다.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끝내 교회 안에서 따귀를 때리고 말았다. 아들이 뛰어나가고 나서 문득 상황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해서 다시 불러들였고, 남 보기 부끄러워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들도 화가 많이 났었는지 생전 처음 언성을 높여 대들었다.


“내가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행사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했겠나. 성가대장의 아들로서도 그렇고 성악도로서도 행사에 빠져서 안 되는 건 물론, 누구보다 앞장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나. 그런데도 약속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 한 번쯤 그 이유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교회의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주말에 번번이 친구들 모임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너무 미안해 자기가 먼저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공교롭게 그날 성탄 점등행사 리허설이 겹쳤다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도저히 약속을 취소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약속 때문에 리허설에 참석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물어봐 주기만이라도 했다면 약속을 취소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할 말이 없었다. 옳은 지적이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과연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물음에 대답하기 직전 드렸던 묵도가 생각났다. 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묵도를 드렸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저 숨 한 번 들이쉴 정도가 아니었겠나.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헤미야의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했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 알려주시기를.


아마 길어야 2초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도를 마치자 있는 그대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옳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일은 아버지가 잘못했노라, 그래서 사과하니 용서하라고 했다. 아들에게는 뜻밖의 반응이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은 끝났다. 그날로 대학 들어갈 때까지 악화했던 아들과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회복되었고, 그 이후 자식이 가정을 이룬 지금까지 어떤 부자지간보다 원만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하는 일이 사사건건 가르치려 드는 걸로 비칠 수 있는 일이어서,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내심 못마땅해하던 현장 책임자가 어쩌면 쾌재를 부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 달라질 건 없었지요. 책임 추궁 또한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이고.


뜻밖에도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니 비난할 일이 아니고, 함께 해결책을 찾자”는 답변을 보냈더군요. “지금 일이 몰려서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이럴수록 양사가 힘을 합치면 해결하지 못할 게 어디 있겠냐”는 덕담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요즘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계속 이어져서 꽤 오래 양사가 냉랭한 사이였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지 싶습니다.


현장 책임자가 제 아들보다도 한참 아래여서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책임자라는 자리가 사람을 책임감 있게 만드는군요.


그림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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