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일기 2026.02.06 (금)

by 박인식

프라하 공항에 주차해놓은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갈증이 나서 휴게소에 잠시 들렀습니다. 음료수를 하나 골라 돈을 내려는데 나이가 꽤 든 여성 직원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통화를 계속했습니다. 곧 끝나겠지 싶어 기다렸지요. 그런 저를 보더니 전화 끊을 생각은 하지 않고 턱짓으로 옆에 있는 직원에게 가라더군요. 워낙 그런 곳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곳에도 나이 지긋한 여직원이 있었는데, 저는 쳐다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더군요. 한참 기다려 콜라를 내밀었더니 뭐라고 물어보는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요.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는 손을 휘저으며 뭐라는 모습이 꼭 삿대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기분이 얼마나 나쁘던지요. 생각해보니 그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도 같은 일을 몇 번 당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일하는 체코 사람들은 참 점잖고 친절하던데, 왜 그럴까 싶더군요.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매는 외국인을 보면 누구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말이 통하건 통하지 않건. 머리 허연 노인네 하나가 음료수 들고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매는데, 도움을 구하는 눈길로 주변을 돌아봐도, 아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 그게 누가 되었든 어려움 겪는 이방인을 보면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모든 외국인에게 그렇게 친절했던가 돌아보았습니다. 외국인에게 대체로 친절한 건 맞는데, 그게 모든 외국인은 아니더란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인은 그저 서양사람이었지요. 동남아인은 아니었단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 눈에 내가 그렇게 비쳤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후줄근한 모습에 머리 허연 동양인, 무시해도 좋을 존재.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현지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희가 선생인 셈이지요. 우리에게 일을 배우고, 문제가 생길 때 우리에게서 답을 얻어야 하는 처지이니 그동안 무시할 수 없어서 예의를 갖추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하지만 일상에서는 그저 동양인일 뿐.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희를 예의 바르게 대해준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평가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이들이었네요. 거기에 우리가 오랫동안 이용하는 음식점이 더 있는 정도.


결국 남 탓할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네요. 우리가 동남아인을 같은 외국인으로 대하지 않은 그 업보를 여기서 우리가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당해도 싸다 싶습니다. 오늘 당한 일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물론 그래서 그렇게 차별하는 걸로 되갚아주겠다는 게 아닌 줄은 아시지요? 서울로 돌아가서 무의식중에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각별히 새겨야겠습니다. 사실 의식적인 거보다 무의식적인 게 더 무섭지요. 그게 골수에 새겨졌다는 말이니까요.


오늘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망했다고 한탄하는 이에게 이를 막을 방법은 “교회에서 참 그리스도인 세 명만 찾으면 된다”고 했다는, 그런데 “그 세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자신이어야 한다”고 했다는.


저는 육십 년 넘게 기독교인으로 삽니다. 저 역시 한국 교회가 망하는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저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 교인들 때문이로군요. 휴게소에서 당한 작은 모욕에 발끈한 제가 참 우습습니다.


Prof. Lanzo 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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