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늦게 혜인 아범에게서 영상 전화가 왔습니다. 포르투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날 돌아가려는데, 환승할 리스본 공항에서 날씨 때문에 결항이 되었다는군요.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부자지간에 무슨 할 말이 있어 한 시간이나 통화하느냐고 그러겠지만, 가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영상 통화로는 가끔 그러는데 정작 마주 앉아 이야기한 건 별로 기억에 없네요.
혜인 아범은 목요일에 ‘포르투 까사 다 무지카’ 극장에서 <일트로바토레>에 페르난도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오페라이기는 한데,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했다는군요. 포르투갈은 유럽치고는 오페라 공연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드물게 있는 공연이어서 객석도 가득 차고 반응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내년 3월 공연 때 다시 와달라고 했다네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하는 오페라가 분장도 하지 않고 연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좀 더 편할 것 같은데, 오히려 연기를 하지 않다 보니 가사에 신경을 써야 해서 더 고단하답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줄거리를 따라서 가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한 자리에 서서 하면 오히려 극에 몰입하기가 어렵다는군요.
저는 그 말이 금방 이해되었습니다. 저는 업무상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일이 자주 있습니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혹은 교육의 일환으로 말이지요. 저는 모든 발표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여깁니다. 그래서 자료를 만들기 전에 먼저 그 줄거리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자료를 정리하지요. 그리고 슬라이드를 되도록 단순하게 만듭니다. 글자 수를 줄이고 색깔도 많이 쓰지 않습니다. 이러면 자칫 설명할 내용을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로 만들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슬라이드에 들어 있는 키워드만으로 설명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흐름을 타는 겁니다. 오페라라고 다르겠습니까. 연기하면서 흐름을 타야 하는데, 연기를 하지 않으니 외워서 발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지도 않고 때로는 빠뜨리기도 하고 그러지요.
토요일에 비스바덴극장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 <The Snow Maiden> 공연이 있어 금요일에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야 했는데, 듯하지 않게 리스본에서 발이 묶이고. 토요일 낮에 전화하니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돌아갔어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계속 늦어지다가 다행히 떠나기는 했다는 소식을 혜인 어멈에게서 들었습니다. 지금 공항에 데리러 가고 있다면서 말입니다.
올해는 서울 공연도 몇 번 있고, 핀란드 공연도 있어서 꽤나 바쁘게 다녀야 할 모양입니다. 아래는 비스바덴극장 <일트로바토레> 리허설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LOa_fE_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