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
동아시아
2026년 1월 21일
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 1위에 오르기까지 겪은 간난신고의 과거, 결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현재, 그리고 기회일지 위기일지 알 수 없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Again)로 대표되는 미래. 저자의 강의에 매료되어 읽었는데, 그게 이미 십 년도 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사우디 국영 조선소 프로젝트 폴더를 다시 열게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전을 폭격해 누출된 원유로 걸프만 연안은 초토화되었다. 한 사우디 기업이 그로부터 이십 년 후 시작된 복원사업에 참여할 기술 파트너를 찾았고, 우리와 인연이 닿아 2009년 사우디에 부임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사우디 파트너는 워낙 무기상이었는데, 든든한 뒷배였던 왕세제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행동대장 격인 왕자가 전투기 도입과 관련한 세기의 스캔들로 밀려나는 통에 무기상으로서의 영향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얻어걸린 게 오염복원사업이었다.
부자가 망해도 삼 대는 간다고, 그 남은 영향력을 긁어모아 국영 조선소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지스함을 도입하려던 게 군함 조선업으로 확대되고, 결국 국영 조선소 사업에까지 이르렀다. 한국 유수의 조선사와 손잡고 사업을 추진했는데, 나는 국영 조선소 기본계획과 사우디 정부 인허가 실무를 총괄했다. 실무팀을 이끌고 일 년 넘게 애쓴 끝에 당국으로부터 18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 사용 승인서를 받았을 때는 당장이라도 뭐가 될 줄 알았다. 그 문서에 “You are legally, financially, technically qualified”라고 적혀 있었고, 더구나 부지 사용 허가 당국에서 투자자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향까지 밝힌 데다가, 상공부에서 사업 면허까지 받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니었다.
당시 사우디 당국에서 확정한 국영 조선소 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계획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소 자체에 관한 것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지 조선소 연계 사업이 그 정도로 광범위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1단계 사업이 완성되었을 때 고용 규모가 5천 명이었는데, 거기에 따르는 연계 산업까지 계산하면 줄잡아 십만 인구를 헤아리는 신도시가 될 터였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한국 파트너였던 조선사는 사장 연임 문제로 홍역을 앓던 상태였고, 그것이 비극으로 치달아 멈칫거리는 사이에 한국의 다른 조선사에 선수를 뺏겼다. 그리고 그 일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던 사우디 파트너사의 무기상으로서의 영향력은 종언을 고해야 했다. 현 살만 국왕의 아들인 당시 메디나 주지사가 한국 조선사 출장자들에게 헬기를 내줄 정도였던 일이 틀어졌으니, 그로 인해 잃은 신임을 다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먼저 저자의 설명을 통해 MASGA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삼프로TV에 여러 차례 출연해 이 책 내용 대부분을 설명했는데, 그 방송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내내 감탄하며 들었다. 감탄할 만한 내용에 못지않게 저자의 설명 또한 일품이었다. 나는 저자만큼 쉬운 말로 흡인력 있게 설명하는 이를 좀처럼 보지 못했다. 듣고 배워서 알게 된 게 아니라 겪어서 아는 일인데다가, 조리 있는 말솜씨와 선명한 발음까지 받쳐줬으니 말이다. 이처럼 그의 설명이 탁월하기도 했지만, 아마 내가 경험한 것도 MASGA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해 결코 장밋빛 환상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심 반기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갑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리스크는 명확하다. 중국의 보복, 불확실한 수익성, 복잡한 기술적 어려움, 미국 해군의 일관성 없는 요구 사항 변경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불참해도 리스크를 떠안는 건 마찬가지이다.”
불참해서 안아야 할 리스크가 없다면 피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어쩌다 미국 조선산업의 근거가 되었던 미국 해군력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저자는 미국 해군 전력 약화는 이미 공개된 사실이라고 말한다.
“레이건 대통령 이후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계속해서 해군 전력을 줄였다. 그래도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의 군사 대국화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해군은 여전히 타국을 압도했다.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예산이 줄고 배도 계속 줄어들자 해군의 처지는 자기 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군은 배를 건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쪽을 택했다. 그래야 사람들 일자리가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조선소 역시 건조 기간을 늘리는 게 더 유리했다. 그래서 체인지오더를 통해서 기간을 늘리고 추가 비용을 청구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미국 조선소와 미국 해군 사이에 공생 관계가 생기면서 미국 조선업의 느리고 비싼 구조가 고착됐다.”
해군의 조선 관계자나 조선사로서는 현명하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 해군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현재 세계 해군력은 숫자로만 보면 중국이 1위이다.
저자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상당한 전력 손실이 일어났는데도 결국 일본을 항복시킬 수 있었던 건 바로 미국의 압도적인 조선산업 역량이었다고 말한다. 미국 해군 때문에 조선산업이 상승기류를 탔는데, 그 조선산업 때문에 미국 해군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경쟁에 뒤진 미국 조선산업으로는 위기를 맞은 미국 해군이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저자는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내비친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 건으로 전쟁이 일어나 양쪽이 모두 막대한 피해를 본다면 몇 년 지나면 명백하게 중국 해군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이 빠르게 해군력을 증강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양적 기준으로 세계 1위로 부상한 민간 조선 능력을 해군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이를 극복하자는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저자는 이의 배경과 전략과 기술에 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 의아한 건 기술 인력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인건비가 우리의 두 배인 곳에서 과연 채산성을 맞출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전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후 더 이상 언급이 없다. 인건비만 비싸다면 경제성의 문제로 그치겠지만, 기능이 떨어지거나 떨어지는 인력조차 구하기 어렵다면 이건 지속 불가능한 구조가 아닌가.
우리 역시 사우디 국영 조선소를 계획할 때 그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일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인력을 교육해 조선소를 꾸려간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동남아 인력을 전제로 추진했다. 물론 국가에서 의무 고용을 요구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풀어간다는 생각이었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평가가 숙련공의 부재 때문이라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언급이 없는 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내 관심은 미래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내 글이 거기서 맴돈다. 다른 구간이 흥미롭지 않다는 건 아니고,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스가 프로젝트는 소문에 비해 정립된 견해가 아직 없었고, 더구나 내가 사우디에서 경험한 게 있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나 싶다.
비록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건 사실이지만, 저자는 트럼프 퇴임 후에도 이 사업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마스가 프로젝트라면 트럼프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의 결과물인 이상 트럼프 퇴임과 무관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고민은 중국과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군력이 필수적이고, 해군력은 조선산업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이니.
저자는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에 관해 다음과 같은 염려를 표한다.
“지금 한국은 다품종 대량생산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숙련 기능공들이 은퇴하면서 핵심 인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인력을 새로 뽑아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의 배나 되는 월급으로도 사람을 뽑기 어렵다. 자동차 같으면 인건비가 올라가면 브랜드를 고급화해서 단가를 올리지만 배 가격은 쉽게 못 올린다. 그뿐 아니다. 2015년 이후 수년간 조선 불황을 거치면서 공동체 정신을 지닌 세대가 대거 은퇴했다.”
이게 어디 한국 조선산업만의 문제겠으며 또한 한국만의 문제이겠나.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체코도 그렇고, 자식 가족이 사는 옆 나라인 독일도 같은 문제로 과연 제조 강국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에게 마스가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인력은 남아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