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일기 2026.03.07 (토)

by 박인식

요즘 성경 쓰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탈출 서사인 출애굽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을 썼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게 마땅한 일인데, 오늘은 먹을 게 마땅치 않자 차라리 애굽 땅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먹던 때에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는 목소리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러면서 발칙하게도 그들에게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게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폭격으로 이란의 하메네이가 죽었지요. TV 뉴스에서 이를 전하던 앵커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더군요. 한쪽에서는 그 소식에 환호하며 춤추는 이들도 있고.


문득 애굽 고기 가마 곁에서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쪽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중에는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은 없었을까요? 그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라와 영토를 회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모세를 따르지 않은 백성들을 그저 철없고 신앙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던 생각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요?


공교롭게 요즘 읽고 있는 게 모두 피해자 서사에 관련된 책입니다. 임수희 판사의 회복적 사법 이야기인 <처벌 뒤에 남는 것들>, 그리고 어제 읽기를 마친 최태섭의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거기서 피해자들에게 대한 대접은 어느 사회나 대동소이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고, 그럴 만해서 그런 대접을 받고 산다고 말하지요. 그들은 그런 가운데 사그라져가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스스로 저주하면서 살아갑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에서 저자인 최태섭은 “억울함은 쉽게 사라지거나 치워둘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특히 힘들고 괴로운 사람 마음에서 더 쉽게 자란다. 그래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더 높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생겨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은 또 그들을 옥죄는 구실이 되겠지요.


애굽 고기 가마 곁에서 죽는 게 나았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시 그런 상황은 아니었을까요?


사도행전에서 베스도 총독이 복음과 부활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바울 사도에게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는구나”라고 한탄합니다. 저는 복음과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바울 사도의 학문 수준과 비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처지이기는 합니다만, 책 몇 권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기왕 미칠 거라면 이런 이들을 편드는 쪽으로 미치는 게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싶네요.


KakaoTalk_20260307_214538244.jpg


매거진의 이전글체코일기 2026.03.0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