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일기 2026.03.16 (월)

by 박인식

어제 우여곡절 끝에 군용기 편으로 이백 명이 넘는 사우디 교민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사우디 교민 채팅방을 통해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한두 해 전에만 해도 ‘아라브로’라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교류하던 교민들이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옮겨 아주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고 있습니다. 전쟁 일어나기 전에 1,200명 정도이던 것이 지금은 1,800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제가 살 때도 전쟁 위협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예멘에 있던 후티 반군들이 미사일을 날리고, 한낮에 그 미사일을 요격하는 소리에 놀라 일하다 뛰어나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아브카이크 정유 공장에 미사일이 떨어져 아람코에서 원유 생산을 한동안 멈추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는 심하기도 했고, 새로 온 교민들은 후티 반군 미사일 공격을 경험하지 못해서 몹시 놀라기는 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채팅방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오래된 교민들과 새로 온 교민들이 이 전쟁에 대해 느끼는 온도가 확연히 달라 보였습니다.


이번 주말이면 라마단이 끝나 이드 휴가가 시작됩니다. 라마단은 헤지라 달력으로 아홉 번째 달입니다. 헤지라 달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안 달력보다 11일이 짧아 라마단이 매년 그만큼씩 앞당겨집니다. 라마단 한 달 동안 낮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웁니다. 그러니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렵지요. 셋째 주 정도부터는 업무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라마단 끝나고 이어지는 이드 축제 기간까지 휴가를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공교롭게 그때 전쟁이 일어나서 휴가를 계획했던 많은 교민이 금전적인 손해도 많이 봤습니다. 항공편이 취소되고, 대체 항공편은 요금이 천정부지로 뛰는 데다가 구하기도 어렵고. 고생스럽기는 해도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 과정에서 정부가 교민 철수를 위해 항공편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교민 중 적지 않은 분들이 거기에 부정적이더군요. 고생 좀 하고 비용 좀 더 들이면 해결할 일을 정부 탓을 한다고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처음 겪는 일이니 그러기는 했겠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겪는 이들 사이에 온도 차가 꽤 큽니다. 연평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던가요? 외국에서는 전쟁 났다고 자국민들 대피시켜야 한다고 난리였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이 느끼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였지요. 아마 제가 사우디 살았으면 정부가 교민 철수를 위해 항공편을 보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교민 몇 분과는 지금도 자주 통화하는데, 저같이 생각하시더군요.


오늘도 출애굽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023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주제로 한 책을 꽤 여러 권 읽었습니다. 거기서 공통으로 말하는 게 지금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다수가 예수 십자가 사건 이후 추방된 유대인들과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자기네가 그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그래서 그들의 신앙적 유지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려면 그 믿음의 근간인 구약성경을 따르는 게 옳지 않을까요?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 때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구약성경을 들고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가 있는 땅이 바로 이스라엘 땅이고, 유대 민족의 역사와 권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자기네 투쟁의 근거로 삼았던 구약성경을 지금은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이 이거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그들 역사에 그런 일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나그네가 되는 것 역시 재앙일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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