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대사대리로 외교관의 삶을 마무리하고 퇴임하신 분의 글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중동에서만 외교관으로 삼십 년 가까이 근무하셨으니 중동 전문가로 이에 필적할 만한 분을 찾기 어렵지 싶습니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에 대한 글 중 그만큼 정확한 글을 보지 못했거든요. 물론 같은 사실을 놓고도 해석은 여러 갈래 일 수 있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올리신 글이 바로 그렇습니다.
오래 전, 중동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사장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소회를 물으셨다는군요. 그랬더니 “기대, 분노, 절망, 포기.” 이러더랍니다. 그러면서 왜인지는 설명이 안 되지만 중동에 있었던 사람 중에 결국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중동이란 살면 기가 차는데 떠나면 생각나는 곳이라고, 그래서 중동은 이상한 곳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안 갑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제 생각이 그 지사장과 똑같은데, 그런 사우디에 왜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이 나겠습니까.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절대로 안 가고,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그만한 아픔이 있지요.
사우디에서 돌아오기 전 7년간 소송을 치렀습니다. 깐깐하기 짝이 없는 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 컨설팅 회사에서 사업관리단으로 공사를 이끌었는데, 그들이 가장 우수하게 공사를 마쳤다면서 준공확인서까지 발급해 준 공사를 발주청이었던 사우디 정부 부처에서 부실시공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사비 반을 지급하지 않았거든요. 그 때문에 마지막 5년은 월급도 받지 못하고 소송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이제 와 무서울 게 뭐 있겠습니까. 다 털어놓지요. 뇌물 요구를 거절했거든요. 얼마를 요구했는지 아십니까? 백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뜯겼지요. 그보다는 훨씬 적습니다만. 이 사실을 공사비 지급 부처인 재무부에 탄원하고, 국왕에게 탄원하고, 소송을 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4년이 넘어 승소 판결을 받기는 했습니다. 곧이어 발주청에서 항소하고. 결국 그 2심 판결은 보지도 못하고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요. 심신이 더 망가질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 사이에 뇌물을 요구한 장관은 임기를 마치고 떠났습니다. 후임이 오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똑같더군요. 먼저 뜯긴 뇌물 증거를 제출해도 사정 기관 어디서도 조사는커녕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의 시청에서 용역을 하나 낙찰받았습니다. 사실 그 용역 하나를 얻겠다고 2년 가까이 공을 들였습니다. 그 사이에 용역비도 안 받고 검토해 준 게 몇 건인지 모릅니다. 낙찰되고 나서 시장에게 인사하러 가니 저만 따로 보자더군요. 자기 동생이 공장을 하나 짓는데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적게 잡아도 억대가 넘어가는 용역이어서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결국 그 용역은 계약도 해보지 못하고 몇 달 뒤 정부 포털에서 발주가 취소되었다는 공고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당한 거 다 털어놓으려면 밤새는 걸로도 모자랄 겁니다. 이만하면 쳐다도 보기 싫은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지요, 그런데도 관심은 가더란 말입니다. 지금도 사우디 교민 카톡방에 들어 있습니다. 하루에 적으면 수십 개, 많으면 수백 개 글이 올라옵니다. 그걸 꾸역꾸역 다 읽고 있다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분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살면 기가 차는데 떠나면 생각나는 곳’이라는 말씀이 말입니다.
그래도 안 갑니다. 또 못 가기도 합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한국에 나와 잠깐 숨 돌리고 가자고 했던 게, 그 길로 주저앉았거든요. 밀린 월급이고 뭐고 다 싫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거주허가를 반납하고 나머지 절차를 밟지 않은 거지요. 그러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국이 안 됩니다. 뭐, 징글징글하기도 하고.
체코에서도 거주허가증을 받았지요. 1년짜리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묘했습니다. 말하자면 외국인 노동자 증명서인데,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받았으니. 이젠 그런 거 더 받을 일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