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2월에 지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햇수로 45년째 근무합니다. 일반 기업으로도 그렇고, 근속 연수가 짧기로 이름난 용역회사에서는 가히 천연기념물 감이지요.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저라고 그만둘 생각을 할 일이 없었겠습니까.
부서 이동으로 새로운 상사와 일하게 되었는데, 생각하는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은 물론 어느 것 하나 동의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날이 지나는 동안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해결은 되지 않고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달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 길이 아니라고 말려도 알아차리지 못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벽으로 막아놨는데, 그 벽을 뚫어보겠다고 머리를 들이박는 건 아닌가 싶었지요. 그 생각이 드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해 보리라 굳게 다짐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더군요. 아, 이 길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몇 달 더 고생하다가 부서 개편으로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꽤 오랫동안 큰 결정을 앞두고 기도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요동치곤 했습니다. 저는 견디는 건 자신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45년째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5년이나 월급도 받지 못하면서 사우디에서 공사비 지급 소송에 매달리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지요.
예전엔 모든 문제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지내다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지금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것이 극복해야 할 문제인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니 돌아서야 하는 문제인지 구분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요즘 성경 쓰기는 가나안에 보낸 열두 정탐꾼 이야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열두 명이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면서 확인한 사실은 똑같았습니다만, 그에 대한 해석은 정반대였지요. 열 사람 모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히 그 땅을 얻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그 땅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을까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흔들림 없이 같은 생각을 했을까요? 글쎄요. 저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상당히 번민했을 것 같습니다. 100:0이 아니라 51:49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위대한 영웅과 부끄러운 배반자의 차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일하는 현장은 인터넷에 접속하고 8시간이 되면 연결이 끊어집니다. 그러면 새로운 코드를 받아 다시 접속해야 합니다. 대체로 10시간쯤 근무하니 매일 이런 일을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코드를 두 번이나 새로 받았습니다. 오후 3시 반에 두 번째 코드를 받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 세 번째 코드를 받았습니다. 밤새우고 있다는 말이지요. 꾀가 나서 잠깐 머리 식힌다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부활절이지요. 독일에 있는 손녀들이 지금 부활절 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침 휴가 갈 때가 되어 이번에는 아이들과 지내려고 합니다. 아내는 며칠 전에 왔지요. 휴가는 가야 하고, 월간 보고서는 내야 하고.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도 서너 시간만 더 하면 끝나기는 하겠습니다.
이제 목요일이면 아이들을 만나겠네요. 큰 아이가 한창 사춘기여서 그런지 한동안 서먹했는데, 요즘엔 다시 밝아졌습니다. 보고 싶다고 얼른 오라는군요. 저를 보는 얼굴빛이 달라졌다니까요. 그런데 까짓것 하루 밤새우는 게 대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