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빨간소금
2020년 11월 12일
외국인 노동자로 산 지 십수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달리진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중 으뜸이 배달 문화였다. 앱 하나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고, 그것도 직접 사 오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빨리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다지 급하지도 않은 책 하나를 주문했더니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에 문 앞에 놓여있었다. 책을 급하게 받아야 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걸 일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올 필요가 뭘까 싶었다.
배달이 일상화되었다고 하지만 음식을 시켜 먹을 일은 좀처럼 없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다 보니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나들이 삼아 다녀오면 될 일이었다. 간혹 동네 치킨집에 주문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바깥주인이 직접 배달해서 라이더라는 배달원을 대면한 일은 없었다. 조카가 군대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 삼아 라이더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카는 여러 사정으로 어린 나이에 풍파를 많이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갚아야 할 돈이 적지 않게 생겼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수가 쏠쏠해서 나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돈 갚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뎠다. 숫자만 화려할 뿐 실제로 손에 들어오는 건 오히려 최저 시급을 밑돌았다. 오토바이 타는 게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 보함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연 천만 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지금은 1,800만 원이 넘는다) 승용차 세금도 일이백만 원 남짓했는데 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오토바이와 직접 부딪칠 일은 없는데, 남이 당하는 거 보면서 분개하기도 하고 영상으로 보면서 왜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지 불평도 했다. 그런데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소위 플랫폼 노동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림자를 발판으로 삼은 플랫폼 기업인 배달의 민족이 딜리버리 히어로에게 인수되던 2019년 12월 당시 인수 가격은 40억 달러였다. 무려 6조. 기업 가치가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면 그 과실이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들이 받는 대우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암울한 전망, 그리고 근로자인데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뿐이다.
회사의 경영 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이 매출과 무관하게 지출해야 하는 고정비였는데, 그 대부분이 인건비였다. 그래서 경영 전략이라는 게 늘 어떻게 고정비를 변동비로 바꿀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계약직은 그 해법이었고. 나는 지금도 계약직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시설이든 오래 빌리면 가격이 내려가고 짧게 빌리면 올라가게 마련이듯, 단기 고용하는 이에 대한 대우가 장기 고용하는 이에 대한 대우보다 낫다면 그건 근로자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한다고만 해도 그 선택은 얼마든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편법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당도 빼먹고 복지도 제공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플랫폼 노동이라는 말이 자리 잡았다. 뭔가 선진화된 경영방식처럼 보이는 이 시스템은 앞서 이야기했듯 오직 고용주의 편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플랫폼 노동의 강점은 원할 때 일하고 원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노동의 선택권이 근로자에게 있는 것인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플랫폼 노동의 출발점인 배달 대행업체에 대한 소개 글이다.
“오토바이를 사면 보험료에 기름값에 엔진오일과 타이어도 갈아야 하고, 사고나 고장이라도 나면 고쳐야 한다. 주차할 곳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근로자를 고용하면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고, 주휴수당에 연차에 퇴직금을 책임져야 한다. 배달 주문 없을 때 근로자가 노는 꼴을 보는 것도 속이 쓰리다. 사람 관리하는 것도 스트레스이고 해고라고 하려면 해고 예고 수당을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부당 해고라고 항의하지 않나 골치가 아프다. 이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하는 게 배달 대행업체이다. 그래서 초기 배달 대행업체는 ‘사고가 나도 아무 책임지지 않습니다’라고 광고했다.”
선진화된 경영 기법이 아니라 고용주의 책임 회피를 위한 방편으로 출발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용 관계가 사업자 간의 대등한 계약으로 치환된다.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초대 위원장인 저자는 실제로 라이더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하지만,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한다고 생각하는 라이더는 없다고 말한다.
“라이더는 세무적으로 따지면 인적용역 사업소득자이다. 그러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가? 그냥 일한다. 계약서도 없고 계약서가 없으니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개인사업자라면서 최소한 추석날과 설날에는 쉬어야 하는데, 음식점에서 장사한다고 하면 쉴 수가 없다. 이건 대행사의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명절에는 쉬겠다든지 아니면 할증이라도 붙여달라고 하면 음식점에서는 대행사를 옮기겠다고 한다. 음식점이라고 대행사나 배달 플랫폼에 불만이 없을까.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이 배달 플랫폼에 착취당하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만인에 의한 만인의 착취인 셈이다.
배달하다가 과로로 죽은 젊은 라이더의 앱에서 “배차 좀 그만 해줘요. 이것까지만 할게요. 급해서 사고 날 것 같네요. 저 밥 좀 먹고 오면 안 될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는 문자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라이더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산재보험도 받지 못했다. ‘자기가 한만큼 자기가 벌어가는 프리랜서’라는 라이더가 말이다. 그러던 2018년 4월, 대법원은 기념비적인 확정판결을 내린다. “배달 대행 앱 노동자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음식 배달원이 아니라 택배원에 해당한다”는 확정판결로 라이더가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구제받을 길이 열린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이를 환영하던 저자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 라이더의 업무가 어떤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봤다면 근로자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컸다면서 말이다.
저자는 라이더가 되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쉽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엔 돌이킬 수 없는 함정이 숨어 있다. 회사와 배송사업자 사이에는 파트너십, 고용, 또는 대리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는 조항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플랫폼 사가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더라도 라이더가 아무 말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여긴다는 조건에도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등록이 불가능하고, 결국 일을 할 수 없다. 말하자면 강제된 동의인 셈이다. (사실 이건 이 경우에 한한 것이 아니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때 누구라 할 것 없이 닥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의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는 강제된 동의) 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서명해야 하는 건 결코 자유로운 계약이 아니다.
또 하나 불리한 것은 자신이 근로자라는 걸 근로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기업을 상대하는 것 백이면 백 무모한 일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형편이 좋지 않은 배달 노동자가 이제는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한 플랫폼 업체를 상대한다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법령은 노동자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그 사실을 사용자가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달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두 다 들을 수만도 없다. 저자 자신도 이를 요구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장 플랫폼을 걷어내야 한다. 출퇴근 시간과 강제적인 업무 지시, 벌금 제도는 논쟁의 여지없이 사라져야 한다. 규제를 벗어나기 위해 계약서에는 사장으로 만들어 놓고 일할 때는 근로자보다 심하게 부려 먹는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로그인 로그아웃하는 프리랜서 형태의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이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할까, 아니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밀어 넣어 보호하는 게 정답일까. 그들의 최저임금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막말로 집에서 누워 로그인한 것까지 최저 시급을 보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동시에 추운 겨울에 앱에 접속해 콜을 기다리는 배달 노동자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도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을 이에 대한 대안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 대안의 배경까지 포함해 두 번을 읽었는데도 플랫폼 기업과 배달 대행업체가 어떻게 다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그만큼 간단치 않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을 듣고 적어도 라이더들의 무법자 같은 행동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건 이해하게 되었다.
“라이더가 난폭 운전하는 건 사실이고, 손님과 문제를 일으키는 라이더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손가락질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거리에 돈을 뿌리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길거리가 아니라 사람과 안전, 시스템에 돈을 뿌려야 한다. 하지만 이 돈을 들이지 않기 위해 탄생한 것이 플랫폼 산업이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이 문제가 풀리기는 어렵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저자가 근본적으로 풀리기 어렵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문제를 풀 방법은 있는데, 플랫폼 산업이 바로 그 문제를 푸는 데 드는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니 말이다.
참고로,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는 곳이 아니라 평점을 바탕으로 음식점을 고르고 음식을 주문하는 플랫폼이다. 배달의 민족을 배달업체로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플랫폼 산업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깊다는 뜻으로 제목을 지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저자가 기대한 대로 많이 알게 되기는 했는데, 너무 복잡해 뭐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