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by 박인식

강지나

돌베개

2023년 11월 6일


나는 가난하게 자랐다. 그래서 배고픈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5학년 때가 가장 어려웠는데, 그해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게 사치였고 끼니를 아예 거른 날이 적지 않았다. 가난을 피해 소년 상경한 아버지와 전쟁을 피해 혈혈단신 남하한 어머니는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었다. 어머니가 아우를 낳고 미역국은커녕 며칠째 끼니를 잇지 못해 정신을 잃으셨을 때, 나는 돈 구하러 집을 비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살려달라며 이웃집 문을 두드려야 했다.


다행히 그 가난은 대물림되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일자리를 얻으셨고, 그 후로 살림이 조금씩 나아져 형제가 모두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식솔을 잘 건사하는 가장으로 자기 앞가림 잘하고 산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근면 성실하고 검약하셨다. 우리 형제가 유난히 우애가 좋았다거나 다른 집보다 가족 간에 특별히 사랑이 넘쳤던 건 아니다. 그래도 부모 형제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의 평균은 되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그 힘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생각해보니 그건 큰 복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난은 두렵다. 그리고 그때 몸에 밴 습성으로 아직도 주머니 여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그게 남을 위해서건 나 자신을 위해서건. 그런 나로서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책은 외면해야 할 책이지 관심을 둘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나로서는 그 모순되는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감동하면서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책에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가난 자체도 힘겹지만, 그들에게 쏟아지는 차별과 배타적인 시선에 더 크게 상처받는다. 더구나 소위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에겐 그 상처가 가중된다.


“부모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 정상이라고 보는 프레임은 이 프레임 밖에 있는 비정상 가족을 모두 소외시키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정상 가족’의 틀이 공고할수록 비정상 가족 혹은 가족이 없는 개인 단위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커진다. ‘정상 가족’이 아니었을 때 경험한 편견 가득한 시선과 차별, 배타성이 가난한 청소년들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그래서 저자는 이 때문에 멍들고 있을 많은 청소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상 가족’보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이 가난의 대물림을 경험하고 있었다.


“조부모의 가난과 병력이 부모의 양육 조건을 부실하게 해서 어머니는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다. 그 결과 어머니는 학력과 노동 능력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얻지 못했고 한 부모가 되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게다가 우울증까지 앓게 되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나 바람까지 악화하였다. 의지할 만한 다른 가족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만성적으로 빠졌다. 어머니는 그에게 신경을 안 쓴 게 아니라 신경을 쓸 수 없었던 셈이다. ...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욕구를 발현할 기회를 수없이 박탈당하면 사람은 누구나 문제 행동을 보인다. 특히 아동기에 문제 행동이 만연한 환경에 노출되면 문제 행동은 빈곤을 대물림하듯 학습을 통해 대물림된다.”


이러한 빈곤의 대물림을 벗어나는 건 굳이 저자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고 한 사람의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된 습속이기 때문이며, 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며 자기 혼자 겪고 있는 일도 아니고 혼자서 해결하라고 방치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청년들을 좀 더 오래 관심을 두고 지켜보며 관계 맺기를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내 마음 어디쯤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부담이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든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저자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본 젊은이 여덟 명 대부분이 성공적으로 그 가난을 극복하고 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것이 과연 가난한 이들의 평균적인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은 남는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똑 부러지고 자기 의견이 뚜렷했다. 어머니도 가난한 가족의 장녀라는 환경 안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희생자이고 자신을 돌봐줄 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자기 삶을 우울하게 생각했지만, 그 원인을 어머니나 가족에게 돌리지 않았다. 어둠과 불행 속에서도 자기 삶을 들여다볼 줄 알았고, 스스로 자기 삶을 해석하고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이런 힘은 그가 가진 장점일 수도 있고, 아무 곳도 기댈 데가 없어서 혼자 터득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스물네 살이 된 그는 열일곱 살 때보다 안정되어 있었고 자기 길을 찾은 것 같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려웠고, 두려움과 불안이 스멀스멀 엄습했다. 그는 스스로 ‘견디는 삶’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기 위해서 혼자만의 결심과 성취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가난으로 인한 낙인을 받아온데다가 이것이 조부모 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면 그 무기력과 절망감은 서서히 학습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습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현재 자기들의 상태를 노력에 대해 작은 보답을 받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우리를 향한 저자의 물음은 준엄하다.


“과연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몸을 다칠 정도로 일하는 20대에게 우리는 잘하고 있으니 계속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쉽게 말해도 될까?”


나도 가난으로 고생하는 젊은이들에게 차마 이 말은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말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자기 헌신이 선행되어야 하는 일인데,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어느 젊은이의 어머니가 지역사회의 지원을 잘 알아보고 활용했다는 부분에 눈길이 멈췄다. 그 어머니는 주민센터 사회복지과를 자주 방문해 정부 지원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 근처 교회의 도움을 받았으며, 사회단체나 지역단체를 통해 후원받았고, 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을 상시로 다니며 아이들이 학습을 지원받고 친교 관계도 적극적으로 맺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그 가족이 빈곤을 극복한 힘의 근원을 설명하느라 한 말이지만, 그것이 가난한 이웃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속해서 돕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십 년도 넘은 일이다. 교회에서 난치병 환우를 돕는 행사를 준비한 일이 있었다. 뜻은 좋지만 그 행사를 지속해서 펼칠 형편이 아니었고 한번 행사로 돕는 건 그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시 청년부장으로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청년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다가 청년들의 정보 검색 능력을 활용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미 그때에도 동사무소를 통해 여러 복지 제도가 가동되고 있었고,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지원 프로그램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운 환우들의 형편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제출하고, 서류조차 갖추기 어려운 환우들의 형편을 각 기관에 잘 설명해 협조를 얻기도 했다.


할머니와 사는 초등부 아이 하나가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부모 모두 소식 끊어진 지 이미 오래였고, 할머니의 작은 벌이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교우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했지만, 이식수술에 드는 비용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형편이 매우 어려웠는데도 소식 끊어진 아이 아빠가 부양 의무자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도 얻지 못했다. 그 형편에 수술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청년부에서 확인해 보니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난치병인 백혈병은 수술비 전액을 감면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청년들이 나서서 이웃들에게 아이 아빠가 소식이 끊겼다는 증언을 받고 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자를 설득해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았다. 수술비가 해결되었으니 그동안 모금해놓은 것으로 비급여까지 해결할 수 있어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증자가 나타나기 전에 아이는 별이 되었다. 우리가 몇 달만 먼저 그 길을 찾았더라면 건질 수 있었던 그 생명을 놓치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이처럼 의지만으로도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적지 않다.


저자는 가난한 이들이 사기 피해자가 되는 일이 사회에서 비난하는 것처럼 헛된 욕심 때문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만약 당신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태라면 사기 피해당하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하고 다급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라면 합리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기 힘들다. 빈곤층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안전망이 부족해서 자기 앞에 닥친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결국 의도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가난한 이들을 돕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경원하거나 비난하는 건 몹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당해보지 않고서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어디 세상에 그것뿐일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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