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동의 이해

by 박인식

인남식

명인문화사

2026년 1월 30일


중동학자 인남식 교수가 중동에 관한 책을 냈다. 진즉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었다. 얼마 전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고, 해외 출판도 타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인남식 교수 스스로 외롭고 추운 학문이라고 했듯 중동 관련 서적이 중쇄를 찍기가 어려운데,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소식에 조금은 만만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중쇄를 지나 3쇄를 찍었다면 일반인에게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곧 그런 짐작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문부터 이건 각 잡고 읽어야 하는 책이고, 한번 읽고 덮을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봐야 할 교과서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저자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외교관으로 임용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강의록이라고 했다.


전자책이 출간되지 않아 아내더러 가져다 달라고 했다. 엊저녁 아이들과 여행 다녀오고 나서 읽기 시작해 저녁 먹기 전까지 꼬박 하루 동안에 마지막 장까지 읽기는 했다. 이해를 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고, 공감한 것도 적지 않고, 가끔 질문이 생기거나, 때로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십 년 넘게 그곳에서 발버둥 쳤던 사람으로 나름의 소견이 없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어디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파악했으니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리라.


순서대로 읽어가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사우디 관련 항목이었다. 사우디 역사, 권력 구도, 경제 부분에서 오래 머물렀다.


저자는 중동을 최소, 중간, 최대 범위로 나눈다. 나는 아라비아반도에 머물면서 그 지역 외에 미스르 지역인 이집트와 수단, 샴 지역인 레바논ㆍ요르단ㆍ시리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중동을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내 삶의 반경은 그 중 최소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주변에 리비아에서 모로코까지 이르는 마그레브 지역을 중동의 범주에 넣는 이들은 더러 있었어도, 튀르키예와 이란까지 중동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슬람의 관점에서는 스스로 수니파 종주국을 자임하는 튀르키예나 자타 공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을 중동으로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동과 이슬람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중동 분쟁을 이슬람 종파 분쟁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올 때쯤에는 이들에게 이슬람이 과연 종교인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막연하게 갖고 있던 의아함이 질문으로 변하게 된 것은 종교 경찰 해산이 결정적이었다. 집 앞에 종교 경찰(권선징악 위원회) 본부가 있었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해산을 명령한 이튿날부터 인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십여 년을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두르던 집단이 왕세자 명령 하나에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것도 그렇다. 십수 년 함께 일하면서 사우디 파트너가 기도하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왕자궁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던 열 명 넘는 사우디 사람 중에서는 왕자 한 사람뿐이었다. 기도 시간을 지키는 기업인이 매우 드물고, 지키는 건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관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열심히 참석하는 건 그 시간이나 쉴 수 있는 고단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중동 국가 간의 대립을 이슬람 종파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시선도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았다. 대립 구도에서 종파 갈등을 걷어 내도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슬람 수니파는 합의 추대를 통한 권력 계승을 추구하고 시아파는 혈연 계승을 추구하는데, 현실에서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혈연으로 계승하는 왕정 국가이고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오히려 선출로 권력을 계승한다며 전통이 뒤바뀐 걸 지적한다. 그러면서 양국 모두 종파를 내세우지만, 핵심은 이념이나 교훈이 아니라 권력 쟁탈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국 지도층들에게 이슬람은 신앙이 아니라 통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고단한 서민들에게는 위안이요 도피처일 뿐이고. 물론 이슬람을 이렇게 단순화할 일은 아니지만.


현대 중동을 이해하려면 후세인-맥마흔 서한, 사이크스-피코 합의, 벨푸어 선언으로 이어지는 3대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졌고, 유럽 열강의 중동 나눠 먹기에 지나지 않는 이 합의가 바로 지금의 중동 분쟁을 배태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우디에 사는 동안에는 이런 배경을 알지 못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 합의가 현대 중동 정세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좀 더 상세히 설명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는 분량이 두 배로 늘어도 모자랄 테지만.


중동 산유국이라는 용어는 중동과 관련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사실 산유국은 걸프협력체(GCC) 6개국에 이란 정도가 전부이다. 산유국과 비산유국 사이의 경제력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중동 비산유국에서는 산유국에 인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것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셰일오일 개발로 산유국의 원유 경제도 이전 같지는 않다. 예전 같았으면 2023년 10월 이-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가 200달러 이야기가 나왔을 테지만, 100달러는커녕 80달러 회복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산유국 경제를 탈피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사우디의 ‘비전 2030’이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가 이보다 8년이나 앞서 공식화했다. 2016년 사우디에서 이 정책을 발표했을 때 이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계획 하나하나를 세밀히 살핀 일이 있다. 당시에는 새로운 게 눈에 띄지 않았고, 그저 ‘산유국 경제 탈피’라면 으레 따라오는 ‘늘 부르는 노래’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이 구체화하는가 싶을 때는 잘 알려진 네옴시티를 비롯한 매우 비현실적인 계획으로 아연실색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강한 근로자를 준비하는 일’에 관한 계획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저자는 8장에서 중동 경제 전반을 각국의 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것도 제대로 쓰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판이니, 섣불리 손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국가가 수립한 경제 정책을 사회가 수용할 역량이 있는지, 그럴 의지는 있는지 하는 측면에서 조명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 사회의 수용 능력을 고려한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런 분석이 나왔어야 하는 건데.


오늘도 언론의 헤드라인은 모두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데는 멀리는 앞서 언급한 3장 ‘역사’에서 언급한 ‘3대 합의’, 가깝게는 10장 ‘국제 관계’와 11장 ‘분쟁’이 큰 지침이 된다. 당장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면 우선 그 부분부터 읽을 것을 권할 만하다.


전문 서적은 대부분 ‘참고 문헌’을 싣는다. 드물기는 하지만 ‘찾아보기’가 실린 책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찾아보기’를 실은 책을 찾아보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독자로서는 몹시 아쉬운 점인데, 이 책에서 ‘찾아보기’를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일부 독자들이 표현하는 편집의 아쉬움 중 상당 부분을 이걸로 만회하지 않았을까 싶어질 정도이다. 사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면, 저자나 출판사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찾아보기’는 필수 항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비록 권고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어쭙잖게 사우디 왕조사를 쓰겠다고 두 해 넘게 공부를 이어오고 있었다. 무리한 일인 줄 알면서도 이어오고 있었는데, 그게 무리한 계획이 아니라 허무맹랑한 일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깨달았으니 더 늦기 전에 바로잡을 일이다.


제목 그대로 <현대 중동의 이해>를 위한 훌륭한 개론서이다. 당연히 각론서가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사심을 담아 예측한다면, 아마 첫 번째가 ‘현대 중동의 등장’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자연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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