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지도 전쟁

by 박인식

김인현

리코멘드

2026년 2월 20일


아마 나도 지도 상용화 1세대에 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업무는 지도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80년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회사로 옮길 때까지 3년 가까이 근무하던 자원개발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는 지도를 관리하고 제작하는 도폭실(圖幅室)이 있었다. (우리나라 지질도는 이곳에서 제작한다) 그곳에서 지도를 찾다가 울진군이 강원도로 표시되어 있던 지도를 본 일도 했다. 지금 회사로 옮기고 나서도 지도가 업무의 근간이 된 건 다르지 않았다. 모든 지질조사 결과를 지도에 연계해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1:25,000 지형도를 확대해 사용하다가 90년대 무렵부터 1:5,000 지형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사 보고서에 사용하는 지도를 만들다 보면 도폭을 이어 붙여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종이 지도는 늘 그게 제대로 맞지 않았다. (물론 인쇄의 문제였을 것이다) 당시 1:5,000 지형도는 공평동에 있는 중앙지도에서만 살 수 있었다. 얼마 후 디지털 지도가 나와 그 지도에 현장 측량 결과를 입혀 보고서에 실을 기본도를 마련했는데, 그 때문에 도면의 정확도가 한결 높아졌다.


구글이 1:5,000 지형도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을 때 나는 그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지도를 만드는 데 들인 수고와 그렇게 만든 지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십수 년 해외에 근무하면서 구글맵에 아주 익숙해졌다. 간혹 한국에 휴가 오면 국내에서 개발한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는데, 프로그램 자체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것 때문에 앱을 새로 깔아야 해서 귀찮기는 했다.


최근 구글에 정밀지도를 넘겨주는 협의가 시작된다는 뉴스 때문에 다시 이 문제에 관심이 끌렸다. 정밀지도를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정부가 들인 노력을 아는데도, 그걸 넘겨주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고려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구글이라는 거대 플랫폼에 종속된다는 면에서 특히 그랬다. 그렇다고 그럴 만큼 구체적으로 아는 건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유튜브 방송에서 전문가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의 생각이 몹시 궁금했다. 정밀지도를 넘겨주든 넘겨주지 않든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인데,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뜻밖에도 대답은 이 문제를 ‘열자’와 ‘막자’의 ‘싸움’에서 ‘나누자’라는 ‘질문’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구글에게 정밀지도를 반출하는 문제로 세 번의 논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7년 국정원과 구글 사이에 1:5,000 수준의 고정밀 디지털 지도 제공 가능성 논의가 있었다. 이 사실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 시도가 무산되었다. 2016년 같은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었으나 2007년 사태로 형성된 첫 방어선이 있었기에 이때도 ‘이미 한 번 멈춘 적이 있다’는 기억이 작동해 이를 다시 막아냈다. 2007년의 방어선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열자’와 ‘막자’의 ‘싸움’이 아니라 ‘나누자’라는 ‘질문’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불거진 논쟁에서는 정밀지도를 넘기겠다는 원칙은 거의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열자’와 ‘막자’의 ‘싸움’에서 ‘나누자’라는 ‘질문’으로 옮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설명 끝에 그 전문가는 ‘익명의 제보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심하게 털어놓은 것 같지만, 그로서 그가 이 문제를 얼마나 자기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방송을 듣고 방송 내용을 상세하게 풀어놓은 이 책을 주문했다.


위에서 언급한 ‘막자’와 ‘나누자’에 관련한 몇 가지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길게 인용한다.


“지도는 안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문제이다. 국가를 지키는 눈이 되고, 산업을 먹여 살리는 밥줄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한 나라의 데이터만으로도 작동하지만 여러 나라의 데이터를 결합하면 더 강력해진다. 이때 질문이 생긴다. ‘어디까지 나누고,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모든 데이터를 닫아걸 수도 없고 모든 데이터를 열어둘 수도 없다. 또한 지금의 쟁점은 ‘지도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그 지도로 학습한 인공지능의 판단과 권한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이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국가의 전략이 된다. 데이터는 더 이상 부수적인 자원이 아니다. 데이터는 영토다.”


“고정밀 디지털 지도는 단순히 길을 찾게 해주는 지도가 아니다. 도로와 시설, 도시 구조가 좌표로 정리된 국가의 디지털 국토다. 미국과 중국 역시 지도와 공간 정보를 전략 자산으로 관리한다. 데이터를 무조건 막는 대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조건부로 열며, 무엇을 공유할지를 스스로 정한다. 이것이 데이터 문턱의 본질이다. 무역 전쟁과 지경학의 시대에 지도 반출을 통제하는 건 고립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개방과 방어의 균형을 주권 국가 스스로 설계하는 행위다. 영토를 잃으면 되찾을 수 있지만, 한 번 넘어간 데이터와 고정밀 지도는 되돌릴 수 없다. 데이터는 복사되고 인공지능에 의해 학습되며 다른 시스템에 섞이는 순간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다.”


“오픈소스 진영에서는 지도를 개방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개방은 진보처럼 보이고 공유는 정의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다. 누가 개방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공유하는지, 공유와 개방의 이익과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오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오픈소스와 고정밀 국가 지도는 같은 범주에 놓을 수 없다. 오픈소스는 누구도 독점하지 않으며 결과가 공동체로 환원되는 구조를 전제한다. 디지털 지도는 국가가 세금으로 구축하고, 안보ㆍ행정ㆍ산업 전반을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다. 오픈소스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구글은 오픈소스 공동체가 아니며, 이를 활용하는 기업일 뿐, 결과를 다시 공공재로 환원하는 주체가 아니다.”


저자는 이미 인공위성 영상으로 한반도를 다 볼 수 있는데, 고정밀 디지털 지도 정도는 개방해도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나 역시 같은 의문을 가졌었다.


“국토 위성은 2미터급의 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하지만, 이 영상 자체로는 풍경에 가깝다. 좌표를 보정하고, 기준점과 결합하며, 수치 지도와 같은 고정밀 디지털 지도와 연결될 때 비로소 국가가 판단에 사용하는 정보로 기능한다. 지도에는 각종 인프라와 건물이 좌표로 엮여있다. 이 정보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데이터와 결합하는 순간 국가의 작동 방식 전체가 드러난다. 따라서 위성으로 다 보이는데 지도쯤은 줘도 괜찮다는 말은 사람 얼굴이 보이니 개인정보쯤은 줘도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확대해 골목과 교차로를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건 지도가 방향만 알려주는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정밀하게 복사한 데이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준다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접근을 ‘막자’는 게 아니라 정보를 ‘나누자’는 것임을.


일반인 사이에서 구글에 지도를 내어주자는 의견이 나오는 건 구글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데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구글 지도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술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하나의 앱에 익숙해진 사용자 경험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앱은 병행해서 사용하면서도 유독 지도만은 하나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고착되었다. 이때의 불편은 기능의 부족이 아니라 기본값이 바뀌지 않는 데서 오는 심리적 저항에 가깝다. 구글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은 편리함 때문이다.”


나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오랜 해외 생활 끝에 귀국했을 때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에 못지않은 앱이 복수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유럽처럼 국경 이동이 자유로운 곳에서는 국가가 바뀔 때 구글맵이 연결되지 않아 혼선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육상으로 진입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우리 내비게이션을, 그것도 아주 품질 좋고 무상인 앱을,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게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국에서 한국의 특정 지점까지 경로를 탐색할 수 없다는 불편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해도 저자가 제안한 대로 ‘나누자’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 문제도 해결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정밀 디지털 지도가 구축되어 있고, 나 또한 그 시스템 덕을 크게 보고 살았다. 저자는 고정밀 지도의 의의는 지도 자체보다는 그 시스템을 국가 시스템으로 구축한 선견지명에 더 큰 무게를 싣고 있다.


“1996년 종이지도를 디지털 수치지도로 전환하고 1:5,000 축척을 국가 운영의 기준면으로 삼겠다는 체제가 제도적으로 굳어졌다. 2001년 산악 지역을 제외한 전국 단위 1:5,000 디지털 수치 지도 총 15,813매가 물리적으로 완성되었다.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1:5,000 수준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특정 도시나 특정 프로젝트에 한정된다. 한국 디지털 지도에서 중요한 점은 1:5,000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이를 국가 운영의 기준면으로 삼고 공공이 이를 지속해서 관리, 고시, 제공해온 운영 모델 그 자체이다. 이 모델 위에서 민간은 서비스를 만들고 산업은 경쟁력을 만들 수 있었다.”


내 직업에 관련한 내용이다 보니 책을 읽으며 접어놓은 페이지 때문에 책이 두툼해졌고, 리뷰도 그만큼 길어졌다. 구글에 고정밀 지도를 반출하는 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지적은 마음에 담아둘 만하다.


“유럽에서는 구글을 선한 기업으로 대하기보다는 큰 힘을 가진 플랫폼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개인정보 보호와 반독점 규제를 통해 구글의 행동을 제한하려 했다. 이는 구글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영향력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힘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힘은 언제나 견제의 대상이 된다.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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