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왕
우진하
웅진지식하우스
2026년 2월 5일
“‘변호사의 나라’ 미국,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이라는 독창적 프레임으로 두 초강대국의 전혀 다른 작동 방식과 미래 설계를 조망한 이 책은 도발적인 주장과 날카로운 통찰, 생생한 사례로 출간 직후 아마존 독자들을 비롯해 영미권 유수 매체의 극찬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은 이례적으로 한국에까지 이어져 한국어판이 출간되지 않았음에도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 및 주요 언론이 이 책을 주목했고, 원서를 찾아 읽은 수많은 한국 독자들이 개인 블로그와 SNS에 서평을 게재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요즘 들어 페북이 장삿속을 너무 드러내고 있어 불편한데, 그래서 많은 이들이 페북을 떠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의외의 결과에 나는 오히려 페북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신변잡기의 글이 줄어들고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글이 다수가 되어 간다는 의외의 결과 말이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나는 페북을 통해 얻는 유익이 많다. 그중 으뜸이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위의 글은 몇 달 전 많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리거나 링크한 <브레이크 넥>에 대한 리뷰 중 대표적인 글이다.
저자는 중국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캐나다에 이민해 온 후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실리콘 밸리에 취업했다가, 중국의 기술 발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진 관점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교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을 ‘모든 문제를 소송으로 해결하려 하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엘리트들이 끊임없이 다툴 수 있는 환경에 제도적으로 보장된 나라’로 중국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조하는 데 대단히 능숙하고 모든 문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엘리트 지위를 차지한 공학자의 나라’로 표현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을 ‘공정한 절차’와 ‘압도적 성과’로 요약하면 어떨까 싶다. 이를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압도적 성과를 포기한 나라’와 ‘공정한 절차를 포기한 나라’일 수도 있겠고.
나는 저자가 양국을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비교했을 줄 알았다. 물론 객관적이라는 게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고, 균형이라는 게 양적인 균형과 내용적인 균형이 다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 저자의 내심은 다음 글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초 연구나 창의적 자유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AI의 산업 및 인프라 부문을 지배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공급망, 궁극적으로 기술 권력의 균형을 재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차마 추월한다는 말까지는 하지 못하고 따라잡을 거라는 예측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고 다시 살펴보니 이 책은 왜 중국이 따라잡고 미국이 따라잡히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이에 대해 내가 판단하거나 평가할 만큼 아는 게 없으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다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동안 가졌던 궁금증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 년쯤 전 일이다. 이웃에게 저녁을 초대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해 고생하다가 창업한 회사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한 동네 살았으니 형편이 다 그만그만했는데, 저녁 식사하기 전에 구경시켜준 사무실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구두가 묻힐 정도로 두툼한 양탄자를 따라 들어가니 그림 같은 미인들이 우아한 음성과 자태로 사무실로 안내하는데, 대표실이라는 방이 어찌나 큰지 사람이 어디 앉았는지 찾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설명을 듣는데 상장을 앞둔 주식의 시가 총액을 연 매출의 150배로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생산하는 게 아닌 유통업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시가 총액이 연 매출의 150배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니 그러니까 내가 월급쟁이를 면하지 못하는 거라며 면박을 줬다. 질문을 이어갈수록 답변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저녁 식사 초대를 망칠까 싶어 대충 얼버무리고 나오기는 했지만,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질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은 제조업이나 건설업처럼 물리적인 유형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산업보다는 금융,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핀테크, 유통업과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플랫폼 산업이 대세가 되었다.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는 산업인데, 지금은 오히려 실물 경제가 금융 경제에 종속되었다는 생각이다. 시대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아무리 금융 경제의 기법이 오묘하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시가 총액이 연 매출의 수십 배, 수백 배에 이를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내 질문에 그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가치라고 설명했지만, 그 성장 역시 실물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실물 유통의 규모가 그만큼 커져야 하는데, 그가 취급하는 품목이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게 어떤 품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국 그 회사는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공중 분해되었고 그 이웃은 경제사범으로 교도소에서 꽤 오래 고생해야 했다.)
나는 저자가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거라는 예측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내심 추월한다고 여긴 듯하지만. 그 예측이 달갑지 않은 건 친미 사대주의라서는 아니고, 오히려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어가다 보면 위에서 말한 내 문제의식이 오히려 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신기술이나 산업 혁신 측면에서 미국의 위상은 아직 절대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실리콘 밸리는 발명과 생산 중 특히 혁신을 포함한 발명에만 집중하고 있다. 연구와 개발이 생산 과정에서 배우는 과정을 반복하지 않으면 결국 기술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미국에는 머리만 남겨놓고 손발은 모두 외주 처리한다는 말인데, 그래서는 저자 말대로 기술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에서 평생 일한 내 경험으로도 그 지적은 옳다.
“클린턴 행정부와 뒤를 이은 부시 행정부 모두 미국 기업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조업 이탈로 미국이 경제적 정치적 파멸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미국 제조업체는 중국에 수많은 공장을 세우면서 30년 가까이 절차적 지식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공장이 한 곳 문을 닫을 때마다 생산 기술과 관련 지식이 영원히 사라졌다. 현장의 노동자, 기술자, 제품 설계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공급 업체와 기술 고문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직업인으로서 평생 원전 건설과 관련한 일을 해왔다. 미국은 1979년 Three Mile Island 원전 사고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이번에 체코 원전 수주와 관련해서도 원천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때문에 우리나라 팀이 고생했지만, 지금 미국은 원전을 독자적으로 건설하는 건 물론 설계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도 최근에 재개한 원전 설계에 한국인 기술자 250명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원전 사고 때문에 건설을 중단해서 그런 것이니 비교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고로 원전 건설을 중단한 그 원인 자체가 ‘변호사의 나라’다운 결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단 역시 그들의 결정이니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때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측하고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중국이 과거 미국이 거둔 성공 사례를 착실히 따라가는 동안 미국 정부는 자국의 장점을 점점 잃어갔다. 절차에만 집착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생각 없이 행동만 앞세우는 우파 정치인들과 합세해 행정부를 짓눌렀다. 좌파도, 우파도 국가가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게 돕지 않았다. 분명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중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변화가 없는 기존 상황만 유지하는 데 급급한, 오직 거기에만 점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무능한 국가로 주저앉은 것 같다. 대부분 법률가 출신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사회 지도층은 주로 무언가를 가로막고 방어하는데 능하다.”
그렇다고 위와 같은 저자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절차에만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원인인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이제는 여러 여건이 미국이 제조국가로 회귀할 수 없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중국보다 더 큰 제조국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훨씬 적은 인구, 더 높은 임금과 생활 수준, 기축 통화인 달러의 위치 때문에라도 그렇다. 실생활에서도 미국인이 기숙사와 같은 중국인 노동조건을 감당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은 법률가 중심 국가가 되면서 과거에 발생한 여러 문제점을 바로 잡았지만, 오늘날 미국을 무너뜨리는 두 가지 병폐를 낳았다. 먼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미국 정부와 사회는 전략이나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대신,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변호사 숫자만 해도 인구 10만 명당 400명에 달하는데, 이는 유럽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러한 절차 중심주의는 대학과 기업을 포함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
책의 주제와 거리가 먼 엉뚱한 리뷰가 되었지만, 위에서 인용한 저자의 말이 지금 우리 사회의 사고 체계와 방식의 주류로 자리 잡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렇게라도 정리하고 싶었다. 물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거나, 약자와 소수자의 희생을 치러야 할 대가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이 사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생각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게 모든 논의를 덮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