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Attention Book

by 박인식

김애란

문학동네

2025년 6월 20일


나는 소설이 어렵다. 줄거리가 있는 장편은 그나마 따라가겠는데,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단편은 읽고 나서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데도 다른 이들이 거기서 수많은 의미를 읽어내는 걸 보면 나는 소설 읽을 역량이 모자라는 모양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독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육십 권 가까이 읽기는 했다. 목록을 살펴보니 대부분 장편이고 단편은 서너 권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독서를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로 여긴다. 책을 읽고 나면 가능한 리뷰를 남기려는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용은 고사하고 그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헤아리기 전까지는 내가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은 줄 몰랐다. 기껏해야 이삼 십 권 아닐까 했는데 말이다. 요즘은 점점 사람에 대한 연민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읽은 장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모두 그런 주제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다는 게 지식 습득과는 거리가 있지만, 지식 습득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문학상이란 문학상은 거의 다 받았다는 김애란 소설가가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 방송을 보고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말하는 게 그대로 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말을 그대로 적어놓으면 비문이 허다하지요. 우연히 영상을 통해 그렇게 드문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일이 없습니다. 말을 저렇게 정돈되게 하는 사람이 쓴 글은 어떨지 매우 궁금합니다.”


대표작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집을 고르려니 막연했다. 검색해도 판단이 서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전자책이 눈에 띄었다. 편집자가 소설가를 인터뷰한 책이었는데, 뒤편에 작가가 작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 수록 작품 중 하나인 <홈파티>를 실었다.


인터뷰집이 인터뷰 내용을 날것 그대로 싣는 건 아니지 않을까. 다듬고, 빼고, 간혹 보태기도 하지 않았겠나. 그렇다면 인터뷰집에 실린 작가의 말이 모두 실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터뷰집에 실린 작가의 말이 방송에서 들은 말과 똑같아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작가의 말은 입말이 아니라 글말이었다. 늘 작품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입으로 되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페북에서 늘 관심을 두고 글을 챙겨 읽는 소설가 몇 분이 있다. 그분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서 관심사가 얼마나 다양한지, 게다가 그 관심사에 대해 얼마나 깊게 아는지 늘 놀라고 감탄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것이 작품에 녹아 들어가는 모양이다. 방송에서는 그런 면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매사를 관찰하는 소설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긴, 실제가 아닌 걸 실제처럼 쓰려니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까.


나는 글을 쓸 때 머리로 생각하고, 그것을 입으로 되뇌고, 그러고 나서 글로 옮긴다. 별난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글 쓰는 분들이 대체로 그렇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김애란 작가의 말을 적으면 그대로 글이 되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그도 글쓰기 전에 문장을 떠올리고 그걸 입으로 되뇌는 게 아닐까, 그러다 그게 버릇이 되어서 말이 글처럼 변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인터뷰에서 스스로 자기 말을 ‘문어체적인 말’이라고 정의한다.


편집자가 “같은 카페를 방문해도 어떤 소설을 쓰느냐에 따라 누구는 여기서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생각하고, 누구는 대체 여기서 누가 죽었을까 생각한다”며 작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작가의 성향을 스스로 표현한 게 아닐까.


“지금 이 공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먼저 떠오르네요. 어떤 카페에 혼자 앉아 있지만 그 공간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조금 전 딴 곳에서 일어난 일과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상황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요.”


이 글을 읽고 작가의 장편과 단편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장편인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골랐다. 저렇게 복잡한 감정을 단편에 담았을 텐데, 보나 마나 내가 그 호흡을 따라가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방송에서 한 말이나 인터뷰 내용으로 보아 장편을 읽고 나서도 리뷰를 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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