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깥은 여름

by 박인식

김애란

문학동네

2017년 6월 28일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슬픔이 자식을 잃는 참척의 아픔이라고 한다. 그것 못지않은 게 참척의 아픔을 겪는 자식을 지켜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오래전에 친구가 외손주를 얻었다는 기쁨을 전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소식이 끊겼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외손주를 떠나보낸 것이다. 그러고 그 친구 소식을 다시 듣게 되기까지 두 해쯤 걸렸다.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남편을 떠나보낸 같은 또래의 두 분을 위해 한동안 기도한 일이 있다. 남편을 간호하면서 일상을 이어가야 했던 분의 글을 통해,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분도 그것을 고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남 이야기하듯 상황을 전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일상이 그대로 아픔으로 전해왔다. 아마 받아들이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멀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나는 소설을 이야기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데, 이야기가 아닌 관념적 언어로 이어지는 소설은 버겁다. 젊은 날,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통해 우리 소설을 만나왔다. 수상 작품이 이야기에서 관념적 언어로 변하기 시작한 게 80년대 말 90년대 초 어디쯤이었을 텐데, 아마 그때쯤부터 소설과 멀어진 게 아닌가 한다. 물론, 그때가 살아오면서 가장 바쁘게 보낸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다른 책은 읽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단편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는 장편이 조금 더 편하다.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단정한 말, 정돈된 언어로 말하는 그가 쓴 글은 어떤 모양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13년 만에 발표했다는 장편을 읽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분도 있고, 이 단편집을 권하기도 해서 생각을 바꿨다.


어제 출퇴근 길에, 그리고 저녁 먹고 나서까지 내쳐 읽었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았고, 흡인력이 있었다. 형용사와 부사, 관념적 언어가 적었던 게 큰 이유였을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 대부분이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식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연인을 떠나보내고, 정을 쏟았던 개를 떠나보내고, 기회를 떠나보내는. 문득 요 몇 년 사이에 읽은 소설 대부분이 그랬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인데,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구로 아픔만 한 게 없다는 뜻이었을까?


읽기 수월했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오독일망정. 오독도 독법 중 하나이고, 어쩌면 해석을 독자 몫으로 남겨 놓은 게 작가의 의도일지 모르니 그것으로 읽는 데 들인 시간 값은 했다.


나는 지적할 만큼 문장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다만, 삼사십 대 여성의 글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몇몇 문어체적 단어가 드문드문 나타나 눈에 거슬렸다. 나는 말하듯 쓴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읽기도 이해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늘 소리 내어 읽어보곤 한다. 눈에 거슬렸다는 표현은 그런 관점에서 나라면 ‘입말로 바꿔 썼을 단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단편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편을 잃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소리, 내가 쓰는 물소리, 내가 닫는 문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유리 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최근 같은 아픔을 겪는 분을 위해 기도했던 기억 때문에,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행간에 꾹꾹 눌러 담아놓은 것으로도 오히려 드러낸 것보다 아픔을 더욱 실감 나게 그린 것 때문에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소설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소설이 내 책 읽는 취향과 거리가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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