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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08. 2020

[사우디 이야기 12] 철도와 버스

사우디 이야기 (12)

앞서 말한 대로, 사우디 넓이는 남한의 스무 배가 넘는데 인구는 3분의2 수준이다. 사우디 인구밀도가 한국의 30분의1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많지도 않은 인구가 몇 곳에 모여 살다 보니 도시와 도시 사이는 텅 비어 있다. 비워놓고 싶어 비운 것은 아니고 온통 사막이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도시와 도시를 잇는 광역교통망이 그다지 발달되지 않았다. 도로는 그런대로 갖춰져 있지만 여행객들이 노선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개인차량으로 이동하거나 항공편을 이용한다.


수도인 리야드와 제2의 도시인 제다는 1천km 정도 떨어졌는데 그 사이에 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 자연히 승객은 모두 두 도시를 이동하는 사람들뿐이고, 따라서 굳이 두 도시 사이에 교통망을 깔자고 돈을 들일 유인이 생기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사우디에서 가장 큰 두 도시를 잇는 철도가 없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철도가 적은 편은 아니다. 여객철도로 리야드-담맘 철도(450km)와 2017년 개통한 리야드-쿠라야트 철도(1,250km), 2018년 개통한 메카-메디나 고속철도(450km)*가 있고, 북서부 알조우푸 지역의 금속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걸프해 라스알카이르 항구까지 운반하기 위한 화물철도(1,150km, 여객철도와 공유구간 제외), 기타 지선철도(380km) 등 총연장이 3,680km에 이른다. 참고로 한국의 철도 총연장은 4,900km이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는 무슬림이라면 평생에 반드시 순례해야할 곳이어서 수많은 순례객이 이 지역을 방문해 두 도시를 오간다. 순례는 하지(대순례)와 움라(소순례)로 나뉘는데, 메디나시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순례객은 하지 250만 명, 움라 1,400만 명에 이른다. 2030년까지는 순례객이 이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순례객을 수송하기 위해 메카-메디나 고속철도를 건설했다.


사우디 철도는 SRO(Saudi Railway Organization)와 SAR(Saudi Railway Company) 두 기관이 운영한다. 조직의 특성으로 보면 SRO는 철도청 격이고 SAR은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투자한 공기업이다. SRO는 리야드-담맘 철도와 메카-메디나 고속철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SAR은 남북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남북철도는 사우디 북부 요르단 접경지역인 알조우푸주(州) 쿠라야트에서 리야드에 이르는 여객철도, 그리고 알조우푸주(州)의 잘라미드 인(燐)광산에서 카심주(州)의 자비라 보크사이트광산을 지나 주베일 북쪽에 있는 라스알카이르 항구까지 연결하는 화물철도로 이루어져 있다. 남북철도는 총연장 2,400km로 이중 알조우푸주(州)에서 카심주(州)까지 구간은 여객철도와 화물철도가 공유하고 있다. 여객철도는 리야드-마즈마-카심-하일-알조우푸를 거쳐 쿠라야트까지 연결되는데 현재는 리야드-알조우푸 구간만 운행되고 있다.


남북철도 중 화물철도는 이미 운행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쓸 때까지 여객철도가 이미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킹사우드대학교에서 교통공학을 가르치시는 이성관 교수께서 지적하셔서 부랴부랴 확인하였다. 운영주체가 다르다 보니 출발점인 리야드 역사도 두 곳에 있었다. 늘 이용하던 SRO의 리야드 역사는 리야드 남쪽 도심에 있는데 비해, SAR의 리야드 역사는 오다가다 보기도 어려운 리야드 북쪽 외진 곳에 있어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리야드-카심은 주 2-3회, 리야드-알조우푸는 주 1회 운행하며, 일반석 요금은 5만 원(270리얄)이다. 운행하는 줄도 몰랐으니 당연히 타보지 못했다.


몇 년 전에 한국-사우디 양국이 한국형 소형원전인 스마트원전을 건설하기로 하고 설계까지 마쳤는데, 양국이 이에 쉽게 의기투합하게 된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다. 전기를 사용자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만 드는 게 아니라 사용자에게까지 보내는 송전(送電)비용도 만만치 않다. 땅이 넓으니 송전선도 길어야 하는데, 거기에 비해 사용자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을 뿐 아니라 몇몇 곳에 몰려있다. 그러니 소형원전 건설비가 훨씬 비싸기는 하지만 사용자들이 사는 몇몇 곳에 지으면 엄청나게 긴 송전선을 깔지 않아도 되고, 이 결과로 송전비용이 들지 않으니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비용이 내려간다.


결국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사우디에서는, 건설비는 비싸지만 송전비용이 들지 않는 소형원전을 짓는 것이나, 요금은 비싸지만 철도건설에 돈 들일 필요가 없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한 사우디에 여객철도가 추가로 건설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여객철도 확장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8년에 사우디 정부에서 홍해와 걸프해를 철도로 잇겠다는 Land-bridge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의 리야드-담맘 철도에 제다-리야드 구간과 담맘-주베일 구간을 추가하는 방안이었다. 또한 리야드에서 북쪽으로 카심주의 브라이다-하일을 거쳐 요르단 국경도시인 알조우푸주(州) 쿠라야트까지 철도를 신설하고, 메카-제다-메디나를 잇는 철도를 신설하는 계획도 이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철도망은 궁극적으로 GCC 6개국이 추진하는 GCC철도에 연결할 계획이었다. 이 중 메카-제다-메디나 구간은 시속 300km 이상인 고속철도가 이미 운영 중에 있고, 리야드-쿠라야트 구간도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운영 중에 있지만, 리야드-제다 구간에 대한 추진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4-5년쯤 전에 한국 건설업체에서 제다-킹압둘라경제도시(KAEC, King Abdullah Economic City) 철도건설에 참여하는 걸 검토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사우디 정부에서 건설을 추진했는지, 추진하겠다는 의사만으로 준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GCC철도는 2016년까지는 추진된 흔적이 보이는데, 당시 계획했던 2021년 완공날짜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 착공되었다는 소식조차 들어본 일이 없다.


주베일 인근 해안에서 수행한 해안정화사업 때문에 한동안 담맘과 주베일을 오갈 때 기차를 타고 다녔다. 당시에는 아직 메카-메디나 고속철도가 생기기 전이어서 그것이 사우디의 유일한 철도였다. 하루 다섯 번인가 다녔던 것 같고, 리야드를 떠나 호푸프-아브카이크를 거쳐 담맘까지 가는데 5시간 정도 걸렸다. 당시는 철도가 단선이기도 했고 속도도 시속 110km에 불과해 그렇게 오래 걸렸지만, 그것도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후로 갈수록 더 오래 지연되었는데, 단선이다 보니 한 열차가 지연되면 교행하는 곳에서 기다리던 다른 열차가 지연되고 그것이 또 다른 열차를 지연시켰기 때문이었다.


기차를 타고 다닐 때 복선화공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복선화공사가 끝나고 좀 더 빠른 열차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하루 일곱 차례 다니고 시간도 3시간 30분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기차를 타본 일이 없어 과연 제 시간에 다니는지는 알지 못한다. 요금은 이전보다 조금 올라 현재 1등석이 45,000원(150리얄), 2등석이 26,000원(86리얄)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기차 안이 추워 고생했던 생각만 난다. 열사의 사막에서 그것도 한 여름에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추워서 고생했다는 게 엉뚱한 이야기로 들리기는 하겠다. 이곳은 워낙 냉방을 세게 하기도 하지만 기차 안은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당시는 식당에서도 남녀 자리를 구분하던 때였는데도 기차는 남녀 구분이 없었는데, 아마 아바야를 입은 여성을 기준으로 실내 온도를 맞추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몇 번 고생한 이후로 기차를 탈 때면 늘 두꺼운 긴팔 옷을 챙겨가곤 했다.


하루는 공정회의 때문에 기차를 타고 담맘에 갔다가 회의가 늦게 끝나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리야드로 돌아왔다. 시내 지리에 꽤나 익숙했는데도 버스터미널이 어딘지 몰라 물어물어 찾아갔다. 놀랍게도 동부지역의 중심도시라는 곳에 있는 버스터미널이 우리나라 오지에 있는 허접한 터미널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합실이라는 곳이 앉아 기다릴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금은 18,000원(60리얄)이었고, 버스를 앞뒤로 나눠 남성은 뒤쪽에 여성과 아이들은 앞쪽에 태웠다. 어둡기도 한데다가 고속도로가 아닌 곳으로 가다보니 어디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정류장에 서면 기사가 돌아올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사우디에 살면서 그때처럼 모든 것이 낯선 적이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하다못해 패스트푸드점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곳 음식은 향이 강해 먹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은데 모두가 처음 보는 음식이어서 결국 집에 올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엄청 오랫동안 시달렸다는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 승객 중에 사우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터미널에서도 사우디 사람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버스는 자국민의 주요 이동수단이 아니다 보니 정부나 기업에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년에 메디나에서 며칠 머물렀을 때 직원 하나가 제다에서 와야 했다.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버스로 왔는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400km 조금 넘는 거리를 오는데 무려 8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터미널은 오래 전에 담맘에서 봤던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고, 역시 사우디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SAPTCO(Saudi Arabia Public Transport Company) 홈페이지를 보면 버스는 온라인으로도 예약이 가능하다. 큰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은 대체로 두 시간 간격으로 있고, 시간표도 정확하게 나와 있다. 문제는 8시간 걸려서 왔다는 제다-메디나 구간의 운행시간이 5시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직원이 올 때 사고가 생겼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제다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8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비행기 자리는 없고 차를 가져갈 수도 없는 사정이라면 기차나 버스를 탈 수밖에 없겠다. 기차는 꽤 탈만 하지만 두꺼운 옷을 꼭 챙겨가야 하고, 버스는 선뜻 권하기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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