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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12. 2020

[사우디 이야기 13] 시내교통

사우디 이야기 (13)

사우디에는 리야드 뿐 아니라 다른 도시도 시내에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담은 못한다.) 요즘이야 우버택시가 생겨 나아지기는 했지만, 예전에는 미터기도 달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택시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리야드에 마이크로버스만한 크기의 노선버스가 있기는 한데, 노선이 저임금노동자들 위주로 짜여있는데다가 좁은 버스에 여럿이 끼어 앉다 보니 여성이나 아이들은 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요즘엔 제대로 된 버스로 일부 바뀌기도 했고 노선도 시내 쪽으로 추가된 듯하다.


처음 부임했을 때 사무실에서 백 미터 남짓 떨어진 숙소에서 몇 달 지낸 일이 있다. 뻔히 사무실 코앞에 숙소가 있는 걸 아는 동료들이 왜 차를 빌리지 않느냐고 물어 의아해하니 여름엔 더워서 못 걸어올 거라고 했다. 아무리 더워도 설마 그 거리를 걸어오지 못할까 생각했지만, 그게 빈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길 하나를 건너도 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것이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 도로는 보행자에게 아주 불친절하게 되어 있다. 보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구간도 많고, 보행자를 위한 신호는커녕 횡단보도도 찾기 어렵다. 리야드만 그런 게 아니다. 메디나에는 보도 한복판에 나무를 심어놔서 그걸 피해 걸으려면 차도로 내려서야 하는 어이없는 구간이 적지 않다. 물론 워낙 더운 곳이니 사람들이 걸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걷는 사람이 없으니 보도에 신경을 덜 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아주 뜨거울 때가 아니면 밤에는 걸을 만한데. 요즘엔 이전에 비해 걷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대부분 운동 삼아 걸으니 걷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제는 좀 사람 사는 곳 같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도시에 걷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게 얼마나 이상한 건지.


아직까지는 부녀자가 외출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길에서 택시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마땅한 지명지물이 없어서 어디로 가자고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갈 곳을 지도에 표시해 호출하는 우버택시가 생기면서 이런 불편은 덜었지만, 일반택시나 우버택시나 모두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곳 부녀자 교민들은 알음알음으로 믿을만한 자가용영업 택시를 소개 받아 이용한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 위치 설명하느라 애 먹을 일도 없고, 값도 택시와 차이가 없고, 무엇보다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등하교시키거나 직장이 있는 경우에는 월정액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외국인들이 주로 사는 컴파운드라는 주택단지가 있는데, 단지 대부분이 쇼핑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니 버스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과 불편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2012년 5월에 발주하고 2013년 10월에 착공한 리야드 지하철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당시 함께 발주한 시내버스 시스템이 지하철 운행에 맞춰 운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2012년 발주 당시 현 국왕인 살만 왕자는 이미 50년 가까이 재직하던 리야드시장 자리를 떠나 국방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지만, 수도 리야드는 실질적으로 그의 관할 아래 있었다. 그런 그가 리야드시장 재직 시절에 서울의 지하철-버스 연계수송에 크게 감명 받아 이 시스템을 리야드에 도입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한국기업 사이에서 돈 적이 있다. 지하철사업을 계획하기 위해 살만 왕자가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중에 서울에서 당시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들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물어볼 곳을 찾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시기로부터 리야드 지하철 발주 이전까지 살만 왕자가 서울을 방문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못 찾은 것일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루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해도 지금 리야드에 건설하고 있는 지하철-버스 연계수송시스템은 서울의 시스템을 따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철-버스 환승시스템, 중앙차로, BRT(Bus Rapid Transit)ㆍRegular LineㆍCircular Line으로 이루어진 버스네트워크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지하철 시운전 차량도 가끔 보이고, 버스중앙차로도 거의 마무리된 것 같고, 버스정류장 설치도 거의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버스정류장은 모두 유리로 덮고 에어컨을 설치했다. 도로 중앙에 있는 환승정류장은 거의 역사 수준이다.



부임하면서 언젠가 지하철을 발주할 것으로 생각했고, 실적이나 기술력을 설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면서도 리야드 지하철이 해법이 되겠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당시 이미 두바이에는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는데 모두들 실패한 정책으로 여기고 있었다. 연계수송 없이 지하철만 운행하고 있어 무엇보다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름 값도 싸니 굳이 지하철을 이용해야 할 유인이 없었다. 그런데 리야드에서는 지하철과 연계수송시스템을 함께 구축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렇다면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안심하기는 이르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버스가 실핏줄처럼 도시 구석구석을 연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야 할 거리가 멀면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다.


사실 리야드 지하철이 발주되기 전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다. 본사의 지하철 설계실적이 넉넉하고, 한꺼번에 6개 노선 176km를 건설한다고 하니 공구만 해도 수십 개에 이를 텐데 설마 그 중 한두 공구 설계를 따내지 못할까 싶었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 물량이면 계약이 줄잡아 200건 정도는 생겨난다. 우선 사업관리, 기본계획-기본설계-실시설계, 토목공사, 건축공사, 기계전기공사, 신호통신공사, 거기에 열차공급과 시운전까지 공정도 많고, 노선이 여섯 개에 정류장도 수십 개이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지하철 사업을 한 건으로 발주했다. 그리고 버스시스템도 한 건. 예상을 벗어난 결정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험이 없으니 어차피 외국업체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런 상태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업체 사이에 협업을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 같아도 차라리 한 곳에 책임을 몰아주고 공사도 한 번에 벌려 혼란을 최소화하려 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기는 해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낄 처지가 되지 않는 입장에서는 물러서서 그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당초에 한 건으로 발주했던 지하철 건설은 1-2호선ㆍ3호선ㆍ4-5-6호선 세 건으로 나누어 계약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 중 4-5-6호선은 한국건설사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수주했고, 최종적으로 한국건설사가 4호선을 맡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비록 실적이나 영업력이 달려 기본설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실시설계는 시공사에서 발주하는 것이어서 어떻게 해서든 참여해보겠다고 두 해 가까이 한국건설사를 드나들었다. 거의 성사될 단계에 난데없이 한국건설사 자회사에서 뛰어들어 우리 보다 높은 가격으로 가져가 그저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가격도 낮고 현지지원체제도 잘 갖추어놓아서 욕심을 냈는데, 그만 내 역량 부족으로 고비를 넘지 못했다.


고가구조물은 길게 보면 도시 미관이나 기능을 저해해 결국에는 철거한 사례가 서울에만 해도 적지 않다. 고가구조물을 기준으로 도심이 나뉘고 주변은 슬럼화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짧은 시간에 해당지역이 살아나는 사례가 서울에만 해도 여러 곳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지하철 구간 대부분을 지하로 계획했다. 당장은 고가철도로 해도 크게 불편할 것은 없지만, 건설해서 몇 해 쓰고 말 것도 아니니 당연히 길게 보고 계획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사비 때문에 도심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가철도로 변경되어 시공에 들어갔다.



같은 지하철공사라고 해도 터널이냐 고가철도냐에 따라 투입하는 기술자가 달라진다. 처음에 지하철로 계획했기 때문에 한국건설사에서는 당연히 터널기술자를 대거 투입했지만, 고가철도로 바뀌는 통에 이 또한 교량기술자로 모두 교체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철수 결정이 내려지는 바람에 망연자실 했던 한국건설사 직원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투입된 인원 대부분이 가족을 동반했으니 왜 그렇지 않았겠나.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낯선 나라로 가자니 정리할 것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이고, 그렇게 이주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또 얼마나 난감했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초 2018년 말 운전을 목표로 한다고 했을 때 그 계획을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워낙 말이 안 되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공정은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는 한국에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최소한 1년은 늦어질 것이고, 2년쯤이라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마침 올해 11월에 G20 정상회의가 리야드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부분 개통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코로나 때문에 공정도 더 늦어지고 정상회의도 비대면회의로 바뀌어 부분 개통은 이미 물 건너갔다. 지금 같아서는 2021년 말이나 개통이 되지 않을까 한단다. 덕분에 2-3년 계획으로 현장 감리단에 합류했던 한 학번 아래 동문 하나가 잘하면 6년도 넘게 근무할 수 있게 되어 축하를 받고 있다. 엊그제 만났을 때 나보다 더 오래 일하게 되었으니 밥 한 번 사라고 했다.


지금 리야드는 사방에 파헤친 것이 아직도 마무리 되지 않아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다. 수시로 길을 돌려놓고 막아버리니 출퇴근할 때도 내비게이션을 켜놔야 할 정도이다. 처음에 6개 노선을 한 번에 시공한다고 했을 때 교통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했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혼잡이 훨씬 덜 했고 어쨌든 한 번에 끝나는 것이니 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야 감수해야할 불편이 그저 교통 혼잡 정도이지만, 도심 공사장 주변의 상가는 철시했거나 철시한 것과 진배없는 상태로 5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버티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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