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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15. 2020

[사우디 이야기 14] 교통질서

사우디 이야기 (14)

2009년 가을에 큰 비가 내렸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가 제다에만 백이십 명이 넘었고, 리야드에서도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입체교차로에 있는 지하차도에 갑자기 물이 차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사고가 난 날 오후 들어서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사막에 비가 와야 얼마나 오랴 싶기도 했고 그 비에 길이 끊어질 거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저녁 때 손님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빗물 때문에 길이 끊겨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결국 십 분이면 갈 길을 몇 시간이나 헤맸다. 그날 곳곳에서 일어난 사고는 모두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제다에 비가 네 시간 동안 70mm가 내렸고, 리야드는 아마 그보다 훨씬 적게 내렸을 것이다. 우리에게야 별 것 아니지만 연 강우량이 50mm 남짓한 곳에서는 큰 비이기는 하다. 얼마 전에도 빗물 때문에 동네 교차로가 끊어져 불편을 겪었고, 비가 내리면 차가 물살을 헤치고 다녀야 하는 곳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사막 한복판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십 년 넘게 살면서 도로에 배수시설 공사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교통질서는 ‘운전자가’ 지켜야할 의무로 여긴다. 그러나 ‘운전자만’ 지킨다고 교통질서가 잡히는 건 아니다. 운전자가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도록 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교통질서의 중요한 축이다. 교통질서를 이야기하면서 도로가 제대로 배수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를 언급하는 게 뜬금없게 여겨질 수 있지만, 교통안전에 필요한 시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운전하면서 때때로 위협을 느낀 내게는 그것이 교통질서와 별개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과속이 다반사인 이곳에 과속방지턱이 필요하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허가받고 규정대로 만든 것인가 싶을 만큼 너무 많기도 하고 규격도 중구난방이다. 과속방지턱이야 글자 그대로 과속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그게 있는 줄 모르고 지나다 보면 저속에서도 차에 미치는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한 번은 제다 출장 중에 탔던 차가 과속방지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다 충격을 받아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다. 간혹 푯말이 서있는 곳도 있고 황색 빗금으로 눈에 띄게 표시해놓은 곳도 있기는 하지만, 표시를 하지 않았거나 기왕 표시한 것도 지워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어떨 때는 낮인데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큰비가 오고 나면 물이 고였던 곳에 웅덩이 패인 곳이 많아진다. 이건 과속방지턱보다 훨씬 위험하다. 한 번은 멀쩡한 도로 중간에 깊이 패인 웅덩이에 걸려 타이어가 터지고 심지어는 타이어 림까지 찌그러져 적지 않게 돈이 들었다. 웅덩이를 살펴보니 그만하기가 다행이다 싶었다. 몸으로 느꼈던 충격도 컸고 크게 놀라기도 해서 한동안 운전할 때마다 망설였다.


십 년 넘게 살았으면 이곳 운전에 적응할 만도 한데 아직도 차를 가지고 나서면 신경이 곤두선다. 오죽하면 운전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대중교통이 없으니 달리 방법도 없고. 그래도 무인단속이 시작되고 나서 급격하게 교통질서가 개선되었다. 매 앞에 장사 없다더니, 생전 고치지 못할 것 같았던 운전습관도 벌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속도제한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단속할 방도가 없었던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50~160km로 달려도 쏜살같이 추월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어쩌다 1차로에 들어서면 언제 왔는지 꽁무니에 바짝 붙어 을러대고, 칼치기, 고속도로 갓길 역주행까지 이들의 난폭운전은 상상을 넘었다. 언젠가 1차로로 가는데 1차로와 중앙분리대 사이로 추월하는 차 때문에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속으로 주행하는 하이웨이에서 운전하려면 앞 보다는 옆이나 뒤에 더 신경을 써야했다. 뒤쪽에서 미친 듯이 칼치기하며 달려오는 차가 보이면 얼어붙은 채로 꼼짝 않고 가던 차로 그대로 그 속도로 운전했다. 언제 어디로 달려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차 피한다고 차로를 바꾸는 게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난폭운전이 무인단속이 시작되면서 획기적으로 나아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5년 11월부터 사헤르(Saher)라는 무인단속시스템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과속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지금은 차로 변경할 때 방향지시등 켜지 않는 것까지 단속하겠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범칙금은 시동을 켜놓은 채 운전자가 차에서 벗어날 경우 3만 원(100리얄)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한 위반은 4만5천~9만 원(150~300리얄) 정도이고, 적신호에 교차로 통과하는 경우 90만 원(3천 리얄)까지 올라간다. 독특한 것은 위반이 반복되거나 범칙금을 한 달 안에 납부하지 않을 경우 범칙금이 배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적신호에 교차로를 통과하는 위반을 거듭했을 경우 범칙금이 180만 원(6천 리얄)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처음에는 사헤르 시스템을 외국기업에서 운영했다. 외국기업에서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했으며, 단속으로 들어오는 범칙금을 내무부와 일정 비율로 나눴다고 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단속에 걸리면 예외 없이 벌금이 부과되었는데, 단속카메라도 외국인이 판독했고 범칙금이 곧 매출인 셈이었으니 봐줄 수도 없고 봐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헤르 시스템이 운영되기 시작할 때 적발을 면하려면 번호판 옆에 필리핀 국기를 붙여놓으라는 루머가 돈 적이 있다. 아마 필리핀 사람들이 단속카메라를 판독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두 해쯤 지나고 나서 내무부에서 사헤르 시스템을 직접 운영한다는 기사가 났다. 모두들 시설설치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운영하던 기업에서 손해는 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수군거리던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단속항목이 하나 있다. Drifting이라는 것인데, 주행하다가 갑자가 360도 회전하기도 하고, 한쪽 바퀴를 들기도 하고, 길에 타이어자국을 남기며 갈지자로 운전하기도 한다. 곡예운전이라 할 것을 예고도 없이 도로에서 하니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 번은 현장에서 일하던 기사가 타이어를 바꿔달라고 해서 결재를 했는데 회계팀에서 이를 반려시켜 이유를 물으니 아마 drifting을 해서 그랬을 거라고 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기는 했지만, 이전에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른 것과 달리 이 경우 범칙금이 엄청나다. 첫 번째 단속 때는 600만 원(2만 리얄)에 차량 15일 압류, 두 번째는 1,200만 원(4만 리얄)에 운전자 구속, 세 번째는 1,800만 원(6만 리얄)에 운전자를 구속하고 차량도 몰수한다. 우리가 사는 단지 뒤쪽으로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넓은 길이 있어 주말만 되면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요란한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몇 가지 있다.


차로가 합쳐지는 구간에서 머리를 들이밀지 않으면 끼어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이니 양보해주는 사람이 왜 없을까마는, 그런 운전자를 만나는 것보다 가뭄에 콩 나는 거 보기가 쉽다. 사무실이 지금 위치로 옮기기 전에 출근하려면 하이웨이를 타야 했는데, 순서를 기다려서는 진입로를 30분 안에 통과할 수가 없었다. 끼어드는 운전자와 신경전을 벌여보지만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끼어든다고 시비 거는 사람을 못 봤다. 한국 같았으면 큰 싸움 날만한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데,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도 급할 땐 어쩔 수 없이 끼어들곤 했는데, 조금 지나니 그걸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 부끄러움도 습관이 되면 무뎌지더라. 다행히 작년에 사무실 이사를 하고나서는 그 길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내 앞으로 차가 밀고 들어오면 위험한 건 둘째 치고 아주 기분이 더럽다. 부임했을 때만 해도 방향지시등 켜는 차를 하루 종일 못 보는 날이 많았고, 눈에 띄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늘어 꽤 눈에 띈다. 신호도 없이 끼어드는 차 때문에 짜증내는 모습을 본 이웃 하나가 낙타가 깜빡이 넣는 것 봤냐고 핀잔을 주는 통해 서로 웃고 말았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1월부터 카메라로 이를 단속하겠다니 얼마나 변하려는지 두고 봐야겠다. 도무지 고쳐지지 않을 것 같던 과속도 그렇게 잡혔는데, 그것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 바뀌어도 운전하기 한결 편하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는 여성운전을 금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였다. 그것이 여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녀가 유별하다보니 여성이 운전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여성운전자를 단속할 경찰도 여성이어야 하고, 교통사고처리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중에도 여성운전을 허용하라는 항의가 줄을 이었고, 여성운동가 몇몇이 운전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8년 6월 여성 운전이 허용되었다.


사실 그때까지 여성운전을 금한다는 법률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단지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내주지 않았다. 외국에서 살다온 여성들은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국제면허증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이 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밤에 야구모자 쓰고 운전하고 다니는 여성들도 있다고 했고, 사막에 사는 배드윈들은 그냥 내버려둔다는 말도 있었다. 하긴 누가 단속하러 사막까지 가겠나. 처음 부임했을 때 거주허가가 없는 상태라 면허증을 받을 수 없어서 한 해 넘게 국제면허증으로 운전했다. 국제면허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남성들은 묵인한 걸 보면, 결국 여성운전을 막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여성운전이 시작되면 한동안 시내 교통이 엉망이 될 줄 알았다. 지사장들 사이에선 여성운전으로 사업을 만들 만한 게 뭐 있을까를 놓고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첫 여성운전자를 본 건 허용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여성운전자 면허발급이 아주 더뎠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도 많이 밀려있는 모양이다. 한 해쯤 지나 여성 교민 중 취업비자로 있는 몇몇 분이 면허를 얻었다고 들었고, 가족으로 따라온 분 중에 면허를 얻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인지 의도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운전이 서툰 여성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여성 운전자들 때문에 특별히 교통이 혼잡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성운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명분이었던 여성경찰은 아직도 본 적이 없고, 여성 교통사고처리반 발족소식은 작년 쯤 나왔던 듯싶다.


그렇지 않아도 혼잡했던 리야드가 최근 몇 년간 지하철 공사로 엉망이 되었다. 1월부터 교통위반 단속이 강화된다고 하고, 내년 말쯤 지하철이 준공되면 도로도 잘 정비될 것이고, 게다가 지하철-버스 연계수송까지 시작되면 승용차 운행도 줄어들 것이니 이제는 리야드 교통이 좋아질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걸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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