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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18. 2020

[사우디 이야기 15] 교통사고

사우디 이야기 (15)

처음 얼마동안 렌터카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사고가 났는데, 사고 처리한 기억은 없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처리를 기다리면서 몇 시간 목이 탔던 기억만 난다. 목이 말라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 후로는 언제든 마실 물을 챙겨 다닌다.


왼쪽에서 차가 달려들어 운전석 문짝을 받았다. 그 차가 진행하던 방향에서는 적신호였을 텐데, 어떻게 내 차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상대 차 운전자는 면허가 있기나 할까 싶은 어린아이였고 곁에 기사로 보이는 젊은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운전연습 중이 아니었나 싶었다. 회사에 전화를 해놓고 나서 교민 한 분께 도움을 청했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건물이 드문 길에서 위치를 설명하자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대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모든 게 낯선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뙤약볕에서 하염없이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고 난 곳이 담장만 둘러쳐있는 곳이었고 가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뙤약볕을 피할 수도, 물 한 모금 구할 곳도 없었다. 그게 아마 사우디에서 첫 번째로 맛본 뜨거움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전화 받고 달려온 교민께서 물부터 건네주셨다.


경찰이 와서 확인하고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는 동안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뭐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어 지켜보기만 했다. 렌터카 회사로 가니 100% 내 과실로 처리되었다고 사고부담금을 내라고 했다. 아마 15만원(500리얄)이었을 것이다. 사고는 내가 당했는데 부담금을 내라니, 열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애꿎은 담당자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부담금도 내지 않고 차를 바꿔서 돌아왔다. 누가 사고를 냈던 경찰조서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화만 내니 렌터카에 회사서도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을 것이다. 더럽기는 했을 것이나 장기고객이어서 그냥 덮었지 싶다.


한 번은 출장길에 고속도로에 떨어진 타이어 조각을 밟아 범퍼가 깨졌다. 고속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조치를 취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숙소에 도착한 후 전화로 당시 막 운영을 시작했던 나짐(Najm)이라는 교통사고조사반에 신고했다. 조사관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사고부분만 확인하고 별 말 없이 사고조서를 건네주면서 이후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우선 수리공장 세 곳에서 견적서를 받고 경찰서 교통계에 가면 그 중 하나를 골라 확인도장을 찍어주는데, 그걸 보험사에 제출하면 보험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견적서 받고 경찰서 가서 서류를 만들어 가니 정작 보험사에서는 현대자동차는 특약이 되어 있어서 그런 절차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공장에 차를 가져다 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차를 찾기까지 열흘쯤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과거 사례이고 현재는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각자 보험회사를 부르지만, 이곳에는 나짐을 부른다. 사고가 나면 각자의 책임비율과 수리비를 결정해야 한다. 사고조서를 작성하고 책임비율을 판정하는 일은 나짐이 현장에서 처리하고, 수리비는 사고차량을 Taqdeer(교통사고평가기관)에 가져가서 판정받는다.


교통사고가 나면 우선 나짐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도심이 아니면 무엇보다 위치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교통이 복잡한 도심이라면 차를 그대로 세워놓을 수 없는 것도 큰 문제이다. 옮겨놓았다 자칫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에 나짐에서 교통사고 신고 앱을 만들었다. 앱에 차량/운전자 정보를 미리 등록해놓고 사고가 났을 때 앱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매우 편리하다.



앱을 열어 지시하는 순서에 따라 사고현장 사진을 찍어 (몇 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찍어야 하는지 그림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전송하면 신고절차가 끝난다. 사고지점과 사고일시는 앱 스스로 감지하고, 이미 등록되어 있는 차량/운전자 정보에 사고현장 사진까지 합치면 통제실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짐 조사관이 앞으로 몇 분 후에 현장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전화로 들어온다.


그렇게 만약을 대비해서 앱을 깔아놨는데 그만 곧 쓸 일이 생겼다. 이전과 거의 같은 사고가 일어났고, 이번에는 차가 좀 더 크게 부셔졌다. 운전석 문짝이 찌그러지고 앞바퀴가 휘어졌다. 일단 앱으로 나짐에 신고한 후 상대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새 나짐 조사차량이 골목길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도착해서 사고조서를 작성하고 이를 출력해서 나눠주고 돌아가기까지 15분이 안 걸렸을 것이다. 결국 앱으로 신고하는데 10분, 조사관 오는 데 10분. 그래서 30분 남짓한 시간에 사고처리가 모두 끝났다. 세월 좋아졌다 싶었다. 내 책임이 100%인데도 75%로 판정 난 것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마침 라마단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사고 난 채로 근처 주차장에 며칠을 세워놓았다.


휴가 끝나고 우선 경찰서 교통계에 가서 사고조서 확인 도장을 받았다. 견인차를 불러 수리비 견적을 받아달라고 해 놓고, 단골 카센터(workshop)에 전화해 수리 맡기러 간다고 일러놓았다. 거기까지는 무난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짐 조사관이 수리비는 상대 차량 보험회사에 가던지 내 차 보험회사에 가서 받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대 차량 보험회사에 가니 수리비의 25%(자기 고객 책임범위만큼)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머지는 내가 든 보험회사에 가면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어느 쪽이든 한쪽 보험사에서 수리비를 받으면 그것으로 보상이 끝난다고 했다. 큰일 날 뻔 했다. 내가 든 보험회사로 가니 수리비를 지불하지는 않고 직접 수리한다고 해서 견인차를 타고 보험회사로, 지정공장으로, 그렇게 하루를 꼬박 매달렸다. 3주쯤 뒤에 연락하고 찾으러 오란다.


당연히 3주 만에 수리가 끝나지 않아 며칠 더 지난 후 차를 찾았는데,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에어컨이 없으면 운전할 수가 없다.) 사고와 무관한 것이어서 수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멀쩡하던 에어컨이 사고 나서 작동이 안 되는 건데. 그 일로 이틀인가를 보험회사 지점으로, 본점으로, 다시 공장으로 헤매 다녔지만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자동차는 보험사에서 수리해줬지만 그 외에 자동차 견인비, 렌터카, 에어컨 수리비, 거기에 사고분담금(deductable)까지 300만원(1만 리얄)이 추가로 들었다. 말하자면 모든 교통사고를 보상해주는 종합보험을 들고도 Taqdeer에서 판정한 수리비 400만원(1만3천 리얄) 외에 이 돈이 추가로 든 것이다. 뙤약볕 밑에서 허덕이며 며칠 쫓아다닌 건 논외로 하고도.


그 사고로 하도 고생을 하기도 했고 차에 받히는 과정을 코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나니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같아서 그 후로 지금까지 운전하는 게 영 싫다. 이런 고생은 나 하나 하는 것으로 족하니 사우디에서 운전해야 하는 분이라면 다음 몇 가지 사항은 기억하시라.


○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고 나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고 돈도 숱하게 드니 괜히 열 받지 말고 어지간하면 비켜주고 한 걸음쯤 뒤쳐져 가시라.


○ 반드시 나짐 앱을 깔고 등록한 후 시험 삼아 작동시켜 보시라. 사고 났을 때 그것만 제대로 처리해도 쉽게 마음을 평정시킬 수 있고 후속조치 하는데 실수를 줄일 수 있다.


○ 사고 현장에서 나짐이 발급한 사고조서는 반드시 경찰서 교통계에 가서 확인받아야 하는데, 아무 곳이나 편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나도 누구에겐가 물어서 가기는 했는데 어딘지 잘 기억을 못하겠다. 아마 나짐 조사관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 가능하면 평소 이용하는 카센터에 가서 견적을 받아보시라. 어디를 수리해야 하고 돈은 얼마나 드는지 알아야 수리비 판정받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수리비 판정받을 때 귀찮더라도 Taqdeer에 직접 가는 것이 좋다. 위치는 구글지도에서 위 이름으로 검색하면 된다.


○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에서는 사고차량을 수리해주고, 상대방이 가입한 보험회사에서는 해당하는 책임비율만큼 비용을 통장으로 입금해준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경미한 사고이고 내가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받는 비용이 실제 수리비에 근접하면 당연히 그것 받고 끝내시라.


가까운 이웃 하나는 차 뒤를 받쳤는데, 상대 차량 보험회사에서 받은 돈보다 수리비가 훨씬 적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저녁을 잘 얻어먹었다. 때로는 이런 경우도 생기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손해나고 몸 고단해지니 가능한 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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