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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1. 2020

[사우디 이야기 16] 인구

사우디 이야기 (16)

사우디는 어느 도시라 할 것 없이 쓰레기처리시스템이 미비하다. 국가위상에 걸맞지 않은 건 논외로 하더라도 비위생적인 처리시스템 때문에 이미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겨 이에 대한 조속한 개선이 필요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개선해야 할 일이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시급을 다투는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 초에 메디나로부터 자신들이 수립한 ‘2020-2024 쓰레기처리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쓰레기 처리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발생량을 예측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인당ㆍ일당 쓰레기 발생량(kg/인ㆍ일)을 산정한다. 전체 쓰레기발생량이야 매립장에 반입된 양을 확인하면 되지만, 향후 발생량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구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변화에 따라 발생량 변화를 추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가작업을 시작하면서 기본적인 자료 몇 종을 요구했다. 놀랍게도 시청에서 인구통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인구통계도 없이 시정을 이끌어 나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츰 다른 기본적인 자료들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 자료는 시청에서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우디 통계청 자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했다. 인구자료는 이전에도 이용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종합한 자료를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입수한 자료를 보니 오류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메디나 인구 자료 중 2010년과 2011년, 2012년과 2013년 값이 마지막 단위 숫자까지 같았다. 인쇄오류일 것으로 생각해 확인하다 보니 통계청 자료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인구통계는 다른 기관에서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메디나 지역의 인구가 실린 자료를 일일이 확인했다. 보건부의 백서(MOH Yearbook)와 경제기획부의 백서(MOEP Yearbook), 그리고 시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사용된 모든 인구자료를 비교했다. 숫자가 같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인구도 달랐고, 인구 증가율도 각각이다 보니 향후 5년 인구예측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쓰레기 발생량 예측도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검토했다.


인구자료는 위험한 시설물을 계획할 경우 피해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도 많이 사용된다. 어디 그것뿐이겠나. 어쩌면 인구자료가 사용되지 않는 경우를 찾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평가의 기초자료가 되는 인구통계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사우디 통계청의 인구자료는 그런 바탕 위에 서있는 것이다.


사우디 통계청, 세계은행, 최근에 코로나 통계로 유명해진 Worldometer 자료에 따르면 올해 현재 사우디 인구는 3,400~3,500만 명 정도에 이른다. 사우디는 면적이 215만km2로 한반도 22만km2의 열 배에 가깝고, 남한 10만km2의 스무 배가 넘는다. 우리의 2/3 정도 인구가 그 넓은 땅에서 사니 인구밀도는 15.6명/km2으로 우리 516.5명/km2의 1/33에 불과하다.


사우디에서 인구센서스를 실시한 것은 2010년으로, 모든 인구자료는 그 통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느 곳에서는 2016년에 인구센서스를 실시했다고 언급하고 있기도 한데, 통계청 자료에는 낱장마다 ‘2010년 기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해가 인구센서스를 실시하는 해여서 지금 진행 중이다. 우리 집에는 올해 초에 조사관이 다녀갔다. 아마 내년 하반기 정도면 통계가 발표되지 않을까 싶다.


1950년에 312만 명이던 사우디 인구는 408만(1960), 584만(1970), 969만(1980), 1,623만(1990)으로 늘어 2000년에 들어서면서 2천만 명을 돌파한다. 이후 2013년에 3천만 명을 넘어 현재 3,414만 명(세계은행 기준)에 이른다. 70년 만에 인구가 11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Trading Economics에서는 사우디 인구는 2060년 4,535만 명을 정점으로 해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자료는 현재 인구증가율을 1.59%로, 2030년부터 1% 밑으로 내려 갈 것으로 예상해 만든 것이다. 사우디 정부에서 현재 인구증가율이 2.5%가 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 3,341만 명 중 외국인은 1,265만 명으로 무려 38%에 이른다. 사우디 정부가 2017년부터 외국인에게 부양가족세(dependent fee)를 부과하면서 한두 해 사이에 외국인이 엄청나게 떠났다. 말하자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이 정부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인데, Trading Economics에서는 사우디 정부에서 외국인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으며, 그 결과 외국인 인구가 어떻게 변할 것으로 판단했는지 궁금하다.


인구를 들여다보면 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사우디의 경우 청년 인구와 취업자가 특히 그렇다. 2018년 연령별 인구를 보면 내국인의 경우 30세 미만이 60%, 35세 미만이 70%에 이른다. 2020년 현재 중위연령은 31.8세로 한국의 43.7세보다 훨씬 젊다. 같은 해 취업자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 3,341만 명 중 취업자가 1,254만 명인데 그 중 내국인 취업자는 311만 명에 불과하고 외국인 취업자는 943만 명으로 내국인 취업자의 3배가 넘는다.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미 오래 전 일이기는 하다. 한국대사관 경제협의회에서 어느 대학엔가 계시던 한국 교수 한 분이 노동력의 관점에서 인구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내국인 취업자가 400만 명, 외국인 취업자가 750만 명이라는 설명을 듣고 무척 놀랐다. 아무리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니 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미 자국민 의무고용정책이 적용되고 있었다. 사우디 정부에서 1980년대부터 이 정책을 실시한다고는 했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것을 2010년 정도부터 고삐를 죄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최근으로 오면서 오히려 그때보다도 외국인 취업자는 훨씬 더 늘어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7년부터 외국인에게 부양가족세가 부과되면서 2016년부터 외국인이 엄청나게 빠져나갔다. 사우디에 사는 외국인들은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근로자가 대다수이고 여기에 이집트, 예멘, 레바논 등 인근 국가 근로자들이 포함된다.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비교적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부양가족세는 취업을 포기할 만큼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2016년 1,088만 명이었던 외국인 취업자가 2018년에 943만 명으로 2년 사이에 145만 명이 줄었다.


사우디에서 취업하는 이점 중 하나가 소득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양가족 하나에 매월 3만 원(2017)씩 세금을 내야하고, 그것도 다음해엔 6만 원(2018), 9만 원(2019),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12만 원(202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니 한 달 1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양가족 4명이면 월 48만 원) 통계로는 외국인 취업자가 145만 명이 줄었다고 했으니 출국한 사람은 200만 명도 훨씬 넘지 않았을까 싶다. 리야드 도심 남쪽에 필리핀 사람들로 가득 찼던 지역은 아예 인적이 끊어졌다고 할 정도였고, 그곳에서 식당을 하던 교민 한 분은 끝내 사업을 접었다. 아마 그동안 사우디 정부가 외국인 취업자를 줄이기 위해 펼쳤던 정책 중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은 없었지 싶다. 그렇기는 하지만 문제는 내국인이 과연 그런 험한 일을 감당할까 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하기는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들은 대체로 취업 목적으로 머물고 있고, 저임금노동자들은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중에는 남성 청장년이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여성은 외국인 남성의 46%에 불과해 인구 피라미드가 위에서 보는 것처럼 기형적으로 나타난다. 아래 표에서 외국인 취업자를 일반근로자와 저임금노동자로 나누어 표시하고 있는데, 일반근로자 경우 여성은 남성의 4%에 불과한 반면에 저임금노동자의 경우 여성이 남성의 51%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사우디 가정과 형편이 나은 외국인 가정에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는데, 아마 여성 저임금노동자는 대부분 그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포함해도 외국인 여성 취업자는 남성의 20%를 겨우 넘는 걸 보면 이곳의 여성인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경제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잠재력이 있는 셈이니 오히려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겠다.



결국 사우디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실제로 정부에서도 이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어놓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이유로 그런 목표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임금노동자들이 감당하던 일을 내국인이 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내국인이 선호하는 자리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니 날이 갈수록 외국인에 대한 압박은 수위를 높이지 않겠나.


가장 손쉬운 것은 소득세인데, 없던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부가세 기습인상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니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외국인에게만 과세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몇 년 전부터 심심하면 정부에서 ‘외국인 해외송금 과세’는 “검토한 바 없다”고 발표하곤 했는데, 다음번쯤에는 세율에 대한 루머가 나돌 것이고 정부에서는 “그렇게 높지는 않다”는 정도의 발표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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