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17)
어느 분야이든 이곳에서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설계용역은 특히 더 그렇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래서 찾아낸 틈새시장이 환경사업이었다. 환경사업은 한국이 상당히 앞서 있었고, 우리 실적이 그 중 앞서 있는 편이었다.
걸프해안 유류오염 정화사업을 끝내고 쓰레기처리 시장을 겨냥해 나섰다. 쓰레기 수거에서 처리까지 전 과정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비록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한국기업으로는 상당한 경험이 있는 편이어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타북과 메디나 시장을 만났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어냈다.
일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통계가 늘 부족했다. 통계를 제대로 갖춘 경우를 만나기도 어려웠고, 정확도는 늘 필요에 미치지 못했다. 담당자를 만나고, 처리업체를 만나고, 수거에서 처리까지 전 과정을 일일이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한국 환경부에서 외국에 공여하는 <환경마스터플랜 지원 프로그램>에 응모해 메디나 지역에 대한 환경마스터플랜 지원을 얻어냈다. 환경사업이기는 하지만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일이다 보니 우리 뿐 아니라 회계법인, 건설회사, 시설제작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 해 넘게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2018년 초에 이를 메디나에 제출했고 그와 관련된 후속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4월 타북시장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환경시장 개척은 5년이 훌쩍 넘긴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오랫동안 별러서 갖게 된 시장 브리핑이 마침 환갑날이었다. 반응도 좋았고 시장 관사에서 환갑잔치 못지않은 융숭한 대접도 받아 길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그 후로 이곳저곳의 요청을 받아, 그리고 우리가 자청해서 조사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쓰레기는 크게 특성과 처리방법에 따라 생활폐기물, 건설폐기물, 유해폐기물, 의료폐기물로 나눈다.
현재 사우디에서는 일반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시청에서 처리업체를 고용해 수거ㆍ처리한다. 이 업체에서는 도심 청소도 함께 담당한다. 아직 사우디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거한 쓰레기는 매립장에 그대로 매립한다. 선별시스템을 두어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골라내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전체 쓰레기 발생량을 선별할 정도에 미치지 못하고 문제가 자주 일어나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는다. 쇼핑몰 같은 대형 상업시설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는 시청에서 처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업체를 고용해 처리하지만, 일반가정에서 배출한 쓰레기와 함께 매립장에 매립하고 이에 대해 별도의 매립비용을 내지는 않는다.
건물을 짓거나 수리하거나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해당 업체가 건설폐기물 처리업체를 고용해 처리해야 하는데, 이 역시 생활폐기물과 같은 매립장에 매립하고 별도의 매립비용을 내지는 않는다. 건설폐기물 중에서 값이 나가는 철근과 같은 자재는 처리 이전에 회수하고 대체로 콘크리트나 목재 정도만 매립장으로 간다. 사실 건설폐기물은 부패로 인한 악취나 환경오염이 일어나지 않고 단지 먼지만 잘 관리하면 되는데, 한정된 매립장을 부피가 엄청난 건설폐기물로 채운다는 건 여간 큰 낭비가 아니다. (이곳에서도 민원 때문에 새로 매립장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건설폐기물 중 콘크리트는 파쇄해서 건설골재로 재활용하기도 하지만, 사우디에서는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매립장을 덜 사용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무상으로 재활용 골재를 공급하면 몰라도 수익사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처음 사우디에 왔을 때 빈 땅을 담장으로 둘러놓은 곳이 많아 의아했다. 딱히 어떤 용도가 있어 담장으로 막아놓은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보니 빈 땅만 보이면 야밤에 건설폐기물을 버리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렇게 쌓인 폐기물이 산더미 같았다. 어떤 곳은 쓰레기를 버리고 가기도 했다. 큰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방법이 없었겠다.
동부 쪽에는 대규모 석유화학공장이 많고 그러다 보니 유해폐기물이나 산업폐기물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전문적인 처리업체도 꽤 있다. 하지만 그런 일부 지역을 빼놓고는 유해폐기물 처리업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산업체에서 배출되는 유해폐기물을 아무 처리도 없이 그대로 매립장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염색공장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중금속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는데, 그걸 처리과정도 없이 매립장에 웅덩이를 파고 쏟아 붓는다. 폐수 처리시설을 가동하는 곳도 있지만, 처리량이 유입량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 가동도 원활하지 않다. 이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시청에 폐수 발생업체 현황을 알려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그런 자료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물론 자료가 있는데 안 준 것일지도 모른다. 웅덩이는 당연히 중금속으로 심하게 오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의료폐기물은 시청이 아닌 사우디 보건부(MOH)에서 관리하고 있다. 보건부에 등록한 업체만 이를 처리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SEPCO라는 업체가 대부분 처리하고 있다. 우리는 폐기물 전체를 하나로 묶어 종합처리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폐기물 역시 처리과정을 일일이 모니터링 했는데, 수거ㆍ처리ㆍ매립 과정이 절차에 어긋난 경우를 상당수 확인했다. 물론 일부에서 확인한 내용이지만, 다른 곳도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차이를 보일만한 이유도 없어서 전체가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미국 가본지 10년이 넘어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렸다. 분리수거를 할 방법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냥 버렸지만, 마음은 못내 찜찜했다.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것도 습관이 되니 이젠 오히려 그것을 편하게 느낄 지경이 되었다. 한인행사에서도 바닥에 넓은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일회용 그릇에 담아 식사하고 나서는 그릇 채로 비닐을 둘둘 말아 통째로 버리기도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분리수거를 몸에 익히려면 시간깨나 걸리겠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곳 정부에서도 분리수거 계획을 세우고는 있다. 관공서에 가면 분리수거함이 간혹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캠페인 벌인 것도 보지 못했다.
쓰레기 발생량(per capita waste generation)은 인당 하루 버리는 양으로 kg/인ㆍ일로 표시한다. 우리나라 2003-2017년 통계에 따르면 쓰레기 발생량은 0.97~1.06kg으로 사우디의 1.5kg 보다 훨씬 적다. 쓰레기 발생량은 생활수준과 쓰레기처리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생활수준에는 비례하고 쓰레기처리 수준에는 반비례하는데, 그렇다보니 쓰레기 발생량만으로 쓰레기처리 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당 평균소득 2만 달러인 사우디가 3만 달러인 우리나라 쓰레기 발생량의 1.5배라는 것으로 보아 쓰레기 처리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득이 높으면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데, 소득이 사우디보다 1.5배 많은 우리나라의 쓰레기 발생량은 오히려 사우디의 2/3에 불과하다.)
쓰레기 발생량을 조사하면서 하나 독특한 현상을 확인했다. 금식월인 라마단에 오히려 쓰레기 발생량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라마단 동안은 해가 떠있는 동안 일체 음식이나 물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언제가 무슬림인 현장 소장에게 라마단이 견디기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종교적 의미 말고도 단식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한참이나 힘을 주어 설명했다. 하지만 라마단은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하는 명절이기도해서 해만 넘어가면 일가친척이고 이웃을 불러서 어느 때보다도 풍족하게 먹고 마시며 밤을 새운다. 그러니 낮에 맥을 못 추고 쓰레기는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적이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금식이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인데 말이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같은 명절이라도 순례절인 하지에는 쓰레기 발생량이 별 차이가 없는데 금식월은 평소보다 10% 정도 많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라마단 때 대형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곳 사람들이 라마단에 가구를 바꾸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