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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6. 2020

[사우디 이야기 18] 소각장

사우디 이야기 (18)

폐기물 관련 컨설팅을 하다 보니 몇몇 쓰레기매립장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있다. 특히 몇 년 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메디나 매립장은 구석구석을 훤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정도이다. 그저 육안으로 관찰한 것 말고도 몇 년에 걸쳐 측정도 하고, 분석도 하고, 데이터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분석하기도 해서 아마 시청 담당자보다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처음부터 쓰레기매립장을 규격에 맞게 만들고 운영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만만한 곳을 골라 쓰레기를 버리고 그저 임시방편으로 먼지나 악취가 나지 않을 만큼 덮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쓰레기가 썩을 때 발생하는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고 그밖에도 여러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차츰 국제규격에 따른 위생매립장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하늘공원이 된 난지도 매립장은 1977년에 비위생매립장으로 만들어 운영해오다가 1992년에 위생매립장인 수도권 매립지가 운영을 시작하면서 폐쇄되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200개 넘는 쓰레기 매립장은 모두 위생매립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위생매립장이 주종을 이루는 사우디에서도 최근에 만드는 매립장은 모두 위생매립장으로서, 침출수를 모아서 처리할 수 있고 쓰레기 매립할 때 메탄가스를 모을 수 있는 파이프를 같이 묻는다. 그러나 당초 용량을 훨씬 넘겨 매립하는 통에 침출수가 매립장 사면으로 흘러나오고, 흘러나온 침출수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않는다. 침출수 처리장이라고 해봐야 그저 자연증발 시키는 것이고, 남은 찌꺼기는 유해폐기물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쓰레기와 함께 매립한다. 그마저도 용량이 제한되어 있으니 그저 매립장 이곳저곳에 있는 웅덩이에 쏟아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운영하는 그들로서는 폐수도 같은 방식으로 웅덩이를 만들어 쏟아 붓는 게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그 주변이 심각하게 오염되는 것 역시 당연한 결과이고. 물론 최근 들어 강화된 기준에 따라 시설이나 운영방식이 개선되어가고는 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많은 문제가 있어 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대외비로 분류된 환경관련 자료를 얻기도 무척 어렵고 조사를 위해 출입허가 받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사실 사우디 서부지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요르단 국경과 접해있는 타북에서 쓰레기소각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게 계기가 되었다. 도무지 접근할 방법이 없어 이 지역을 관할하는 제다 한국총영사관에 부탁을 했고, 총영사께서 흔쾌히 앞장 서주셔서 큰 어려움이 없이 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쓰레기소각장이 200개가 훨씬 넘는데, 그 중 90개 가까운 소각장에 우리 회사가 이런저런 형태로 참여했다.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사우디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준비도 많이 했고 담당부서에서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줬다. 타북시장에게 쓰레기 종합처리시스템의 필요성을 설명해서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고, 지역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고 자료 제공과 현장조사에 대한 허락도 얻었다.


처음에는 도심에 소각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서울에도 목동이나 상계동 같은 주택단지 한복판에 소각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시범사업으로 성사시키고 이를 다른 지역을 확대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소각장만이라면 어려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소각장 폐열을 이용한 발전으로 주변 건물에 전기를 공급해 이 지역을 하나의 청정단지(Green Complex)로 묶는다면, 그리고 이 단지를 도심에 배치한다면, 당시 아카바만과 홍해를 잇는 관광개발을 계획하고 있던 타북시청에 꼭 맞는 ‘청정이미지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 관광단지는 지금 왕세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NEOM City가 되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도심에 쓰레기소각장을 세운다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서울의 사례를 보여줘도, 심지어 부시장을 한국으로 초청해 직접 견학시켜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확인해보니 그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시청에서 제안한 도심 외곽에 단지를 만들기로 하고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설명회를 마치고 나니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예산을 만들어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시청 1년 예산이 3천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건 짐작했던 것이라 우리가 투자하고 사용료를 받겠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끝내 진전을 보지 못하고 두 해 만에 물러나왔다. 그들에게 쓰레기는 사막 어디에 가져다 버리면 되는 것이니, 쓰레기 처리를 위해 돈을 내야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쯤 여기저기서 소각장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부의 담맘이나 주베일 산업단지에 소각장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우리도 주베일 산업단지에 소각장을 건설하기 위해 관할청인 Royal Commission에 사업승인을 신청하기도 했다. 사실 소각장은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시설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폐열을 회수해 부수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각장이라는 것만으로는 관심을 끌기 어려워 이를 추진하는 주체들이 하나같이 이를 ‘쓰레기-에너지 변환 시설’(WTE, Waste-to-Energy)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에너지 다변화를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인데, 결국 이런 이미지 때문에 나중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왕립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KACARE, King Abdullah City for Atomic and Renewable Energy)이라는 기관이 있다. 2010년에 설립되었고, 현재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발주 주무기관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이 기관에서 소각장을 신재생에너지시설의 하나로 여기고 예멘 접경 지역인 아시르주와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책임자를 만나고, 설명회를 하고,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 요구하는 답을 내놨다. 급기야는 자기네가 만든 사업추진계획서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 계획서가 곧 발주안내서가 될 것이니 일단 첫발을 잘 뗀 셈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소각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졌다. 마음이 급해졌다. 성의를 다해 사업추진계획서를 보완했다. 보완했다기보다는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제출하고 났는데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는데 정부에서 모든 기관에 소각장 건설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답변이 왔다. 이유를 들어보니 지시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고 동의가 되기도 했다. 소각장도 공법이 제각각인데 표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 기관이 건설하게 되면 중구난방이 되고 예산 낭비도 적지 않을 것이니 에너지부에서 표준을 만들 때까지 추진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인데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표준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지면 아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이면 만들어진다는 표준이 10개월, 12개월로 미뤄졌다. 그때로부터 4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 표준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각장은 쓰레기 소각이 주목적인 시설이고 전기 생산은 부수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으니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력생산비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나무를 켜면 톱밥이 생기는 것인데, 나무는 빼고 톱밥 팔아서 나무 값을 취하려드는 것과 마찬가지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도 소각장 전체사업비를 기준으로 전력 생산단가를 평가하니 다른 발전원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판단할만한 근거는 없지만, 이런 요소가 WTE 시설 표준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우디전력공사(SEC) 경영진을 만나서도 이 시설의 장점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그들이 전력생산 이외의 요소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아무런 호응도 얻어내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사나워진 민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사용자의 부담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가는 오히려 거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까 염려하는 게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2017년에 메디나에 제출한 환경마스터플랜에서도 소각장을 바탕으로 하는 종합쓰레기처리시설을 제안했다. 메디나는 재정도 탄탄하고 실세 왕자가 주지사로 있어 상황이 타북보다 훨씬 좋았고, 마침 매립장이 다 차서 새로 매립장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어서 시기도 잘 맞았다. 시장도 마스터플랜에 제안한 방식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어서 타당성평가도 진행했다. 그런 과정에서 시장이 교체되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쓰레기종합처리계획은 그렇게 중단된 채 두 해를 넘기게 되었다. 


물론 시장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실행이 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우디에서는 누구도 환경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거기에 돈을 들일 마음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의 문제일 수 있고, 어쩌면 사방이 넓게 트여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사우디 경제상황이 이전보다 좋지 않으니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환경사업의 투자우선순위가 당겨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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