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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29. 2020

[사우디 이야기 19] 상수도

사우디 이야기 (19)

사우디에는 기름값이 물값보다 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석유는 흔하고 물이 귀하다는 말이겠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기름값이 물값보다 싸다.) 사우디는 국토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으로 이루어졌으니 무엇보다 물이 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 청소한 물이 대문 밖으로 흘러나간 게 적발되어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가 하나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는 한데 이곳에서 물 쓰는 걸 보면 물이 정말 귀하기는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물값만 봐도 그렇다. 휘발유는 리터에 450원 남짓 하는데 생수는 0.5리터에 300원이다. 기름값이 물값보다 싸기도 하지만 물값도 우리보다 훨씬 싸다는 말이다.


처음 왔을 때 좀처럼 보기 드문 굵은 호스로 정원수에 물을 폭포처럼 쏟아 붓는 것을 보고 사막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십 년 넘게 사는 동안 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이는 인당 하루 물 소비량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봄에 사우디 정부에서 Qatrah라는 수자원보호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 자리에서 주무 장관이 2019년 263리터인 인당 하루 물 소비량을 2020년 200리터, 2030년 150리터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국 333리터/2010년, 282리터/2017년) 불과 한 해 사이에 물 소비량을 20% 줄인다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걸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생활패턴을 바꿔야 할 텐데 여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할 의지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생활용수의 공급원인 지하수가 급격하게 고갈되어 가고, 담수화시설도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수자원보호가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겠다.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사용하는 물은 농업용수가 83%, 공업용수가 4%이고 생활용수는 13%에 지나지 않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우디는 연 강우량이 60밀리미터에 못 미친다. 연 1,400밀리미터가 넘는 우리나라의 1/20도 채 안 된다. 게다가 뜨거운 날씨로 인해 증발량은 오히려 높을 것이니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에 추가되는 양(충진량)이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우량의 10% 정도가 지하수에 충진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 상황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농업용수로 쓰인다는 건 국가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농업용수의 적지 않은 부분이 오수나 폐수를 처리한 처리수이기는 하지만, 오수나 폐수도 있는 물을 사용한 것이니 국가에 미치는 부담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92년 400만 톤에 이르던 밀 재배를 2000년에 180만 톤까지 줄이고 급기야 2016년에는 밀 재배를 중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우디에서 최근 수십 년간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과거에 비해 물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고, 그 중 상당 부분을 지하수로 충당했을 것이고, 지극히 고온 건조한 기후로 인해 충진량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지하수 부존량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사우디에 공급되는 생활용수 중 10%만 지표수에 의존하고 50%는 담수화공장에서 생산한 물로, 나머지 40%는 지하수로 충당하고 있다. 담수화 물을 직접 공급하는 것은 아니고 지하수와 섞어서 공급하니 현재 사용하는 물은 두 물이 섞인 것이다. 그런데 지하수가 제대로 충진되지 않아 수원이 계속 고갈되는 상태에서 계속 지하수를 섞어서 사용하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수질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몇몇 자료를 보면 담수화 물에 포함된 용존고형물(TDS Total Dissolved Solid) 농도가 높은데(센물), 이는 원수인 바닷물에 포함된 용존고형물이 다른 지역보다 높고(평균 34.5g/리터, 걸프해 45g/리터, 홍해 41g/리터), 아마 그것을 희석시키기 위해 지하수와 섞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물이 귀하지 않다는 건 어쩌면 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물 귀한 줄 모르고 사는 게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대부분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만, 2004년에 발간된 논문에 따르면 상수도의 혜택을 누리는 가정은 전체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많이 확대되었을 것이다. 나머지는 급수 트럭을 이용하거나 지하수를 개발해 사용한다. 상수도가 연결되었다 해도 매일 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수도인 리야드에도 한 주일에 반절 정도만 물이 나오기 때문에 집집마다 꽤 큰 저수조를 갖추고 있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여름철에 저장해놓은 물이 모자랄 경우 급수 트럭을 이용한다. 내가 사는 곳 같은 공동주택은 모든 시설을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하니 입주자들이 그런 불편을 모르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263리터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실제 사용량은 이에 훨씬 못 미칠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인당 물 소비량은 사용자 기준이 아니라 공급자 기준일 것인데, 이곳의 상수도 누수량이 엄청나니 결국 소비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물의 양은 누수된 양 만큼 적지 않을까 한다.


작년에 사우디 수자원환경부 간부로부터 상수도 누수율을 낮추기 위해 도움을 받을 기관을 찾는다며 서울시청을 연결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그에게 이곳의 상수도 누수율이 30%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느냐고 물으니 분명한 답변을 하지 않고 말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그것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 50%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하던데 차마 50%냐고 묻지는 못했다. 사실 나는 서울의 상수도 누수율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예전처럼 30%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두 자리 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몇 년 전까지 2%대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를 1%대로 낮추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물이며 전기를 낭비하며 살지 않았고 이곳에서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그렇기는 해도 물 사용량이 평균은 될 텐데, 그동안 물이 귀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상수도 뿐 아니라 먹는 물도 마찬가지다. 슈퍼마다 생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0.5리터 24병에 4천 원 남짓하니 한국 생수 값의 반절 정도 하는 셈이다.


리야드에서는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야 워낙 물 걱정 모르고 살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도 돈이 좀 더 들어서 그렇지 물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사우디의 인당 물 소비량은 한국과 다르지 않은데 누수율이 30%에 이른다니 그만큼 물을 덜 쓰는 것이고, 그런데 한쪽에서는 나처럼 평소 쓰던 대로 아쉬운 줄 모르고 물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물이 모자라 고생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니 사우디에선 물이 귀한 줄 모르고 산다는 말은 함부로 할 게 아니겠다.


최근 몇 년 사우디 정부는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가만 낮은 게 아니라 원유 내수량이 점점 늘어 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발전소와 담수화공장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원유 생산량의 25%를 전력생산과 담수화에 사용한다고 하고(전체 내수량은 원유 생산량의 30%), 몇 년 전 추정치에 따르면 그 비율이 매년 전체 원유생산량의 1%씩 늘어난다고 한다. 


원유가 정부 수입의 대부분인 나라에서 가격이 떨어지고 수출할 양도 점점 줄어드니 획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쓰지 않을 방도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몇 년 전에 각종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상향조정해서 가전제품 공급업체들이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일도 있었고, 전국 곳곳에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그 정책이 어떤 형태로든 이행되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피부로 느낄만한 조치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보면 이 정책이 과연 기대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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