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20)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하수(下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필요하겠다. ‘하수’는 생활하면서 배출하는 물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이는 ‘오수(汚水)’와 ‘우수(雨水)’로 나눈다. ‘오수’는 생활하수나 공장폐수 또는 분뇨와 같이 일단 사용한 후에 배출하는 것이며,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한 후 재사용한다. 이와는 달리 ‘우수’는 말 그대로 빗물인데,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니 오수와 우수를 같은 관로(network)로 모으는 것보다는 별도의 관로로 모으는 것이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경제적이다. 용어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하수’를 ‘오수’의 의미로 좁혀 사용하고 있어서 여기서도 그렇게 사용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수관로와 우수관로가 분리되어 있으며, 생활하수나 (배출기준 이하로 처리한) 공장폐수 및 분뇨는 하수관로로 모으고 빗물은 우수관로로 모은다. 이 점에서는 사우디도 동일하다. 다만 이곳에서는 가정이나 공장에 하수관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 있어 하수가 처리되지 않은 채 버려져 문제가 된다. 또한 우수관로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우수가 모두 하수관로로 유입되는데다가 하수관로 조차 충분하지 않아 비가 조금만 내려도 도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심지어는 백 명이 넘는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서는 시민의 보건위생에 직결되어 있는 ‘하수’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앞선 <19. 상수도>에서 살펴본 것 같이 사우디 정부에서는 2019년 기준 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263리터이고 이를 빠른 시간 안에 200리터(2020년), 150리터(2030년)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최근 자료를 얻을 수 없어서 편의상 올해 인당 하루 물 사용량을 250리터로 추정한다.
가정에서 물을 사용하고 나면 형태만 달라질 뿐 전량 배출된다. 그러니 하수량은 물 사용량과 동일하다. 올해 하루 물 사용량을 인당 250리터로 잡을 때 사우디 전체와 리야드에서 배출되는 하루 하수량은 여기에 3,500만 명과 700만 명을 곱하면 얻을 수 있다. 즉, 하루에 배출하는 하수량은 사우디 전체에서 875만 톤, 리야드에서 175만 톤이다. 2018년 1월 사우디가제트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에서는 2019년까지 하수처리량을 하루 795만 톤(91%)까지 늘리겠다고 했다는데, 이는 2020년 현재 리야드 하수처리장 전체 용량이 100만 톤에 불과(57%)한 것으로 보아 사실과 거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생활하수에 한한 것이고, 여기에 공장폐수를 더하면 전체 하수량이 이보다 많아질 것이니, 실제 (하수관로와 하수처리장을 포함한) 하수도 보급률은 50% 남짓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메디나 하수처리장 개선방안을 검토할 때 담당자가 메디나 하수도 보급률이 40% 정도라고 했으니 이 짐작이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하수도 보급률은 2017년 기준으로 93%이다.
가정이나 공장에서 배출되는 하수 중 하수관로를 통해, 혹은 탱크로리로 하수처리장까지 이송되지 않는 분량은 어디로 갈까? 하천으로 방류되거나 어딘가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이곳은 하천이랄 곳이 없으니 어딘가 쏟아 부었을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논문이나 언론보도, 그리고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하수를 1) 하수관로를 통해 배출하거나, 2) 하수탱크에 모은 후 탱크로리로 하수처리장에 가져다 버리거나, 3) 웅덩이에 쏟아 부어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방법으로 처리한다. 우리로서는 웅덩이에 쏟아 붓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도심을 벗어나 있어 하수관로가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는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배출하는 경우가 있다. (하수처리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 비율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요즘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우디의 하수도 보급률은 40~5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하수관로를 통해 배출하는 하수가 절반 정도이고, 그것보다 약간 적은 정도의 하수는 탱크로리로 하수처리장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메디나 하수처리장 개선방안을 검토할 때 상당기간에 걸쳐 직접 확인하였다.
생활하수는 그런 제한이 없지만 오수(분뇨 등)나 공장폐수는 하수처리장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도록 오염물질을 일정 수준 아래로 낮춘 후 배출해야 한다. 그래서 오수는 정화조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장폐수는 배출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리야드 도심에 있는 주택은 대체로 정화조를 설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설치하지 않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오수가 제대로 처리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공장폐수 불법 배출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메디나에서 일하는 동안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끝내 공장폐수 관리 기록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가죽공장에서 발생한 유독한 폐수를 쓰레기매립장 웅덩이에 부어서 땅으로 스며들거나 증발되도록 처리해 땅이 온통 중금속으로 오염된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수처리장에서 하수를 사람에게 유해하지 않을 정도까지 처리하고 나면 찌꺼기(sludge)가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슬러지소각장에서 소각하거나 흙과 섞어 매립했는데, 요즘은 거의 소각 처리한다. 이곳에서는 하수처리장 주변에 그대로 쌓아놓는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하수처리장은 대체로 도심 외곽에 건설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이 확대되고, 하수처리장 주변에 주택이 들어서고, 그러다 보면 운영 초기에는 없었던 환경과 관련한 민원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 마다 덮개 하나 없이 야적되어 있는 슬러지가 문제가 된다. 메디나 시청으로부터 이의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두 해 가까이 준비해 제시했지만,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한 해가 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다. 문제인 건 알겠고 해결방안에도 크게 이견이 없지만, 아직 환경 문제에 그만한 재정을 투입할 준비는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 훌쩍 넘다보니 그동안 하수처리 방법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보니 요즘 한국에서는 정화조를 아예 설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어간다고 했다. 오수를 생활하수와 함께 혼합된 상태로 받아도 하수처리 과정에서 충분히 배출조건 이하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하수처리 기술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수를 배출기준 이하로 처리해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처리수(處理水)는 주변 농경지에서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메디나에서는 대추가 특산품으로 꼽히는데, 이 중 상당수의 대추야자 농장이 메디나 하수처리장 처리수 방류하천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별표)가 하수처리장이고 녹색부분이 방류하천을 따라 펼쳐진 대추농장이다.>
하수의 화학성분은 처리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지만 중금속 함량은 월 1회 정도만 확인하기 때문에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하는 처리수의 중금속 농도가 기준치 이하로 관리되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추가 메디나의 특산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생관리도 철저해서 대추열매에 대한 분석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어느 검사결과에서도 중금속 농도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니 메디나 대추는 마음 놓고 드셔도 무방하다.
메디나 출장 중에 잠시 짬이 나서 하수처리장 인근에 있는 Wadi Jinn이라는 명소를 찾은 일이 있었다. 가다 보니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사우디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가까이 가보니 물이 깨끗해 보이지 않았고 진하지는 않았지만 악취도 풍겼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메디나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처리수였다. 당시 하루 방류량이 20만 톤이 넘었는데, 그 정도 방류량으로 이 정도 호수가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서 처리수가 얼마나 소중한 용수공급원이 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