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08. 2020

[사우디 이야기 21] 지하수

사우디 이야기 (21)

어느 곳을 막론하고 땅속에는 물이 들어있다. 사막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만 물이 매우 깊어 퍼 올리는 게 쉽지 않고, 물이 충분하게 들어있지 않아 조금만 퍼내도 물이 더 깊게 내려간다. 이렇게 땅 속에 들어있는 물을 ‘지하수’라고 하고 그곳까지 깊이를 ‘지하수위’라고 한다. 간혹 ‘수맥(水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 말은 자칫 땅 속에 물이 들어있는 ‘공간’이 있거나 이동하는 ‘통로’가 있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고, 물이 흙의 틈이나 돌이 깨진 틈을 채우고 있는 것이고 물이 그 틈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수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물은 순환한다. 비가 내리면 지표수가 되어 바다로 흘러가거나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형성한다. 지표수와 지하수는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고 다시 배출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흘러가는 동안 그리고 바다에 머무는 동안 증발해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사우디 연평균 강우량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50mm 내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우량이 1,400mm 정도이니 1/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뜨거워 증발량이 많다보니 지하수로 채워지는 양이 극히 적다. 게다가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하수 사용량은 늘어나니 지하수위는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강우량이 많아 물 순환이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없고, 따라서 지하수 고갈이나 지하수위 저하로 인한 문제가 없는 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물 순환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계속 채워지는 지하수를 ‘재생지하수(renewable water)’라고 하고, 사우디처럼 새로 채워지지 않고 오래전 지질시대에 형성된 지하수를 ‘화석지하수(fossil water)’라고 한다. 말하자면 재생지하수는 사용해도 다시 채워지는 자원이고, 화석지하수는 채워지지 않아 사용하는 만큼 줄어드는 자원인 셈이다. 사실 ‘재생지하수’니 ‘화석지하수’니 하는 개념은 지하수 문제가 없는 나라에서 일하던 내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19. 상수도>에서 현재 공급되는 상수도의 절반은 담수화한 물이고 40% 정도가 지하수라고 설명했다. 어제 다른 일로 만난 수자원환경부 담당 책임자에게 물어보니 현재 상수도 공급량의 46%를 지하수로 충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리야드에서는 지하 1,500미터에 분포하는 ‘민주르 대수층’이라는 지층의 지하수를 주공급원으로 삼았지만, 이미 상당히 고갈되어 다른 지층에서도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사우디 화석지하수의 80% 정도가 이미 소진되었다고 하는데, 얼마 남지도 않고 ‘다시 채워지지도 않는’ 지하수를 그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정부로서도 몹시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이렇다면 땅을 어지간히 파도 물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건물 지하실에 물이 찰 걱정 같은 것도 생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작년에 메디나 시청으로부터 메디나 중심부에 있는 ‘선지자의 모스크(The Prophet's Mosque)’ 지하차고가 침수된다며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리야드 시내에서도 지하수위가 지표 근처까지 올라와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대수층 깊이가 천 미터가 넘는다면서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지하수는 대부분 빗물로 채워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상수도 파이프나 하수관로에서 물이 새기도 하고, 아예 하수를 땅에 쏟아버리기도 하고, 농업용수가 스며들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하는 물의 절반 정도는 천 미터 넘는 지하 대수층에서 퍼 올린 지하수이다.) 그렇게 땅으로 스며든 물은 흙의 틈이나 돌이 깨진 틈을 따라 땅 속으로 계속 내려간다.


흙이나 돌로 이루어진 지층 중에는 물이 통할만한 틈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를 불투수층이라고 하는데, 흔히 진흙이라고 말하는 ‘점토층’이나 ‘점토층’이 굳어 형성된 암석인 ‘셰일’이 이에 해당한다. 입자가 아주 치밀하고 깨진 틈이 많지 않은 ‘석회암’도 불투수층 역할을 한다. 땅으로 스며든 물이 내려가다가 이런 불투수층을 만나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그곳에 고이게 된다. 그러니 지하수위는 천 미터 아래에 있는데 중간에 불투수층이 있어 그 위에 물이 고이고 또 다른 지하수위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부유지하수위(浮游地下水位, perched groundwater table)라고 하며, 특히 사우디에서는 깊은 곳에 있는 원 지하수위와 구분하기 위해 천층지하수위(shallow groundwater table)라고도 한다.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리야드에 있는 42개 관측공 중 37개 관측공의 지하수위가 지표에서 10미터 이내에 있었고, 평균 지하수위는 4.5미터였다. 물론 이는 천층지하수위이다.



빗물 이외에 땅으로 스며들 수 있는 경우는 상수도나 하수도 누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현상이 사람이 사는 지역에 한정될 것으로 생각했다. 확인해보니 농작물을 키우는 지역 역시 농업용수로 인해 천층지하수위가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층 중간에 불투수층이 있기는 해도 넓은 지역에 걸쳐 연속적으로 분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부유지하수위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사우디에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불투수층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누수가 일어나는 지역이나 농경지역에서 천층지하수위가 빈번하게 확인된다.


천층지하수를 이루고 있는 물은 출처에 따라 수질이 다르다. 상수도에서 누수된 물은 당연히 깨끗하지만, 하수도에서 누수되거나 하수를 땅에 쏟아 버린 경우 또는 농경지역에서 사용된 물은 당연히 수질이 좋지 않다. 워낙 물이 귀한 곳이니 수질이 좋지 않을 경우 이를 처리해 사용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천층지하수는 퍼내어 허드렛물로나 쓸 정도 분량에 지나지 않아 수원(water source)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지하수가 지표 가까이에 있을 경우,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면 지하수가 공사장 안으로 들어와 문제가 되기도 하고, 지하수가 밀어 올리는 압력(양압력)이 높을 경우 건물 기초가 들뜨거나 이로 인해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일반 건물의 경우 한 층의 무게가 물 1미터 높이의 무게와 같다. 예를 들어 공사장에 2미터 높이로 물이 찼다면 물로 인한 양압력은 2층 건물 무게와 같다. 따라서 건물이 그보다 높으면 양압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은 아래부터 지어 올라가는 것이니 일정한 높이까지 올라가기 전에는 양압력이 건물 무게보다 더 크다. 이럴 경우 건물 바닥이나 벽에 균열이 생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건물 무게가 양압력보다 커질 때까지 지하수를 퍼내어 양압력을 낮춘다.


부임한 첫해에 동부 알코바 지역에 고층건물을 짓는 중에 지하실 바닥과 벽면에 균열이 생겼다고 자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 전형적인 양압력으로 인한 균열이었다. 알코바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이곳은 지하수위가 거의 지표면 근처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론적으로 지하수위는 바다 표면보다 낮을 수 없다. 만약 지하수위가 바다 표면보다 낮다면 바닷물이 밀고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질조건으로 인해 지하수위가 바다 표면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바닷가 근처에서는 그런 경우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현상은 바닷가 근처 공사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왜 그런 면에 대한 대책이 설계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좀처럼 일어나가 어려운 실수였다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메디나 지하수위 상승에 따른 대책수립 용역 입찰에 참가했고 최저가로 낙찰된 것이 이미 17개월이 넘었다. 전임 시장이 긴급하게 요청해서 부랴부랴 준비한 사업이었는데, 시장이 교체되고 나서 도무지 진전이 없다. 이를 해결하려고 신임 시장을 만나 선처를 요청하기도 하고, 전임 시장에게 마무리지어주기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백약이 무효이다.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이야기 20] 하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