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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03. 2020

[사우디 이야기 11] 국내선 항공

사우디 이야기 (11)

땅이 넓으니 우리와 거리 감각이 달라서 이곳 사람들은 열 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 거리도 망설임 없이 차로 다닌다. 동해안 주베일에서 공사할 때 현장소장 집이 서해안 얀부에 있었는데 1,800km나 되는 그 먼 길을 늘 운전해서 다녔다. 그렇다고는 해도 도시와 도시가 워낙 멀어 대부분 비행기를 탄다. 우리나라에서야 대중교통으로 어디나 쉽게 갈 수 있으니 비행기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타는 것으로 알지만, 이런 이유로 이곳에서는 누구나 타는 대중교통에 지나지 않는다. 부녀자들은 오랫동안 차를 타는 게 쉽지 않아 더욱 그렇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비해 부녀자 승객이 훨씬 많다.


다른 도시로 갈 때는 이와 같이 승객 대부분이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당일 자리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출장이라는 것이 일정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대개는 첫 항공편으로 가서 마지막 항공편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예약한다. 하지만 이 같이 자리를 얻기 어렵다보니 일정이 일찍 끝나도 항공편을 앞당겨서 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십 년 넘게 출장 다니면서 항공편을 앞당겨 온 건 아마 한 번 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출장 다닐 때는 으레 공항에서 몇 시간 보낼 생각으로 읽을 것, 들을 것을 잔뜩 준비한다.


사우디에는 민간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이 열댓 개 정도 있고 그 중 이용해본 것이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최악의 공항이 어디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제다를 꼽았다. 제다에 갈 일이 생기면 공항에서 겪을 불편 때문에 짜증부터 났다. 그렇다고 달리 대안도 없고. 신공항이 생겨 작년 연말에 이전을 마쳤다고는 하는데 그 이후로 갈 일이 없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가보고 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제다공항은 내게 최악의 공항으로 남아있다.


제다공항에는 우선 탑승교(boarding bridge)가 없다. 탑승교가 없는 공항이 여기 하나 뿐인 것도 아니고 탑승교가 있어도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불편한 정도는 제다공항을 따라올 데가 없다. 승객이 무척 많고, 승객이 많으니 항공편도 게이트도 역시 많다.* 더구나 제다공항은 순례객들이 메카를 가기 위한 관문이어서 늘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도 출발 시간이 임박해야 탑승 안내를 하고, 탑승안내 할 때까지 게이트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매번 게이트가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게이트가 공지되면 그때부터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제다공항은 연 이용객이 3,600만 명에 이르는 사우디 최대공항이다. 참고로 2위인 리야드공항은 2,800만 명, 인천국제공항 6,800만 명이었다. 그렇게 큰 공항이 이 모양이다.


제다공항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하나 있다. 다른 공항에도 자가용 비행기가 있기는 하지만, 제다공항은 꽤 큰 주기장을 가득 채울 만큼 많다. 멸치도 생선이라고, 자가용 비행기도 이륙하려면 여객기와 마찬가지로 줄을 서고 순서를 받는다. 제다공항은 다른 공항에 비해 유독 연발이 많은 데, 이렇게 자가용 비행기 운항이 많은 것도 한 몫 하지 않나 싶다. 한 번은 담맘에서 공정회의를 하는데 발주처 사업책임자가 도착하지 않아 회의 시간을 몇 번이나 미룬 일이 있었다. 사업책임자가 제다에서 와야 하는데 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가 이륙순서에 밀려 활주로에서 몇 시간 대기하는 통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사업책임자의 자가용 비행기, 놀랍지 않은가? 발주처의 이권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되는 건 제다공항 뿐이 아니다. 어느 공항이든 어느 항공사든 제 시간에 이착륙하는 걸 못 봤다. 우선 발권 마감시간이 들쭉날쭉 하고, 발권한 승객도 출발 시간 임박해서야 탑승시킨다. 그러다 보니 구조적으로 제 시간에 이륙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 정도만 되어도 괜찮겠는데, 몇 십 분 늦는 건 다반사고 늦어져도 이렇다 저렇다 안내방송 하나 없다.


작년 5월에 갑자기 발권 마감시간이 한 시간 전으로 바뀌어서 빤히 보면서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어렵게 시장 면담 날짜를 얻었는데 비행기를 놓쳐 만나지 못하는 것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고, 다시 면담 날짜를 얻기도 어려운 일이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여곡절 끝에 타기는 했다. 물론 어딘가는 공지를 했을 것이고 내가 챙겨보지 못한 것이기는 하겠다. 그렇지만 매달 거르지 않고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이 이런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공지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괜히 씩씩거렸다.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로 모든 비행기가 몇 시간씩 늦어졌다. 발권 마감시간을 한 시간 전으로 바꾼 것도 일조했을 것이고, 성수기인지라 임시 운항편이 늘어 늦어졌다고 항공사에서 사과도 했다. 한두 시간 늦어졌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서너 시간 안에 출발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나는 오후 세 시 비행기를 자정 넘어서 타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늦어진다고 했으면 다른 방도를 찾았을 텐데 한 시간 두 시간 늦추다 보니 아홉 시간 넘게 꼼짝없이 터미널에 묶여있었다. 그런데도 투덜대는 사람이 간혹 있을 뿐 모두 고요 잠잠했다.



언젠가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섰다가 이륙하지 않고 30분 넘게 멈춰서있었다. 에어컨 고장이라고 했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몇 시간 기다렸고, 여섯 시간 만에 겨우 이륙했다. 그날 이백 명 가까운 승객 중에 불평을 터트린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랍어로 뭐라고 설명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렇게 잠잠히 있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인샬라의 힘일까?


얀부에서 리야드로 오는 비행기를 탑승할 때쯤 아람코 비행기도 이 공항에 들러 승객을 내리고, 또 태우고 떠난다. 아람코가 세계 최대기업이고 사우디에서는 거의 치외법권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줄은 알았어도 자체적으로 비행기를 운항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알아보니 대형항공기가 7대나 되고 정기 노선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이웃에게 물어보니 직원은 물론, 자리가 있으면 가족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요금은 없다. 대신 출장 때는 노선이 있는 경우 상용 항공편은 이용할 수 없고 반드시 자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해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불만스러워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다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로 가는 관문이다 보니 공항에 순례객이 엄청 많다. 그리고 제다로 가는 비행기에도 순례객이 적지 않다. 남성 순례객은 큰 타월 하나로는 허리에 둘러 하체를 가리고 또 하나로는 어깨에 둘러 상체를 가린다. 듣자하니 속옷도 안 입고 그게 전부라고 한다.



공항에서는 택시가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기는 하지만, 공항에는 사우디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만 들어올 수 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리야드와 제다에는 런던 캡과 같이 생긴 런던택시가 있어 이런 불편을 덜 수 있는데, 그게 런던 캡 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탈 때 요금표에 따라 요금을 먼저 지불하게 되어 있어 요금 때문에 실랑이 할 일은 없다. 요즘은 사우디 어느 곳이나 우버택시가 있어 말이 통하지 않을 걱정도, 요금 때문에 실랑이 할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여러 곳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버택시를 권할만하다. 공항마다 우버택시 승차장이 따로 있다. 언젠가 그걸 모르고 우버택시 찾느라 애먹은 일도 있다.


이동이 많을 경우에는 공항마다 렌터카가 많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소형승용차의 경우 하루 4만 원 정도면 꽤 괜찮은 차를 빌릴 수 있다. 사막 한복판이 아닌 한 어디서나 구글맵이 잘 작동하기 때문에 지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렌터카는 하루 기본거리가 150~200km 정도이며 이를 초과하면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 거리제한이 없는 차가 조금 비싸기는 해도 이동거리가 멀 경우에는 그게 싸게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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