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 한다는 건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1993.09)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나가 결정된다. (1994.04)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능력은 아이디어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1996.03)
말을 아껴라. 할 말을 다하면 반드시 실수한다. (2004.02)
글 쓰는 일을 낙으로 삼고 살다보니 글 쓰는 것 뿐 아니라 남이 써놓은 글에도 관심이 많다. 좋은 글을 보면 부럽고,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본받으려 애쓴다. 그런데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공자께서 ‘辭達而己矣(말은 목적을 이루면 그만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전하려는 내용을 쉽고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글로써 전하려는 내용보다 문장 자체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 글은 아름다운데 정작 그 글이 전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글을 읽을 때 그 글이 보여주려고 하는 사물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가슴에 와 닿아야 하는 것인데, 보이고자한 것은 흐릿하면서 문장만 훌륭하게 만들어놓고는 스스로 감탄해 마지않으니 참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 어디 글쓰기뿐 이겠나마는. (2004.10)
진위를 가리는 일에는 ‘사실이다’, ‘아니다’ 밝히면 된다. 동의를 구하는 일에는 ‘찬성한다’, ‘반대한다’ 밝히면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대로 믿지 않을까?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아야지 왜 죽어도 아니라고 말해야 믿고, 반대한다면 반대하는 줄 알아야지 왜 결사적으로 반대한다고 해야 믿나. 극단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면 왜 의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사적’이니 ‘절대로’니 하는 ‘말의 인플레’를 덜어내었으면 좋겠다. (2004.11)
여러 사람 앞에서 발언할 때 시간이 길어지는 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로 발언하다 보니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덧붙여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발언하기 전에 내용을 충분히 준비하고 실제로 발언하는 것처럼 여러 차례 연습하면 생각했던 시간 안에 생각한 내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늦어져도 1~2분을 넘기지 않더라. (2004.11)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care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생각이 모자란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는 법이고 그저 그런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려니 치부하고 있었는데 이제 설교에서조차 그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걸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물론 외국어나 외래어를 쓰는 것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니 꼭 그 단어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용어 같은 건 딱히 걸맞은 우리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경우에 따라 외국어든 외래어든 써야할 때가 있다. 그런데 care라는 말은 이보다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우리말이 있는데, 그리고 그 말이 care라는 말보다 의미를 더 분명하게 나타내는데 왜 굳이 아름답고 실용적인 ‘돌보다’라는 말을 놔두고 그 말을 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뭐가 좀 나아보인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이해 못할 일이다. (2005.05)
자기가 아는 걸 설명한다고 해서 모두 강의가 되는 건 아니다. 강의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행위이니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그 지식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강의라고 할 수 없다. 대화 역시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는 행위인데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것을, 상대가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개의치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것을 대화라고 할 수 없지 않겠나. (2005.09)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일은 자기 의견을 밝히는 일이기 전에 여러 사람의 시간을 빌리는 일이다. 그러니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내는 건 무례를 넘어 남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2005.10)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쉬운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마크 트웨인은 “연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떨린다는 사람과 안 떨린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겠나. 이런 두려움은 끊임없는 훈련과 준비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2006.01)
책을 읽다가 내용이 머리에 선뜻 들어오지 않으면 번역을 의심해봐야 한다. 번역해 놓은 걸 보면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겨놨다기보다는 외국어 단어를 우리말 단어로만 바꿔놓은듯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는 번역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번역했거나 우리말 어휘력이 형편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번역을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번역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말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뛰어나야 한다. 글을 되풀이해 읽지 않아도 그저 글을 읽는 순간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써야 번역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번역한 글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글로 썼는데도 읽으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적어도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사서 볼 정도의 책을 펴내려면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최소한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한 채 책을 펴내는 것은 무지한 것인가 아니면 염치를 모르는 것인가? (2006.02)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녀들에게 모국어 교육을 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것 자체야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곳에서 삶을 터전을 일구겠다고 이민을 갔다면 먼저 그 나라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을 품어준 그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정착하고 난 후 그가 지닌 영향력으로 모국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고, 그의 성공적인 삶 자체가 국위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해외에서 자라난 이민 2세들이 겪는 어려움을 전해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본토인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다 해도 취업하는데 본토인에 비해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결국 취업할 수 있는 회사는 모국기업이나 모국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체로 한정된다. 그 사업체에서 한국인 2세를 채용하는 것은 그들이 현지어와 한국어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2세들은 모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그 기회마저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취직을 못하니 모국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09.12)
말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 들리는 말이 중요하다. 나는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이야기한다고 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만 정신을 쏟고 정작 상대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오류 중 가장 흔한 게 너무 많은 걸 전달하려다가 결국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걸 전달하려 하면 뭐하겠나.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나를 제대로 전달하느니만 못하지 않겠나. 그러니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전달하려 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제대로 전달하려 애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중요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면 그 내용에 무엇을 얼마나 더 담을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미 담아 놓은 것에서 무엇을 얼마나 덜어낼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 옳다. (2010.07)
병을 고치려면 약이 효능이 있어야 하고 그 효능을 지닌 성분이 몸에 흡수되어야 한다. 약 성분이 몸에 흡수되었는데 효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효능이 있어도 몸에 흡수되지 않으면 소용없기는 마찬가지다.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하려는 내용이 선명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달하려는 내용에 신경 쓰는 만큼 전달하는 방법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전달하려는 내용에 신경 쓰는 데 몇 분의 일만 전달하는 방법에 신경을 써도 눈에 띄는 효과를 얻을 텐데 말이다. (2013.05)
준비가 덜 되면 길어지더라. 발표든, 강의든, 설교든. (20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