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배려

by 박인식

경쟁


정당한 경쟁일 경우 남을 의식해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남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1994.11)



배려할 줄 모르는 믿음


청년들과 대학로에서 노방전도를 한 일이 있었다. 마침 집회를 하려고 했던 자리가 사람들이 라켓을 빌려 배드민턴을 즐기는 자리여서 라켓 빌려주는 사람들과 옥신각신 했다. 지도목사께서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리더에게 함께 기도하기를 권했다. 청년들이 한마음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거나 감격스러운 마음보다는 조심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곳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이지 우리만의 공간은 아니었는데도 주위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성기도 하는 모습에서, 라켓을 빌려주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장사를 방해하는 일은 생계가 걸린 일임에도 단순히 그들을 전도집회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으로 매도하는 모습에서 젊은이다운 믿음의 아름다움 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1997.12)



잘못에 대한 지적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고 그저 개인적으로 조용히 알려 줄 수도 있다. 물론 상황이 워낙 여러 가지일 수 있으니 옳고 그름을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공개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는 그 잘못을 고치려는 것보다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 물론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한다. 명심할 것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없애야 할 것은 잘못한 사실이지 잘못을 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기를 좀 더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공개적으로 지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의도했던 아니던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와 관계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잘못을 고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관계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므로 단순히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으로만 생각을 해도 상대의 잘못을 조용히 알려주는 게 공개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는 일은 당연히 금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2004.02)



실패에 대한 반응


누군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까발리고 그를 실패자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실수하지 않을 방법을 알려주고, 다음에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실수하지 않을 방법을 설명하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것이 질책으로, 실패자처럼 여기는 것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기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상대를 위한 배려도 학습과 노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2004.10)



아이스크림 케이크


청년부 모임에서 간식을 맡은 청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두 개 사왔다. 간식을 맡겼으니 자기 취향에 맞는 간식 고른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간식비로 자기 취향에 맞는 간식을, 그것도 같은 것으로만 두 개를 샀다는 건 요즘 청년들의 개성을 고려한다 해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워낙 적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다 보니 예전만큼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놀랐던 건 자기가 골라온 간식을 왜 마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남이 다른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크게 걱정할 일이다. (2004.12)



나뭇가지


나뭇가지는 먼저 나고 굵은 것이 늘 아래쪽에서 자란다. 그렇게 먼저 나고 굵은 가지가 아래를 받치고 있어야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는 법이다. 먼저 나고 큰 가지가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해서는 나무가 결코 튼튼하게 자랄 수 없다. 사람 사는 것이 이와 다를까. (2005.11)



바른 말


내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망설임 없이 내게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내게 바른 말을 했을 때 비록 입에 쓰다 해도 그것을 약인 줄 알고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사실 바른 말이라는 게 대부분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그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고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바른 말 해주는 사람을 고맙게 여기고 좀 더 편안하게 그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바른 말이라고 해서 어떻게 이야기해도 괜찮은 건 아니다. 바른 말이라는 게 당장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할 때는 특별히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늘 곁에서 잘못을 지적해주는 고마운 후배가 있다. 좁은 소견머리에 그것이 어찌 듣기 편하겠나마는 그 지적이 매번 옳은 것이었고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기 때문에 늘 고마워하고 있다. 그런데 표현하는 모습이나 지적하는 상황이 기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많았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너무 불편해 끝내는 그 후배에게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그렇게 불편했으면서도 내색하지 못했던 건 그런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 그가 해야 할 바른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그가 매우 당황했고 그 때문에 며칠 서먹하기는 했지만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직원들에게 쓴 소리를 잘 하는데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아니겠나. 결국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 셈이 되었다.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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