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 예선전에서 사우디에게 패한 뒤 본프레레 감독은 패인을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로 돌렸다. 그럴 수 있다. 현재 대표팀을 이루고 있는 선수 중에 많은 선수들이 이미 2002년 월드컵에서 부와 명성을 모두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욕을 극대화할만한 유인 요인이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패인을 선수들의 정신적 해이로만 돌리는 게 옳은가? 감독은 책임이 없을까? 선수들의 정신이 해이해져 있었다면 그걸 바로 잡는 것도 감독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선수들의 정신무장을 매번 강조했다고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정신상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감독의 의무를 다 했다고 할 수 있나? 히딩크 감독은 같은 문제에 부딪쳤을 때 선수들의 정신적 해이를 나무란 기억이 없다. 대신 그는 마지막까지 출전선수를 확정짓지 않고 선수들 간의 무한경쟁을 유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보도에 따르면 본프레레 감독은 대표팀 성적이 나쁠 때 한 번도 자기 허물을 인정한 일이 없다. 이것은 감독으로서의 자세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감독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005.03)
영화 ‘말아톤’으로 데뷔한 조승우라는 배우가 오래전 인기가수였던 조경수의 아들이라고 한다. 타고난 대로 노래에도 자질이 있어서 뮤지컬 배우로서 꽤 인기가 있다고 했다. 오늘 비로소 그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보게 되었다. 기대를 훨씬 뛰어 넘었다. 그런데 그가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얼굴 모습부터 고음에 올라갔을 때 턱을 앞으로 내뽑는 모습까지, 그리고 음색까지도 닮았다. 부자가 빼어 박은 듯 닮은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기 보다는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모습보다는 감추고 싶은 모습이 더 많은 아비로서 말이다. (2005.06)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연예인이 많지 않다. 연예인을 스타로만 여기지 않고 그저 조금 특별한 생활인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몇몇 모범적인 연예인의 생활태도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지 싶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안성기가 아닌가 한다. 빼어나게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가 오랜 시간 보여준 일관된 건강한 생활태도와 겸손함만으로도 그가 현 국내 영화계의 거목으로 자리잡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의 그런 모습이 후배 연예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실제로 그로 인해 연예계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2005.06)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인기가 높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홈페이지를 살피다가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영상을 몇 편 보게 되었다. 진행자가 촌철살인의 말솜씨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준비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준비한 말을 언제 해야 할지 앞뒤를 재느라고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기 어렵다.”
정말 그렇다. 그러고 보면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건 아니다. 그가 그렇게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 때문에 그의 달변이 그저 말만 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2006.05)
오래 전 장안을 휩쓸었다가 20여 년 만에 다시 리메이크 되어 방송되던 ‘사랑과 야망’ 드라마가 이번 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단순히 예전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것이라면 결말이 뻔한 것이겠지만 이번에는 그 뒷이야기까지 덧붙였기 때문에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가 리메이크에 동의한 것은 결말을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맺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이 드라마를 쓴 김수현 작가는 개성이 강한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개성이 강하다 못해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정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덕에 비난도 수없이 들어야했다. 그래도 워낙 인기가 있어 그런 비판이 힘을 얻지도 못했고,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조차 그의 드라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기는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작품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작년인가 방송되었던 ‘부모님 전상서’라는 드라마는 이전의 날카로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따뜻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래 전, 날이 선 채로 끝냈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결말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가 결말로 달려가면서 지나치리만치 확신이 넘치는 큰 아들과 자기를 포기할 줄 모르는 큰 며느리의 모습이 온기가 느껴지는 인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칼칼하던 작가의 드라마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애를 회복해가는 것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새삼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넉넉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06.11)
방송 80주년을 기념해서 KBS에서 방송한 ‘방송 80년, 인물 80년’에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 중 아나운서 부분에 1위를 차지했다. 방송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방송에서 활동한 모든 아나운서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활약하던 아나운서들이야 기억조차 희미하니 아무래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나운서들이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나 그런 덤을 덜어낸다 해도 손석희 아나운서는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의 수위를 차지하는데 부족함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활동해온 전통적인 개념의 아나운서는 자기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원고를 낭독하거나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에 방송인이라고는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서는 아나운서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자기 생각을 표출하기도 해서 영향력 또한 확장되어 가고 있는데, 그중 손석희 아나운서는 단연 발군의 기량으로 시청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으로 검색 해보기를 권한다. 중요한 이슈에 대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이 시간을 통해 자기 소신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하나둘이 아닌데 유독 손석희 아나운서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뛰어난 논리로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 들거나 촌철살인의 짧은 논평으로 청취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언변, 한 순간도 어느 한쪽에 치우쳐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영향력의 본질은 그가 전하는 모든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신뢰, 그것이 그가 가진 영향력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2007.02)
그의 비판은 늘 매섭고 날카로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을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판이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언론인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부디 지금까지 지켜왔던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인으로서 본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4.04)
김훈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해서 속도감이 있다. ‘칼의 노래’에서 느껴지던 속도감은 ‘남한산성’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 기세를 높이고 있고, 그래서 때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야 겨우 글을 따라잡을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속도감은 그가 지금까지 발표해온 소설이 모두 서사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서정적인 글을 쓸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서정적인 글을 쓴다면 그 때에도 이와 같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쓸 것인지, 그렇게 쓴다면 그 때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다. (2007.07)
그의 연주를 처음 대한 것은 198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갈라 콘서트 실황 영상에서였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나오는 ‘La calunnia(험담은 미풍처럼)’라는 아리아를 불렀는데 장신에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베이스라는 음역에 새롭게 눈뜨게 되었다. 그 후로 자식이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음역이 베이스여서 그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다. 몇 년 전, 같은 해 공연한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 DVD를 구해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루제로 라이몬디의 진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자식이 성악을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라 자연스럽게 자식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전, 그가 최근까지 무대에 올랐던 것을 알게 되어 망설이지 않고 DVD를 주문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페라를 감상했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기량이 너무나 떨어져서 차라리 보지 않으니 만 못했다. 그라고 왜 자기가 늙어간다는 걸 깨닫지 못했겠나. 그런데도 왜 차라리 나서지 않은 것만 못한 기량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을까? 노욕인가, 착각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물러설 때를 놓친 추함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열렬한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한때 자식이 본받아야 할 좋은 모델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식이 그를 따를까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역할 모델이 되었든 반면교사가 되었든 어찌되었거나 자식이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8.01)
최근 세계 오페라계에 안나 네트렙코라는 소프라노 가수가 혜성처럼 나타났는데 노래만 잘 부르는 게 아니라 미모면 미모,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무대 위의 그녀를 보면서 이제는 노래하는 기량만으로는 더 이상 오페라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안나 네트렙코가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서 그것이 결코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나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라 체계적이고 폭넓은 교육과 상상을 뛰어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그녀는 어떤 자세에서도 노래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렸을 때 5년 동안이나 곡예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페라 한 작품을 불과 4~5일에 마스터한다는 초인적인 노력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영어로 자기 생각을 피력했는데, 모국인 러시아 억양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구사하는 영어는 아주 세련되고 자기 모든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완벽했다.
그동안 성악가에게 필요한 기량을 체계적으로 갖추도록 일찍부터 자식을 독려하기는 했어도 이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생각보다는 훨씬 크고 높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더욱 분발할 일이다. (2008.01)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마술사 데이비드 카파필드는 어디를 가든 인기와 흥행을 몰고 다닌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흥행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마술을 마술 그 자체로 즐기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마술에서 사용하는 속임수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탐구심이 높아서인가? 혹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는 아닌가? (2008.02)
쉬운 내용을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이 참 많다. 스스로 전문가인양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한데, 그래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더 귀하게 보인다. 출근길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즐겨 듣는다. 그 중 경향신문의 권재현 기자가 5분 정도 경제관련 기사를 전해주는 시간은 일부러라도 챙겨듣는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경제현안에 대해 어찌나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는지 경제에 대한 지식이 짧은 내겐 여간 유익한 시간이 아니다.
설명을 쉽게 하는 사람일수록 내용에 대해 정통하다. 내용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것이 자기 것으로 체화되지 못하면 결코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난 재주라기보다는 갈고 닦은 실력이라고 보아야하지 않겠나. 목소리만으로는 아직 중년까지는 안 된 것 같은데, 성장을 지켜볼만하겠다. (2008.03)
요즘 TV 주말연속극에서 오랜만에 배우 장미희가 열연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어색함을 많이 덜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연기 현장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는데 오히려 연기력이 좋아진 이유가 뭘까? 작년인가 학력위조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때 그녀 또한 그 회오리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대학에 임용될 때 제출한 학력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때 자기가 임용된 것은 자기 연기 경력 때문이지 학력 때문이 아니었다면서 항변했고 그 이후로 그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항변이 일리가 있기도 했지만 그가 참으로 성실하게 강의에 임한다고 관계자들이 평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녀의 연기력이 좋아진 것 또한 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정작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 바로 자신이다. 그가 오랫동안 그렇게 성실히 강의 준비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했다면 그 영향을 자기가 가장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기 현장에서 그렇게 오래 떨어졌음에도 오히려 연기력이 향상된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선배로서 후배를 지도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 일이다. 후배를 지도함으로서 선배의 의무를 다 할 뿐 아니라 자기 기량 또한 끊임없이 향상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2008.09)
칠십을 몇 해나 넘긴 패티김이 오십 년이 넘는 가수 생활 중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것이 허명이 아니었다. 이혼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오해받았던 것을 몹시 억울해 했다. 자기는 결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음악과, 자기 인생을 위해서라도 자기를 그렇게 망가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자기 음악과 자기 인생을 위해 결코 자기를 그렇게 망가뜨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는데, 그것이 그를 오십 년 넘게 스타로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2010.02)
크고 강한 것만 좋은 건 아니다. 작은 것이 있어야 큰 것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약한 것이 있어야 강한 것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큰 것과 작은 것,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이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한국인으로 세계 오페라의 전당인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혜경은 누구보다 고음을 잘 내며 성량 또한 누구에게 뒤지지 않지만, 그보다 강약과 고저를 훌륭하게 조화시켜 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정상의 자리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10.04)
배우 김민선은 2008년 5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글을 올렸다. 연예인들 가운데 가장 과격하게 표현해서 꽤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미니홈피에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진을 올려 또 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작년에는 이름을 김규리로 바꾸었는데 ‘청산가리 발언’으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려 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김민선이 촛불정국 2년을 맞은 보수언론의 특집기사에서 또 뭇매를 맞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이야기할 때마다 연예인이 공인이니 자기 발언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견과 자연인으로서 사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다는 의견이 늘 팽팽하게 맞선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지 싶다. 오래 전부터 미니홈피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봤을 때 그가 파장을 의도하고 쓴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생각을 편하게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산가리 발언’이 문제가 되고 나서 어떤 자리에서든 그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밝힌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분위기로 봐서 얼마든 군중심리나 영웅심리에 기대 정치적인 발언을 계속할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런데도 의견을 밝혔다는 아무런 보도가 없는 걸 보면 그의 발언이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문책을 받을 일도 아니지 않았나 싶다. 오죽하면 이름을 다 바꾸었겠나. 얼마나 그 파장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런데 촛불정국 두 해를 맞아 또 다시 자기 이름이 거론되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 또한 그 발언 때문에 마음이 몹시 언짢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를 향한 손가락질은 정당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마녀사냥이 아닌가 싶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라고는 하지만 그 또한 그 많은 비난을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소시민이 아닌가. 이제 그만 하자. (2010.05)
남아공 월드컵에서 차범근이 4년 만에 해설을 맡고 차두리가 그리스 전에서 활약을 보이면서 온라인이 두 부자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차범근은 너무 빠듯하게 해설자로 참여하기로 결정을 해서 요즘 밤새워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며 “이럴 때 옆에서 백과사전처럼 도와줄 두리가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두리는 훈련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축구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전 세계 축구를 보기 때문에 모르는 선수가 없는 나의 백과사전”이라고 자랑했다. 자기 분야에 철저하게 매달리고 있는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나오는 글이었다.
나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차두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루 종일 축구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전 세계 축구를 보기 때문에 모르는 선수가 없을 만큼 자기 분야에 철저하게 매달리고 있으며 축구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늘 웃는 얼굴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그는 반드시 자기 삶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성공이라는 게 프로 축구선수로서 명성을 날리는 일이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성공이 또 있을 수 있겠나. (2010.06)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배우 김승우에게 성적을 매긴다면?”
“배우로서 ‘수’는 못주겠다. 수를 받으려면 흥행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드라마에선 전승을 거뒀지만 영화는 삼진 아웃 당했던 작품도 있다. 대신 기특한 마음에 ‘우’는 주고 싶다. 20년 간 다른 일에 곁눈질 안하고 연기만 하지 않았나.”
겸손하나 비굴하지 않았고, 자부심이 있으나 교만하지 않았다. 나도 훗날 스스로에게 꼭 이만큼만 평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1.04)
그의 노래는 늘 편안했고, 때로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쯤 있었던 지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가 특별히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없었고 감동을 느꼈던 일도 없어서 그저 여러 노래를 듣는 가운데 구색 맞추기 정도로 한두 곡 들어왔던 것이 전부였다.
며칠 전 어느 음악프로그램에서 이적이라는 젊은 친구가 자작곡 ‘다행이다’를 그와 함께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노랫말이 아름답고도 감동적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평생을 반려하는 ‘그대’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으로 그려냈는지 놀라웠다. 그러나 정작 그 노래가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껴진 것은 노래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를 바로 그가 불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내게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읊조리듯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없는 감동으로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노래에 그의 삶과 그 삶으로부터 비롯된 연륜이 묻어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 어눌하지만 진심을 담아 내놓는 그의 말, 잔잔한 미소. 그런 그의 삶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 노래가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리지 않았겠나.
내 나이도 그보다 그렇게 적지 않은데 내 모습에선 언제쯤이나 그에게서 풍기는 겸손함과 따뜻함을 아우르는 연륜이 느껴질 수 있을까? (2011.07)
나는 그의 캐릭터가 싫다. 자기 실체와 관계없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일 수는 있겠지만 남에게 악담을 퍼부어대는 그도 싫고 그런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이번 막말 파문과 관련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기 아들에게 “내가 과거 이런저런 발언들 때문에 문제가 많이 됐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런 것들로 인해 방송을 그만두게 된다고 해도 원망하지 마라. 어차피 내가 한 말이다”라고 이야기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공중파로 진입한 후 많은 프로그램을 했지만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은 원죄가 있어 항상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그의 캐릭터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이번에 불거진 파문과 상관없이 마음 한쪽이 싸아 해져 오는 건 왜일까? 나이가 들은 것일까? (2012.04)
잘못은 누구든 할 수 있다. 잘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고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면 최소한 용서를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던가, 깨달았는데도 인정을 하지 않는다던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가며 자기를 합리화하는 건 잘못한 사실 그 이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시원한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쓰러진 상대에게 다가가 다치지나 않았는지 살피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IOC 선수위원에 올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공헌을 했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급전직하로 망가질 수가 있는지. 그렇게 망가져가면서도 놓을 수 없는 게 정치권력인가? (2012.04)
누군가가 그를 일컬어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했을 때 무릎을 칠 정도로 공감을 한 일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싫은 것이라기보다는 싫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귀에 잘 들렸는지도 모른다. (싫은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 그가 집필한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느라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을 써서 그가 쓴 책 대부분을 읽었다는 표현을 물리기는 했지만, 내용을 떠올려보니 그가 쓴 책의 대부분을 읽었다 할 정도로 그의 대표작은 섭렵을 한 듯싶다. 그런 그가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로 세간의 이목을 다시 끌고 있다.
예전과 다른 그의 모습에 그에 대한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술수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게 사실이다. 마침 그가 2009년에 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그의 이런 모습에 어느 정도는 진정성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헌법에 대한 집요한 소신,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과 반성, 그리고 그동안 써온 책을 통해 흐트러짐 없이 이어져 오는 합리적인 사고를 대하게 된다면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나? 그가 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처음 그의 글을 읽었을 때 그가 펼쳐나가는 합리적인 사고에 나 자신 역시 당황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동안 그의 생각과 행동이 동떨어져 있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무튼 이제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12.05)
참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을 하면서 이처럼 맑은 영혼을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구정물 같은 정치판에 뛰어들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정치판으로 끌어들이지 못해 애쓰는 정치인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많은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치판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울 시장 출마설이 나왔을 때 당연히 낭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에 대한 의구심이 마음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의 대선 출마설이 나돌았다. 혼란스러웠다. 기성 정치인들보다 더 정치적인 그의 행보와 그가 했던 말과는 동떨어진 흔적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혼란스러움은 차츰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며칠 전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해서 굳이 이를 구해서 봤다.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뒀다. 예전과는 사뭇 달랐던 그의 표정 때문이었다. 그때 보였던 그 맑은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종일관 경직된 모습이 그렇게 낯 설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맑은 모습을 보이려는 게 오히려 가식처럼 느껴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정치는 정녕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인가? 오늘 SK 최태원 회장 분식회계 사건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에 그가 서명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시종일관 주장해온 바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처사였다. 이에 대한 지적에 그는 이 일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니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 될 일이다. 논리로는 그런데 마음은 그와 사뭇 달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았다. 잘못했다는 건가 아닌가? 혹시 그동안 신물 나게 들어온 기성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수사는 아닌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큰 실망감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으로 그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접는다. (2012.07)
그는 실로 전설이었다. 모든 강공은 그의 부드러움 앞에서 순한 양으로 길들여졌고 그의 부드러운 공격 앞에 넘치는 힘과 젊은 패기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기량이 절정에 올라 있는 이십년 후배와 대등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이 부드러움이 아니었을까. (2014.01)
그가 심사를 하는 어느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목감기로 고생하던 출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목을 다치거나 목감기에 걸리는 건 혼 날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자기관리를 잘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니까. 그러나 조심하지 않고 계속 큰 소리로 사람들과 떠들고 전화하고 이런 걸 봤을 때는 혼 낼 수밖에 없어요. 자기관리는 아프기 전에 안 아프려고, 또 아프고 나서 어떻게든 빨리 나으려고 조심하면서 사는 그게 자기관리인 거지 안 아픈 게 자기관리가 아니에요. 특히 평생을 음악을 하려면 그런 자세가 정말 중요해요.”
어디 음악 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자세가 필요하겠나. 요즘 그에게서는 평생 한 길만 외골수로 걷는 장인의 모습이 보인다. (20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