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이라는 게 늘 큰 수고로만 얻는 건 아니더라. 작은 수고로도 얻을 수 있는 큰 기쁨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그 작은 수고를 아껴 큰 기쁨을 번번이 놓친다.
겸손이란 드러낼 것이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일컫는 말이니, 드러낼 것조차 없는 사람이 함부로 쓸 말은 아니다.
자식이 성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이유를 물으니 자기는 노래하는 게 정말 좋다고, 그래서 음악선생 되어서 평생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결국 자식의 꿈은 좋아하는 노래를 하며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한 것일 테니, 지금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성공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무대에 서다보면 욕심이 왜 안 생기겠으며 그 욕심 때문에 조바심으로 시간을 보낼 일이 왜 없겠나. 그럴 때 성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졌던 꿈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과 성공은 음악적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자라나신 아버지는 학력이라고는 초등교육 몇 년이 전부이셨다. 그런데도 신언서판 중 어느 하나도 빠지시는 것이 없었다. 달필이셨을 뿐 아니라 대중 앞에서 하시는 말씀은 언제든 깔끔하고 명쾌했다. 아우의 육군훈련소 수료식에서 가족대표로 인사말씀을 전해달라는 훈련소장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흔쾌히 단상에 올라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에 훈련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교관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가족들의 성원을 당부하셨던 말씀은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연설에도 뒤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이런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웠다. 나이가 들어가니 초등교육 몇 년에 불과한 학력으로 이런 소양을 갖추기까지 아버지가 쏟아 부으신 노력과 그 과정에서 겪으셨을 아픔에 생각이 미치게 되어 가슴이 서늘했고, 자식에게 평생 닮고 싶은 본보기로 남아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자식에게 그런 본보기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 이삼년 계속해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조선산업의 침체와 해양플랜트사업의 수익구조 때문에 조선업계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작년에 대우조선해양만 오히려 큰 흑자를 구현하는 놀라운 실적을 보였는데, 최근 들어 그것이 전임 사장의 연임을 위한 분식회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각에서 해양플랜트라는 것이 공정이 워낙 복잡한데다가 건조기간이 몇 년씩 걸리는 장기계약이다 보니 손실을 반영하는 시점이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장 같은 영역이고, 경영능력이나 기술수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조선3사 가운데 유독 대우조선해양만 월등한 경영성과를 보였다면 한 번쯤 그 이면을 살펴볼 생각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그동안에 도대체 뭘 보고 배운 것인지.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가 들면 호기심이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 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된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매사에 호기심이 더 커져만 간다.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면 틈틈이 깨우치고 익힌 것을 언젠가 써먹을 수 있으려니 기대라도 해보겠지만, 이미 은퇴할 나이를 넘어선 사람이 새롭게 깨우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운이 없으면 백세를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던데, 앞으로 좀 더 쓰실 곳이 있으신 건가?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증원을 검토하는데 시민들의 시선을 생각해서인지 정원을 늘이는 대신 세비를 깎아 전체 예산을 동결하겠단다. 세비 값을 못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시민들의 시선이 싸늘한 줄 아는 모양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시민들 마음도 읽지 못하고(知彼) 자기 주제도 알지 못하니(知己) 어디 일승인들 기대할 수 있겠나.
살다보면 상황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바뀌어서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문제를 보는 관점이 내 중심에서 상대 중심으로 바뀌었거나 문제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문제가 매번 그렇게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 물론 스스로 노력해서 관점이 바뀌거나 시야가 넓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어느 순간 마음이 움직여서 그렇게 되더라. 마음을 그렇게 움직여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분께 집중하지 않고는, 그분의 음성에 예민해 있지 않고는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