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독일은 겨울이 되어서 여덟 시나 되어야 해가 뜨는데 아이들은 일곱 시면 학교에 갑니다. 사방이 깜깜하지요. 아이들만 보낼 수가 없겠습니다. 책가방은 어찌나 크고 또 뭘 그렇게 잔뜩 넣어 다니는지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처음에 책가방을 보고 설마 저걸 다 채워가지고 다니겠나 했지요. 학교 가서 보니 아이들이 마치 완전군장한 군인들 같아보였습니다. 내 눈엔 지나치다 싶던데,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유약하게 키우는 걸까요?
아버지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르셨습니다. 아마 그 피가 혜인 아범에게 건너간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혜인 아범이 성악을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계셨습니다. 결국 애지중지하시던 맏손자가 당신의 재능을 이어받아 성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지요.
오늘 혜인 아범이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물론 그동안 연주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국 클래식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선을 뵈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지요. 금난새 선생이 지휘하는 성남시향의 바그너 갈라 콘서트에 출연했습니다. 자식의 데뷔 무대이니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저희 내외는 아이들 보러 혜인이네 집에 와있어 그저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동생들이 혜인 아범 연주를 지켜보면서 하나 같이 아버지 생각이 나더랍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하시는데, 그래도 혜인 아범 노래하는 거 보면서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자식이 아비의 불효를 가려줬군요.
이 자리를 빌려 자식 연주장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기억하고 성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옛말에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더니, 요즘 청와대가 꼭 그렇다.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둔 사람의 말로가 좋았던 경우가 아주 드물다. 오래 전에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신 것을 깨달은 이후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니 감사한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일이었다.
나름 신앙을 가졌다 하면 평생 한 번쯤은 처절하게 회개한 경험이 있다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절하게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회개조차 해본 일이 없다. 머리로 깨달아지고 입으로 시인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고백은 아니었다. 그렇게 죄를 깨닫고 회개한 일이 없으니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을 놓고 전능한 하나님께서 왜 굳이 그 길을 택하셔야 했느냐는 질문이나 하고 앉았다. 결국 그 질문은 회개한 일이 없다는 반증이로구나.
언제든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가자고 부르시면 망설이지 않고 선뜻 따라 나설 수 있기를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언제가 지금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아직은 먼 이야기이고, 그래서 그렇게 기도하는 게 별 부담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라면 지금까지 기도해온 게 모두 헛일이겠다.
평생 나만 알고 살았으니 앞으로는 이웃을 돕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저런 이유로 이웃과 마음의 담을 쌓고 사는 옹졸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웃과 사이에 담을 쌓아놓은 채 어떻게 이웃을 돕겠다고 생각할까. 당장이라도 고칠 수 있는 일이어서 맨 먼저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이웃에게 전화해 축하의 말을 전했다. 기업 연구소에 일하는 친구인데, 원하던 대로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한 달도 더 되었는데도 차일피일 축하의 말을 미뤄두고 있었다.
아내가 없으니 침대 한가운데 누워 잘만도 한데 늘 그렇듯 한쪽에 치우쳐 자다가 한가운데까지 오는데 며칠이 걸렸다. 아내가 돌아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또 며칠이 걸리겠지. 두 시간 시차야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적응하는데 며칠씩 걸린다. 아이들에게 다녀오고 한 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원래 시간표대로 돌아왔다.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니 자기 행동에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나. 어지간히 굳게 마음먹지 않으면 애만 쓰다 말 일이겠다.
빈에 머물던 사흘 내내 음악가의 흔적만 따라다녔다. 베토벤이 십여 년 넘게 살며 작품을 쓰던 집이며, 모차르트 기념관인 피가로하우스며, 도시 곳곳에 있는 음악가의 조각상을 찾았다. 베토벤이 오르내렸을 계단의 난간을 쓰다듬으며 그의 손길, 그의 숨결을 느껴보려고 했다.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뮤직페라인홀을 찾았지만, 그날따라 극장 투어가 없는 날이어서 담당 직원에게 잠깐이라도 극장 안을 볼 수 없겠느냐 부탁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중앙묘지를 찾았는데, 묘지가 아름답기도 하더라마는 묘지는 묘지 아닌가. 인적도 드물고 게다가 그곳을 찾았을 때 곧 비라도 내릴 듯한 기세여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기는 해도 모차르트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슈트라우스의 묘지를 발견하고는 그들의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내내 함께 한 아내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난 아내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유럽을 여행하며 예술가의 흔적을 찾는다는 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아니지 않은가. 여행 다녀오고 한참 지난 후 아내가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음악가의 흔적을 쫓아다니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겠던데, 마지막 날 묘지까지 끌고 가는데 기가 차더란다. 말하자면 상기된 게 아니라 열 받은 거였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스위스에 계시는 페친 한 분이 올리신 빈 풍경을 보다 문득 십 년도 훨씬 넘은 옛 생각이 떠올랐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나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일의 양식, 내년의 양식을 구했다. 그리고 그것이 준비성 있는 자세라고 믿어왔다. 그러니 늘 조바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불신의 결과였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구한 바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며 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번 성탄절에는 유독 죄와 회개, 용서에 대한 생각을 오래도록 하게 된다. 성탄은 죄와 회개, 그에 대한 용서로부터 이어지는 것이니 엉뚱한 생각은 아닌데, 평생 성탄절에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없으니 조금 낯설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가? 그렇게 용서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죄를 방조하는 건 아닌가?
용서는 죄 지은 사람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며, 피해자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때 오직 피해자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용서할 권한도 없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대가까지 면제 받는 건 아니다. 죄를 지으면 죄 값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거기에 피해자의 용서가 덧입혀져야 비로소 죄에 대한 셈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처절한 반성은커녕 죄 값조차 치르지 않으려 드는 죄인이 얼마나 많은지.
노무현을 몹시 미워했다. 이유는 있었겠지만 그게 뭔지 생각도 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어서 싫었던 게 아니라 싫었기 때문에 이유를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그가 홀연히 떠나고,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그를 미워한 걸 후회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후회가 미안함으로 아픔으로 변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될 것으로 예상했고, 그렇게 되어서 마음이 놓였다. 비록 그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의 정부가 성공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칼럼에서 그의 정부가 달라야 한다면 무오류가 아니라 오류를 대하는 태도여야 한다고 쓴 걸 보고 크게 공감했다. 이제는 오류를 대하는 태도도 전임 정부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그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그라져 간다. 마음 같아서는 그에 대한 지지를 접고 싶다. 하지만 혹시라도 노무현을 미워하고, 그것을 후회하고 마음 아파했던 일을 되풀이 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아직은 지지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와 그가 이끄는 정부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