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23)
2009년 부임하고 나서 가장 불편했던 게 인터넷이었다. 느리기만 하면 다운로드 걸어놓고 기다리면 되는데, 걸핏하면 끊어져 받는 내내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 당시에는 한 시간에 100Mb 정도 내려 받았던 것 같다. 며칠 전 발표를 보니 인터넷 속도가 한국이 121Mbps로 1위이고 사우디는 77Mbps로 5위에 올랐다. 물론 이는 광케이블 인터넷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한 시간 걸려 받던 파일을 이제는 1초 남짓이면 받게 되었으니 10년 사이에 속도가 무려 3천 배 빨라진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1Mbps가 보잘 것 없는 속도이지만, Bps였던 속도가 Mbps로 바뀌었을 때 느꼈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을 하자면 본사와 현지법인이 협업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자료 교환이 원활해야 하고 화상회의도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부임 당시의 인터넷 속도로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맞추려면 통신사에 별도 통신선을 신청해야 하는데, 속도도 필요한 정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한 달 사용료가 엄청났다. 거의 천여 만 원에 육박하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용역이 아닌 공사부터 수행하게 되어서 이러한 조건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인터넷 속도가 급속하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용량이 큰 자료 주고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재작년인가 광케이블을 깔았는데, 그 전에도 퇴근하고 와서 방송 프로그램 다운로드 걸어놓고 씻고 식사하고 나면 뉴스에 드라마 한 편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광케이블이 들어오고 나서는 그저 몇 분이면 받을 수 있을 정도까지 빨라졌다. 스마트TV에서는 사이트에 접속해 직접 재생시켜도 버퍼링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인터넷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는 건 옛이야기가 되었다.
세상이 빨리 바뀌다 보니 앞섰다고 늘 앞서는 것도 아니고 뒤졌다고 늘 뒤지는 것만도 아니다. 예전에는 모든 설계도를 종이로 보관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설계도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하는 회사가 하나둘 생겨났는데, 우리 회사는 그 점에서 조금 뒤쳐졌었다. 당시 시스템개선 팀장을 맡게 되어 마이크로필름으로 관리하는 회사 담당자에게 조언을 부탁하니 자기네 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진 것이니 파일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했다. 당연히 그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 선발업체보다 앞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뒤쳐진 것이 오히려 판을 뒤집을 기회가 된 것이다. 사우디에 와서 지내면서 그런 면을 꽤 많이 경험했다. 인터넷 이용과 인터넷 보안 쪽에서 특히 그렇다. 속도가 한국보다 뒤진다는데,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도 않고 인터넷 보안 쪽에서는 오히려 앞서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속도가 느릴 때에도 (엉뚱한 의미의) 인터넷 보안은 우리보다 앞섰다. 최근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잘 모를 텐데, 나는 지금도 온라인에 이곳 정부에 대한 비판기사를 올리는 것이 조심스럽다. 나 같은 필부의 글을 누가 감시하겠나만, 그동안 주워들은 사례만으로도 그런 글 올리는 게 충분히 위축될 정도이다. 특히 교회에서 이에 아주 예민하다. 이곳에서는 메일이나 메신저에서 교회ㆍ목사ㆍ집사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는다. 꼭 써야할 상황이라면 ㄱㅎㆍㅁㅅㆍㅈㅅ와 같이 초성만 쓴다.* 물론 지금 인터넷 보안이 앞섰다는 게 그런 의미만은 아니다.
지나치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오래 전에 종교경찰이 예배 중이던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을 체포하고 끝내 목사가 추방된 일을 겪은 교민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교민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공간에 교회 이야기를 올리는 건 금기이다.
요즘은 카톡이 있어서 한국에 전화하는 게 이웃에 전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부임할 때쯤 한국에서 인터넷전화가 널리 쓰이기 시작해 부임하면서 몇 대 들고 왔다. 인터넷이 연결되면 아무 곳이나 사용할 수 있으니 당시로서는 가히 통신혁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함께 근무하던 미국인 동료가 그걸 보더니 신기해하며 구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요즘은 카톡 때문에 예전보다 덜 사용하기는 하지만 부임할 때 가져온 인터넷전화는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전화며 음성메신저가 모두 막혔다. 당시 카톡 말고도 음성통화가 가능한 앱이 몇 종류 있었는데 모두 마찬가지였다. 인터넷통신으로 통화수입이 줄어들자 통신사에서 막은 것이었다. 모두들 몹시 불편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VPN을 이용해 이를 우회하는 방법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법만 공유되었는데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라 곧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나타났다.
아마 2년 넘게 그런 불편을 겪었지 싶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음성메신저로 통화하는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어서 날이 갈수록 불만이 팽배해져갔다. 외국인이 겪는 불편에 대해 아랑곳 하지 않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 불만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지 어느 날 다시 복구시켰다. 완전히 열어놓은 건 아니고 인터넷 전화는 아직도 지역에 따라 그대로 막아놓은 곳이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VPN 없이도 통화가 가능한데 집에서는 아직도 VPN 유료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통신관련 공사를 하던 이웃에게 물어보니 아마 상업지역은 열어놓고 주거지역은 그대로 막아놓은 것 같다고 했다.
손녀를 얻고 나서 아이 얼굴 보자고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이폰을 쓰게 되었다. 애플제품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페이스타임으로 영상통화를 했는데, 나중에 애플제품에 페이스타임이 깔려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곳 통신사에서 수입해올 때 페이스타임을 제거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페이스타임을 제거한 게 아니라 이미 설치되어 있는 것을 막아놓은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웃돈을 주고 보따리상이 들여온 아이폰을 사야했다. 페이스타임 역시 인터넷전화와 마찬가지로 제재가 풀릴 때까지 한동안 사용할 수 없었다.
이곳 통신사로는 사우디텔레콤(STC)과 아랍에미리트 회사인 Mobily가 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고, 그 뒤를 쿠웨이트 회사인 Zain이 뒤따르고 있다. ITC라는 회사도 있기는 한데 점유율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ITC는 한국기업과 얽힌 뒷이야기가 있다.
2010년쯤이었을 것이다. 연매출 500억 원 규모의 회사가 사우디에서 1조 원에 달하는 통신공사를 수주했다는 뉴스로 리야드가 술렁거렸다. 대형 건설사도 쉽게 수주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것도 놀라웠지만, 연매출의 스무 배가 넘는 사업을 수주했다는 사실에 현지에 나와 있는 많은 지사장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사비 지급조건을 보고는 더 놀랐다. 기성 지급 없이 인터넷서비스 시작한 이후 사용자들에게 받은 요금으로 20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모두들 그 정도면 통신사가 땅 짚고 헤엄치겠다는 심산이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당시 본사 사장께서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이어서 상황보고 하느라 시간을 꽤 들였다. 아무튼 수주한 업체는 기업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뛰어올랐고, 사업권이 이 회사 저 회사에 넘어갔다고 했다. 결국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얼마 후 철수하고 말았다. 당시 여러 업체며 개인이 피해를 입었는데,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변변히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ITC는 지금 인터넷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실적이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는다.
통신에 관한 한 현재 사우디는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수리 신고하는 게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되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일이 없었다. 아마 광케이블이 들어오고 나서 자잘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일반전화와 인터넷과 묶은 패키지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일반전화를 사용하지 않으니 인터넷만 신청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요금이 더 내려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가세 인상 때문에 이젠 요금이 만만치 않아졌다. 우리 내외 모바일과 인터넷 요금이 한 달에 20만 원쯤 된다. 모바일에 인터넷 5GB 정도 사용하는 것도 4만 원에 가까운 걸 보면 한국보다는 분명히 비싼 것 같다.
모바일이나 인터넷 모두 통신사 지점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이곳에도 통신사에서 모바일과 요금제를 묶어서 판매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단말기를 사고 통신사에서는 번호만 받는다. 그러니 모바일 단말기 들고 가서 번호만 사면 바로 개통이 되고, 인터넷도 무선일 경우는 구매해서 즉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유선인터넷은 설치하는데 며칠 걸린다. 그래도 한 주일은 넘기지 않는 모양이니,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예전에는 선불 심카드의 경우 아무 제약 없이 누구나 살 수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불법체류자를 막겠다고 심카드를 개인당 세 개로 제한했다. 그게 불법체류자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안 들고 그저 불법체류자가 지불해야할 비용만 늘려놓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때문에 관광객이 불편을 겪고 있으니 관광대국을 꿈꾸는 나라답게 조만간 규제를 풀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