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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22. 2020

[사우디 이야기 24] 우편

사우디 이야기 (24)

부임 초기에 무슨 일인지 사장께서 주소를 보내라고 하셨다. 주소가 없으니 없다고 대답했다가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한 마디 들었다. 하긴 내가 대답을 듣는 입장이라도 말 같지 않다고 여겼겠다. 그때부터 2018년 4월 National Address가 생길 때까지 사서함을 주소로 사용했다.


부임 당시 우편물은 사서함으로 받는다고는 했지만 이용해본 일이 없고, 중요한 서류는 비싼 돈을 들여 특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한국과 서류 하나 주고받는 데 10만 원쯤 들었다. 한국에서 서류가 도착하면 전화로 연락이 왔고, 당시만 해도 구글지도가 생기기 전이어서 사무실 위치를 설명하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다행히 배달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는 되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가끔 한국에서 식재료를 보내올 때는 우체국 EMS를 이용했다. 송장번호가 있어서 물건이 사우디에 도착하는 것까지는 한국 우체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사우디에 도착한 이후에는 사우디 우체국 홈페이지에서 추적해야 하는데, 영문 서비스가 되기는 하지만 거기 나타난 내용이 요령부득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몇 번 헤매고 나서야 모든 소포가 일단 중앙우체국으로 가고, 거기서 사서함에 해당하는 지역우체국으로 배송되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EMS를 사용한지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한국에서 소포가 오면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야하는지, 기다리고 있으면 집까지 배달되는지 아직도 모른다. 주변에 EMS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는 걸 보지 못했다. 집에서 EMS를 받았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누가 받았다더라는 말만 들었다.


오륙 년쯤 전에 건물마다 주소를 적은 자그마한 명판이 붙었다. 지역명과 도로번호, 건물번호를 표시하고 QR코드도 함께 넣었다. 생각해보니 QR코드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거기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을까? 혹시 좌표가 들어있지는 않았을까? 얼마동안 서류 받을 때 이 주소를 썼는데, 어차피 특송서비스는 먼저 전화로 연락하고 찾아오니 이 주소를 쓸 일도 없었고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 주소는 그나마 빌딩 위주로 부여된 것 같았고, 가정집에는 붙어있는 걸 보지 못했다.



한 번은 생일에 며느리가 넥타이를 선물로 보냈다. 미리 말했으면 보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선물이다 보니 말하지 않고 보낸 모양이었다. 생일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말이 없으니 선물 받았느냐고 묻더라. 결국 이곳에서 못 받고 독일에 있는 아이들 집에 갔을 때 받아왔다. 독일에서 보낸 소포가 독일로 되돌아가기까지 석 달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그마한 물건 하나를 샀다.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온라인쇼핑으로 물건 사는 게 가능한지 알아볼 심산으로 잃어버리는 셈 치고 주문했다. 작은 것이니 주문하고 잊었는데, 그동안 사서함에 문제가 있어 담당자가 사서함을 바꾼 모양이었다. 배달하는 도중에 사서함이 바뀐 것이었는데, 먼저 사서함으로도 새로 바꾼 사서함으로도 소포가 배달되지 않았다. 작은 물건이다 보니 송장번호를 따로 받은 것도 아니어서 판매자에게 몇 번씩이나 연락해 그것도 석 달쯤 지나 받았다. 그것도 판매자에게 되돌아간 것을 다시 보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우디 우체국은 반송은 아주 잘한다. 며느리가 보낸 소포도, 온라인쇼핑몰에 주문한 소포도, 심지어 한국에서 친구가 정성들여 싸서 EMS로 보낸 소포도 돌아갔다. (EMS 소포 속에 홍삼 달인 것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통관에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면 본인에게 연락해줄 일이지 왜 묻지도 않고 반송을 하나?) 그래도 잃어버린 것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보다.


한국 가는 직항편이 있을 때에는 대한항공에서 교민들에 한해 수하물을 하나 더 받아줬다. 한 사람 당 23kg 수하물 두 개를 허용한 것이니 내외가 다녀오면 캐리어를 포함해 100kg는 거뜬히 넘어서 어지간한 물건은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직항이 없어지고 나서는 하는 수 없이 EMS를 이용해야 했는데, 한 곳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받아야 하니 누군가에게 수고를 끼쳐야했다. 우리는 아내 친구가 기꺼이 물건을 받아서 하나로 포장해 우체국까지 가서 보내주는 덕에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었지만, 사실 그건 형제에게도 부탁하기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러던 중에 여항우체국이라는 곳에서 물건을 대신 받아 하나로 포장해 보내준다는 안내장을 받았다. 소위 ‘합배송’이라는 서비스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 가져올 물건을 여항우체국으로 보내면 거기서 하나로 포장해 사우디까지 EMS로 보내주는데, ‘합포장’에 사용하는 박스 값만 받고 일체 다른 비용은 추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항우체국은 마산에 있고, 사설우체국으로 보인다. 요즘 동네마다 생긴 자그마한 우체국은 우정사업본부에 속한 직영점이 아니라 업무를 대신하고 수수료를 받는 협력업체에 해당한다. 매출에 따른 수수료가 수입이 되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매출을 확보하는 것이고, ‘합포장’은 매출 확보를 위한 마케팅 비용인 셈이다.


마침 한국에서 돌아오시는 이웃이 있어서 항공수하물로 가져올 생각으로 오늘 아침 여항우체국에 인천공항까지 합배송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건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합포장’은 EMS 매출확보를 위한 무상서비스인 셈이니 인천까지 보내는 요금을 받고 해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쉽게 수긍했다.


내친 김에 사우디까지 보내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물어봤다. EMS로 우체국 5호 상자(48cm*38cm* 34cm)에 넣어 20kg을 보낼 때 워낙은 212,000원인데 요즘은 특별운송수수료 72,000원이 붙어서 총 284,000원이라고 했다. 지난 10월에 사우디로 보낸 소포는 무려 50일이나 걸려 도착했다면서, 그나마 요즘은 배송이 너무 밀려 있어서 사우디 우체국에서 배송을 받지 않아 당분간 발송이 중단되었다고 했다. 아내는 늘 거래하는 방앗간에 부탁해 참기름을 짜 오는데, 우체국에서는 공산품이 아닐 경우 반입이 거절될 수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나 정도라면 괜찮겠다는 여운을 남기기는 했지만.


요즘 주변에서 ‘아부하킴’이라는 ‘합배송’ 서비스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집까지 배달해주고 기간도 1주일 내외라고 했다. 금액도 EMS와 비슷하다지만, 여기엔 특별운송수수료가 붙지 않는다니 오히려 싼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까지 배달해주려면 현지에 협력업체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만만한 일 같지도 않고, EMS와 마찬가지로 항공운송인데 EMS보다 훨씬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길을 뚫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거기에 비용까지 싸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엊그제 아내가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배송상자가 허술하더란다. 상자가 허술한 게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건이 너무 차이가 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챙겨보고 직접 담당자에게 확인까지 했는데 모두가 사실이었다. 상자가 허술하다는 말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물건 보낼 때 주의사항을 이야기해주면 포장 팀에 특별히 부탁을 한다고도 했다. EMS와 같은 조건일 경우 ‘빠른 배송’은 223,200원이고 5~9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느린 배송’은 212,400원으로, ‘빠른 배송’과 달리 물건이 어느 정도 분량이 될 때까지 기다려 한 번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운이 좋으면 ‘빠른 배송’만큼 빨리 받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1주일 이상 늦는단다. 만 원 남짓 아끼자고 선택할 것은 아니었다. 하나 유의할 점은 배송비는 1kg 단위로 책정하지만 구간효과 때문에 5kg, 10kg, 20kg을 넘어갈 때마다 kg당 가격이 10% 정도씩 뛴다. 그리고 식료품의 경우 종류가 무엇이든 제약이 없다고 했다.


‘아부하킴’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본 일이 없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EMS를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요즘은 National Address를 사용하고 있으니 배달하는데 문제도 상당히 해결되어 그저 앉아서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EMS와는 달리 송장에 적힌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가 부과되고, 관세는 물건 받을 때 배달원에게 지불하면 된다는데 아직 이용해본 이들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2018년 4월에 National Address 등록을 의무화했다. (등록절차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 등록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집 위치가 구글지도에 표시되어 쉽게 주소를 확인할 수 있어 등록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지난 코로나 통행금지 때 집 주변지역에 한해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을 허락했는데, 당시 자가 위치는 National Address 포털에서 출력한 것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한 일이 있다. (세대주 이름과 이까마 번호가 주소와 함께 들어있었다.)


https://cafe.naver.com/aefit/6975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했을 때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어서 다시 시도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는 분이 있어 물어보니 정확하게 배송되고, 유료배송일 경우 1주일 안에 도착한다고 했다. 무료배송일 경우는 그보다는 조금 늦어지지만, 그래도 2주일을 넘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경우 당연히 주문한 사람에게까지 직접 배달한다.


이렇게 써놓고 나서 보니 지난 10년간 사우디 참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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