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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14. 2021

뭐든 다 배달합니다

플랫폼 노동의 빛과 그림자

김하영

메디치미디어

2020년 11월


플랫폼 노동


매일 듣는 경제방송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책을 소개했다. 십여 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던 이가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경험하고 쓴 책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저자는 방송 인터뷰가 잡힌 전날 배달하다가 자전거가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팔을 다쳐 깁스한 채로 나왔다. 저자는 기자로 일하는 동안 플랫폼 노동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그런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고 했다. 저자가 한 말 중에 “글을 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정작 고치는데 몇 달 걸렸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플랫폼 노동 형태가 계속 바뀌고 있어 상황에 동떨어진 책이 될까 염려해서 내용을 고쳤고, 고치는 중에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어 그러다가 책을 영 못 낼까봐 서둘러 마무리했다고까지 했다. 나는 ‘플랫폼 노동’이라는 형태가 용어 자체가 선뜻 입에 붙지 않을 만큼 생소하다. 그런데 그 생소한 용어가 입에 붙기도 전에 다시 모습이 바뀔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란 말은 스마트폰, 앱 스토어 등을 매개로 한 노동과 서비스(용역)의 거래를 뜻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플랫폼 노동을 ①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② 단속적(1회성, 비상시성, 비정기적) 일거리 1건당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③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면서 근로소득을 획득하는 근로 형태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요기요, 타다, 카카오 드라이버 등이 그 예다. (한국일보 2020.10.21)


다음날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또 다시 저자를 만났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가 ‘플랫폼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진행자 한 분이 “은퇴자들에게 배달은 남는 시간에 무료함을 달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나서는 소일거리이고 배달요금은 기대치 않았던 수입이지만, 이들 때문에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달요금이 오를 수 없다”는 부분을 읽으며 크게 공감을 표시했다.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준비 안 된 은퇴자들에게 은퇴 이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는 외면한 채 사회구조적인 책임을 그 고단한 은퇴자들에게 전가하는 것 같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은퇴 나이를 넘긴 사람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다시 들어보니 기억과는 달리 진행자가 그 부분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지만, 우습게도 그 불편함 마음 때문에 “뭐라고 썼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저자는 그곳 말고도 여러 곳에서 같은 종류의 사례를 되풀이해서 들고 있는데, 그것을 현상의 하나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입견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괜히 헛심 썼다 싶어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짐작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배달을 그다지 시키지 않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저자가 생각했던 ‘배달’과 저자가 겪은 ‘배달’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자는 현장에서 플랫폼 노동이 본업과 부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느끼면서도 플랫폼 노동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이 이미 대세가 된 이상 그것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러기엔 배달요금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지 않을 만큼 배달요금을 올렸을 때 소비자가 과연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배달 일자리가 과연 더 늘어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 때문에 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 책의 초반부터 내심으로는 그러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쓴 동기에 대해 이미 답을 찾았다는 것인데,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설명할지 궁금해졌다.


방송에서 배달 라이더들의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일이 있다. 무엇보다 사고에 취약하다는 설명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성과급이란 아주 공평한 평가방법인 것 같지만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파괴시킬 수 있는지 평생 겪으며 살았다. 그러니 설명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라이더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짐작 못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높은 사고율로 나타날 것이고. 보험이 그 충격을 완화해줄 수는 있겠지만 사고율이 높으니 보험료 또한 비현실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0대 초반 라이더가 일 년에 감당해야할 유상운송보험료가 천만 원에 이른다는 건 정의롭지 않다. 이것을 배달요금으로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가 일정부분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반 오토바이의 사고율이 5.2%인데 반해 배달 오토바이의 사고율은 81.9%이다. 대부분 매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쿠팡물류센터에서 PDA에 로그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PDA가 지시하는 대로 집품하고, PDA를 로그아웃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PDA 뒤 어딘가 숨어있는 인공지능이 최적의 동선을 잡아주면 그저 그 지시를 따라 움직이면 될 뿐이다. 자기 움직임이 기계와 다름없어지는 걸 깨닫게 되면서 저자는 로봇으로 이 모든 과정이 대체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한다. 비록 로봇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인건비보다 낮아지기까지 다소 시간을 걸리겠지만.


저자는 택배나 대리운전 모두 우리 사회가 신뢰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처럼 비대면접촉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자동차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건 신뢰가 없다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십년 넘게 해외에 살다보니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지난 해 서울에 갔다가 가까운 곳에서 사기 어려운 물건이 하나 필요해서 인터넷쇼핑 앱을 깔고 주문을 했다. 당연히 집에서 기다리다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언제쯤 배달되는지 궁금해 했는데, 문 앞에 두고 가니 개의치 말고 외출해도 된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아서 이곳저곳에 물어보니 물어보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내가 사는 사우디는 이제 막 주소가 생겨 아직도 배달은 반신반의하는 상태이고, 문 앞에 물건을 두고 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곳에서나 불법체류 노동자를 마주칠 수 있는 상황에서 재산은 물론 자신의 안위를 대리기사에게 맡긴다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술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어서 음주운전 단속도 없으니 대리기사가 필요할 일이 없지만.


저자는 플랫폼 노동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일감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꼽는다. 손님 없는 가게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릴까 궁금했는데, 저자는 콜 없이 시간이 흘러갈 때 대리기사의 멘탈도 함께 무너진다고 했다. 저자는 첫 번째 대리기사 일로 30분 동안 9,600원을 번다. 시급 19,200원. 최저임금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입이었다. 그러나 콜 없이 30분이 더 지나자 최저임금 수준으로 떨어졌고, 결국 하루 수입은 시급의 60%를 조금 넘었다. 심야수당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콜 없이 시간이 흘러갈 때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소득 플랫폼 노동자’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철저하게 체험한다.


플랫폼 노동의 빛과 그림자


저자는 십년 넘게 기자로 일한 경험에 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고 박진감 있게 끌고 나간다. 책을 읽으며 기자는 그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기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취재의 연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스스로 취재기자의 색깔을 지우려고 몇 달 동안 거의 다시 쓰다시피 문장을 고쳤다고 했다. 유머도 간간이 섞고. 과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책이 끝날까봐 남은 분량을 확인하며 읽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으니 그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그가 경험한 것을 나열하고 말았다면 재미는 있었겠지만 나 역시 읽고 책을 덮었겠지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4장, 그것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저자는 집필 의도를 드러낸다. 결국 지난 200여일의 플랫폼 노동자 생활은 4장 후반부를 쓰기 위한 팩트체크였던 셈이다. 여기에 실린 현실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다행히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많았고, 기술 발전으로 사회 전체의 부는 늘어났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부를 따질 겨를이 없이 당장 생존의 위협을 걱정해야 하게 되었다. 결국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실업을 낳는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실업만 낳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일자리 또한 계속 생겨난다. 다만 새로운 일자리는 진입장벽이 높고 점점 그 수가 적어지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차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최저임금 수준의 단순 업무 일자리가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이 지금의 불평등이다.”


진단이 나왔으니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면 해법은 자연스럽게 도출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의 모든 시스템은 회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래서 국가는 회사를 지원하고, 회사는 가장을 지원하고, 가장은 가족을 책임지는 구조가 오래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숙련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효율적인 업무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업무 판단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끊임없는 효율 추구와 기술 발전으로 더 적은 관리자가 더 많은 업무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큰 보상을 받는 성공적인 고위 관리자와 말단 실무자만 남고 중간 관리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결국 중산층이 사라지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복지체계가 무너지고 국가가 복지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국가 복지조차 여전히 회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실업급여는 회사에 일정 기간 다닌 뒤 해고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같은 혜택도 회사에 고용되어야 받을 수 있다. 사회안전망이라는 고용보험도 회사 중심이어서 별 구실을 못한다. 산재보험은 플랫폼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회사에 고용되었다고 해서 이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노조 조직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려간다.”


결국 저자는 국가의 복지 전달체계의 중심이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아가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모든 국민이 사회 자본을 공유하는 방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로 대미를 장식한다.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최대한 수익이 나게 하고 그 수익을 국민들에게 배당의 형태로 골고루 지급한다. 그러면 국민이 기업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자신들이 도태되도록 만든 기술 발전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모든 국민이 사회 자본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논리적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최적의 방법이지만, 사회는 언제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잠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효과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상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렇게 사는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한다. 한동안 북유럽 강소국들이 그런 예로 거론되었지만, 그 경우 역시 이미 흘러간 역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문제를 지적하고는 있지만 소시민인 내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다만 플랫폼 노동의 현장에서 문제에 직면했던 저자가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제안했던 해법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보는 것이 저자의 후속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잠시 당의정 맛에 홀려 약을 털어 넣듯 곳곳에 버무려넣은 적절한 유머와 감동의 코드에 홀려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나 채 목에 넘어가기 전에 당의정이 녹아 입맛이 쓰듯 마지막 장에서 묵직하게 한 방 맞은 기분이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 그의 문제 제기가 자기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을 조금은 바꿔놓았다.


책 소개에 홀려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의 정진과 후속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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