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온라인을 넘어 일상의 의제가 되고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댓글은 글쓴이와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을 텐데, 이젠 댓글을 단 사람끼리 공방을 벌이고 심지어는 패싸움이나 조리돌림에 이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다른 의견으로 공방을 벌이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나. 때로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면 그것도 사회가 성숙해 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패싸움에 조리돌림까지 일어나는 데 예의가 무슨 아랑곳일까 싶기는 하다.
귀감이 될 만한 글을 올리는 페친이 한 분 있어 늘 관심을 가지고 올리는 글을 챙겨보고 있다. 어제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여러 사람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그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어도 처음 겪어본 일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글을 올린 페친께서 민망하셨던지 불 끄러 나서 주셔서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마무리가 되었다.
온라인의 글이라는 게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글쓴이와 독자의 관계라고만 여겼던 것이 불찰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예의를 기대하는 게 부질없다는 걸 미처 몰랐다. 그동안 내 글에 댓글이 달리고 다른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달고, 그러는 가운데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한 경우는 있어도 서로 예의는 잃지 않았는데, 그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아무 곳에나 뛰어들어 댓글 다는 일은 삼가야 하겠다. 자칫하면 늪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같은 말 되풀이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누군가 그렇게 만들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밖에서는 그런대로 통제가 되는데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아내에게 더 그랬다. 아내는 내가 그럴 때마다 남편이 맞나 싶었다고 했다. 암으로 투병한 분의 책에서 몸이 괴로워 아내에게 마음에도 없는 섭섭한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가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것 같기는 한데, 아내도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나아진들 예전에 아내 마음에 입힌 상처가 지워지겠나.
일반화의 오류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선택적 기억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에 일어나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서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약자나 소수자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공부도 하고, 그들과 함께 분개하기도 했다. 내가 그들의 반대편에 서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사소한 습관 하나라도 고치려 했다. 또 약자나 소수자를 위해 애쓰는 분들의 글도 읽고 기회가 되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최근 십여 년 사이의 일이었고,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마치 내가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으로,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왔다.
깊은 생각 없이 댓글 하나 달고 혼이 나면서 든 생각이다.
면도날 값이 여간 비싸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아낀다고 늘 두 팩으로 된 묶음을 사다가 작년에는 한 팩만 샀다. 한 팩을 사면 한 해는 족히 쓸 수 있는데, 돌아가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뭐 하러 짐을 늘일까 싶어서였다. 오늘 아내 따라 장보러 갔다가 면도날 두 팩 묶음을 사가지고 왔다.
오 헨리가 쓴 ‘경찰관과 찬송가’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뉴욕에 사는 노숙자 소피가 교도소에서 엄동설한을 날 작정으로 무전취식을 하고, 상점 진열장에 돌을 던지고, 지나가는 여성을 희롱한다. 놀랍게도 모두가 그를 측은히 여겨 감싸는 통에 그의 시도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그렇게 밤길을 걷다 찬송가 소리에 끌려 교회에 들어간 소피는 회심을 하고 인간답게 살기로 작정한다. 굳은 결심을 하고 교회를 나선 소피는 곧 거리단속을 하던 경찰관에게 체포되고, 다음날 즉결재판소에서 그렇게 가려고 애썼던 ‘뉴욕 교도소 3개월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수년 간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아무 돌파구도 찾을 수 없어 작년 초에 이곳 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 뜻조차 이루지 못하고 한 해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 해를 맞았다. 의미 없이 또 한 해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어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오 헨리의 소설이 생각나서 피식 웃고 말았다. 마음 고쳐먹고 나니 어느 날 벼락같이 돌아가라 하실까 싶어서. 오늘 면도날 두 팩 묶음을 사면서 이삿짐만 늘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는 했는데, ‘그깟 작은 거’ 싶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가까이 지내는 형님 집사님께서 늦게 첫 손녀를 보시게 되어 매우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몹시 낯설어하셨다. 기쁜 가운데에서도 처음 겪는 일이어서 허둥지둥 한다고 하셨다. 예배드리기 전에 뵙고 반갑다고 농을 던지는 나를 아내가 얼른 끌고 가면서 따님이 사산을 했다고 했다. 숨이 막혔다. 칠순을 훨씬 넘겨 처음 얻은 손녀인데, 얼마나 이 날을 기다리셨는지 곁에서 지켜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데. 위로는커녕 충격에 내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제대로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했다. 예배 끝나고도 얼굴을 바로 뵐 수가 없었다. 큰 슬픔을 당한 분께 제대로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러웠다. 교회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저녁 무렵에 겨우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구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걸 차단했다고 해서 소란스럽다. 국가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유해 사이트이니 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차단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게 일상이었던 세월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에서이건 국가가 통신이나 표현과 관련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악한 정책이라 해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출발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하고, 적어도 지금 이 정부에서 그것을 악용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언제까지나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고, 후일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날 우리를 옥조이던 악한 정책이 처음부터 악한 의도로 시작했었나? 선의에서 출발하였으나 악용된 경우도 있고, 악한 의도로 출발하였음에도 그것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경우도 적지 않잖은가.
온라인에서는 이미 차단을 우회하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는 모양이다. 악용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고 이미 그 기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쓸데없이 소란만 일으키는 결정을 되돌리기 바란다.
저녁 식탁에서 십 년 전 오늘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로 지금껏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했다. 이 땅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십 년쯤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내 잇속만 차리는가 싶어서 차마 그렇게 기도하지는 못했다. 두어 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몹시 낙심해 있었는데, 오늘 십 년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드리다가 차마 구하지 못했던 소원까지도 잊지 않으시고 응답해주신 은혜를 기억해냈다.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그 낙심 때문에 그것이 은혜였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워 그저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구했다.
근래에 비록 작지만 그동안 열심히 발품 판 것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리라 마음먹었다. 이것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지난 두 해를 낙심해서 그저 흘려보내는 것으로 현업을 마감하기가 너무 아쉬웠는데, 이로써 마지막 순간을 붉은 낙조처럼 화려하게 수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아름답겠다, 그래서 더 큰 감사를 돌릴 수 있겠다 싶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비록 머리엔 서리가 내렸으나 감사와 열정을 잃지 않게 하시니, 오히려 더욱 깊어지게 하시니 어찌나 감사한지.
부쩍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내 친구 하나가 갓 낳은 손녀가 수술을 받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염려 가운데 지내고 있는데, 아이보다 그런 아이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딸을 보는 걸 더 힘들어한다. 혜인네는 가까이 지내던 교우 한 분이 남편 직장 때문에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가 갑자기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어 유치원 다니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 우선 급한 대로 한국식품점에서 몇 가지 챙겨 보냈고, 의사로 일하고 있는 교우 한 분이 몇 시간이나 걸리는 그곳까지 가서 의사를 만나 상태를 알아보고 돌아왔다고 했다. 의사가 설명해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을 테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고마웠을까. 오랫동안 기도해오고 있는 환우 한 분이 있는데, 상태가 많이 나빠지셨는지 도통 온라인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둘러둘러 소식을 물으니 연명치료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했단다. 그만큼 상황이 나빠지셨다는 말이겠다.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이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듣는데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그저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 말고는 달리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가까우면 찾아가보기라도 할 텐데. 새벽마다 이 분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기도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으니 그것이라도 좀 더 힘을 내야겠다. 혼자 하는 기도도 들으시겠지만 아내와 마주 앉아 기도드리면 좀 더 귀 기울이시지 않을까. 내일부터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아내와 함께 시간을 정해놓고 합심기도를 시작해볼까 한다. 그러다 보면 작은 손길 하나라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