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모습이 변화된다고 한다. 온화하게 변한다는 말이지 싶다.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말일 것이니, 얼른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기도를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 믿는다는 건 사서 고생하는 일이라는데,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생한 일이 없는 나는 뭐냐?
문득 첨밀밀에 나오는 노래가 생각나 흥얼거리며 다녔다. 아련했던 영화 장면도 생각나고. 숙소에 돌아와 유튜브를 여니 바로 첨밀밀 영화 한 장면이 뜬다. 그 노래가 배경으로 흐르고.
무슨 조화일까? 예전 같으면 내가 그 노래 그 영화를 떠올린 것과 그 영화가 유튜브에 뜨는 걸 우연으로 생각했겠는데, 이제는 두 사안이 어떤 형태의 데이터로 엮여 있을까 싶은 생각부터 든다. 누군가의 어떤 손길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무서운 세상이다. Big Boss가 공상세계를 이미 벗어나 우리 삶에 이미 뛰어든 모양이다.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건 기적이라 아니 할 수 없는데, 사십 년을 살면서도 때로는 마음이 갈리기도 하니 말이다. 어렵게 새 출발을 한 막내아우를 위해 기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들이 서로 깊이 사랑해서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허락해주시기를 구했다.
90년대 후반에 북한 신포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다 중단한 일이 있다. 당시 영변 원자력연구소를 봉인하는 대가로 한미일 삼국이 세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우리 회사에 부지평가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가격이 맞지 않았고, 그때만 해도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여서 결국 응하지 않았다.
당시 해외사업은 단가가 국내사업의 두 배 정도였는데, 북한은 바로 코앞이지만 해외보다 오히려 작업환경이 어려워서 그 이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야 장비 수리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후방지원이 원활치 못한 곳에서 작업을 하려니 모든 장비며 부품을 두 배로 준비해야 했고, 다른 여건도 이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주처에서는 앞으로 이루어질 남북교역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국내단가와 해외단가의 중간 정도를 희망했다. 우리가 참여하려 했던 사업이야 규모가 얼마 되지 않지만 그것이 기준이 될 경우 감당해야 할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으니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얼마 전, 지난 연말 실시했던 남북 철도 공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상태가 시원치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저 노후한 정도가 아니라 침목이 썩어서 레일을 제대로 붙들어주지 못했고, 간혹 레일이 떨어져 나가기도 해 속도를 제대로 못내는 정도가 아니라 탈선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건설사업의 핵심 중 하나인 수송능력이 이 정도라면 건설단가가 훨씬 늘어나야 할 테니 남북경협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질지도 모르겠다.
당장이야 남북 합의가 시급한지라 건설비를 염려할 상황이 아니지만,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면 이것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않는 대로 걱정, 이루어지면 이루어지는 대로 걱정이라는 말이다. 정부에서 이래저래 마음이 참 분주하겠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촉발된 논쟁에서 나이 셈법이 낙태를 금한 근거로 등장했다. 우리는 태아를 생명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기간을 헤아려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쳤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더라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독특한 나이 셈법은 차례를 나타내는 서수의 개념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태어난 첫 번째 해, 두 번째 해, 이렇다는 말이다. 실록에서 세종 원년, 세종 2년 이렇게 헤아리는 것처럼.
나도 태아를 생명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나이를 헤아렸다고 여겨 왔고 외국인 동료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설명하곤 했는데, 설명하면서도 어딘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나이 셈법이 서수 개념이라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렇게 들렸다는 말이다. 더도 덜도 아니고.
남에게 짐이 되지 않을 때까지만 살게 해주시면 좋겠다.
혜인이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제 부모가 유치원 들어갈 때까지 독일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독일어를 배우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책을 보니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언어를 따라 형성된다고 한다. 언어로 표현하는 만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니, 결국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 아빠 엄마가 독일어를 오래 써오기는 했지만 어차피 외국어라 완벽한 독일어를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아주 적절한 판단이 되었다.
처음 유치원 들어갔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어했지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과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같은 반 친구들 독일어 숙제를 봐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둘째 혜원이는 제 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니 상황이 좀 다를 것인데,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항공편이 지연되는 바람에 말씀집회 시작 시간에 겨우 맞춰 교회에 도착했다. 연습도 못하고 찬양대에 섰다. 익숙한 곡이기는 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악보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지휘자를 제대로 보지 못해 결국 전체 찬양을 흩트렸다. 언젠가 연습하지 않고 찬양을 드린 일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늘 연습을 하고 찬양을 드렸는데. 하루 밤을 자고 났는데도 부끄럽고 불편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생각해보니 출장이라는 이유로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이번 한 주는 낙제를 면치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