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by 박인식

실천 (2019.05.01)


오랫동안 교회 청년들과 함께 지내면서 늘 식사기도를 빼놓지 않기를 당부했다. 이미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조금은 엉뚱한 당부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스스로에게 깨우치는 길일 뿐 아니라 남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드러낸다면 삶이 그를 따라가게 되기 마련이 아닌가.


올 들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중심의 삶을 버리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그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자면 만날 때 먼저 인사하고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면 말수를 줄여야 할 것이니, 거창한 결심이나 구호보다는 먼저 이를 실천해야 하겠다.



이방인 (2019.05.01)


일자리를 찾아 온 외국인으로 십 년 넘게 이방 땅에서 머물고 있다. 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방인으로 사는 게 고단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기회를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겪은 푸대접은 오히려 그보다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 이집트인 현장책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제 그만 두고 돌아가고 싶단다. 이유를 물으니 오히려 내게 이곳의 삶이 고단하지 않더냐고 묻는다. 혜인 아범보다도 젊은 나이인데 얼마나 시달렸으면 채 십 년도 못 채우고 돌아갈 생각을 할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주변에 외국인 근로자가 있으면 좀 잘 대해주시라.



수심 (2019.05.03)


성경 중 우리 삶과 가장 비슷한 부분이 사사기가 아닐까 싶다. 복 받고 잘 살다가 곁길로 빠지고, 그러다가 얻어터지고 깨지고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살려놓으면 잠시 정신 차린듯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어디쯤에 해당할까? 터지고 깨지는 중일까? 그렇다면 조만간 다시 살려놓으실 텐데, 지금 같아서는 잠시 정신 차리지도 못하고 바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사사기를 읽는데 문득 나라 걱정에 수심이 깊어진다.



출장 (2019.05.06)


결혼하고 십 년 넘게 집에 있는 날보다 출장 가는 날이 더 많았다. 두 해 가까이 현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 오고가는 데 하루씩 걸리니 휴가 한 번 가려면 최소 사나흘은 잡아야 해서 매달 집에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어렵게 집에 갔으니 조금이라도 집에 더 있겠다고 대부분 밤차를 타고 현장에 돌아왔는데, 그런데도 나는 굳이 아침에 집을 나섰다. 남들 다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시간에 빨래 보따리를 들고 출장 가는 게 너무 처량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들였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지금도 밤에 출장 가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밤에 출장을 떠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적응되지 않는 건 여전하다.



이웃 (2019.05.13)


상종하기 싫은 사람은 외면하고 살아왔다. 오늘 아침, 그 또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웃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종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에 빗장을 지르고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했는데, 이웃이라는 걸 깨달았으니 빗장은 풀어야 하겠다.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와 노니는 게 못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러자면 일단 표정부터 풀고, 말도 건네고. 저게 갑자기 미쳤나 하겠다.



이웃 사랑 (2019.05.13)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청하고 위로 받고 싶은 사람으로 나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요 또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크게 무리하지 않겠다.



소임을 다하려 함 (2019.05.15)


이 땅의 삶이 끝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인데, 그 때가 되면 이 땅에서 이루려 했던 모든 일들이 하찮은 일로 여겨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땅에서 이루려 했던 일이 그대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게 허락하신 소임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루려 했던 그 자세는 그곳에서도 그대로 가치를 지니게 되지 않을까. 사는 날 동안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구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2019.05.17)


얼마 전, 내일 일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오늘 일만 생각하고 오늘 일에만 집중하고 오늘을 살고 있다. 내일도 오늘을 살고, 그 다음 날도 오늘을 살면 되는 일. 삶이 이렇게 단순하고 홀가분할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했나 싶다.



노래 같은 삶 (2019.05.17)


노래 부를 때 변화무쌍한 음을 자유자재로 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음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 마치 삶이 그런 것처럼.



머리 허연 어린이 (2019.05.17)


어버이날도 지나고 해서 큰 누님 집사님께 식사라도 하자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어린이날 나한테 밥 사줘야 하는 거냐고 물으신다. 머리 허연 어린이. 그 어린이 참...



이웃을 위한 기도 (2019.05.18)


이웃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그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려움을 나누어 질 수 있는 구체적인 마음이 들게 된다. 우리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서 우리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시는 것이니, 그러자면 그분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한다.



꼬마 손님 (2019.05.21)


며칠 전 다녀간 꼬마 손님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한테 겉절이 좀 싸달라고 말해봤냐고 제 엄마에게 묻더란다. 어린 입맛에도 꽤 맛있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아이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이 흐뭇했던지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환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싸달라고 할 만큼 아이가 우리를 편하게 여긴 것 같아서 흐뭇했고.


아이가 맛있게 먹는 걸 봤으면 좀 싸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 집엔 넉넉히 싸서 보냈단다. 집에 가서 열어보고 좋아했겠다.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거지, 뭐 별 게 있겠나.



지난 시간 (2019.05.24)


돌이켜 보니 지난 시간을 ‘어렸을 때’라고 이야기했지 ‘젊었을 때’라던가 ‘한창 때’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젊었을 때’라고 이야기할 만큼 나이 들지 않았고 ‘한창 때’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상 바꾸기 (2019.05.24)


몇 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설거지 때문에 시끌시끌했다. 식사 준비하는 구역에서 설거지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매번 사람이 모자라서 부르러 다녔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어느 날부턴가 그냥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문제가 해결됐다. 밥 먹고 나면 으레 설거지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문제를 탓할 게 아니라 나부터 시작하면 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문제가 보이면 내가 할 일이 뭔지 살피고, 그저 그것에만 정신을 쏟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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