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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03. 2021

아파트가 어때서

보편적 복지로서의 토건 인프라

양동신

사이드웨이

2020년 12월


그동안의 한국경제가 토건경제였으며, 그로 인해 실물경제가 더 이상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거품이 붕괴하는 디커플링에 접어들었다고 일갈한 학자가 있다. 그는 토건경제는 반생태적이어서 생태계에 위기가 오는 건 불가피한 일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탈토건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디 그 학자뿐이겠는가. 토건을 사회악으로 여기고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토건족이라고 하며 배척해야할 무리 정도로 여기는 모습은 하도 여러 번 봐서 새롭지도 않다. 그렇기는 해도 평생 그 토건족의 무리에 들어 살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그런 가운데 한 토건기술자가 토건 인프라가 생태계 파괴를 어떻게 최소화했는지 사례를 들어가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다.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책인데, 책 제목만큼이나 그의 주장도 도발적으로 여겨질 만 하다고 했다. 추천사를 쓴 이들도 늘 신뢰할만한 글을 쓰는 이들이어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노르웨이는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한 댐에서 전체 소비전력의 95%를 생산해 청정 환경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해유전에서 생산한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수출해 얻은 수익으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워냈다. 자연환경 훼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터널은 도로나 터널을 건설할 때 일어나는 훼손을 오히려 최소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철도나 도로의 고속주행이 점점 더 요구되는데 이를 감당하려면 노선의 경사도는 낮아지고 곡선반경은 커져야 한다. 이럴수록 훼손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터널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는 셈이다.)”


“콘크리트는 환경을 악화시키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모든 토건구조물의 뼈대가 되는 요소로 그것을 빼놓고 현대문명 사회를 말할 수 없다.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건폐율을 낮추고 용적률을 높여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었다.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문제 삼지만, 이를 철이나 나무로 대신할 경우 그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콘크리트는 재활용이 늘어나 차츰 순환골재로 자리 잡아 간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설치함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한강수계에 건설한 댐은 수도권 주민들을 홍수 피해로부터 보호했고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서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ㆍ네덜란드ㆍ프랑스ㆍ일본 할 것 없이 제방축조ㆍ간척ㆍ운하 같은 구조물들을 건설함으로서 자연을 극복하고 인류가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ㆍ로테르담과 같이 이름에 ‘담dam’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도시가 많은데, 모두 간척의 흔적이다.)”


물론 열거한 바와 같이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토건 인프라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그런 문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토건 인프라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을 몇 가지라도 열거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밝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문제 이전에 그로서 우리 삶이 엄청나게 개선되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 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토건 인프라는 보편적 복지라는 점을 말하려 한다.


저자는 토건기술자로 국내 뿐 아니라 중동ㆍ아시아ㆍ아프리카 현장을 다니면서 치수 인프라가 부족할 때 비가 조금만 내려도 다리가 무너지고 마을과 마을이 분리될 수밖에 없으며, 담수화 시설이 없으면 맑은 물도 마실 수 없고, 발전소가 없으면 산업도 시작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라크에서는 석유매장량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항구와 철도망이 없어서 수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다. 결국 그 토건이라는 인프라가 없으면 인류가 지구에서 이렇게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되면서 토건인프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억울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그것이 이 책의 집필동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주택 인프라, 특히 아파트에 대한 세간의 비판적 시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책 제목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아파트는 건폐율을 높여(좁고 높게 지어) 지상공간을 확대함으로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었으며, 집합주택으로 냉난방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하였고, 고압으로 전기ㆍ수도ㆍ가스와 같은 유틸리티를 공급해 비용을 절약하였고, 인구밀집으로 오히려 온실가스가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합리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한정된 땅에 천 만 인구를 수용하자면 아파트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택의 문제도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는 면적이 서울의 3.3배에 달하는데 인구는 80%에 미치지 못한다. 인구밀도로 보면 리야드의 4.3배에 달하는 것이니 서울에서는 주택을 위로 쌓는 것 말고 어떤 다른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는 건축비는 앞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아파트 후분양은 궁극적으로 공급을 위축시키고 건축비를 높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리한 제도일 것이라는 주장에 눈길이 끌렸다.


주택 건축비는 모든 토목건축공사와 마찬가지로 재료비ㆍ노무비ㆍ경비로 이루어지는데, 그 세 가지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되기 마련이어서 그 요소의 합인 건축비는 당연히 인상될 수밖에 없다. 집값은 건축비 말고도 여러 요인으로 결정된다. 요즘의 집값 변동 추이를 보면 건축비는 집값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 부차적인 요소로 보일 정도이다. 그렇기는 해도 건축비의 비중이 결코 무시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므로 건축비 인상이 집값 인상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집값 등락을 예측할 때 건축비 인상이 고려되지 않는 걸 보면 지금 집값은 상식의 틀 밖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저자는 후분양제가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키고 금융조달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결국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그룹 신년인사 자리에서 건설ㆍ건축자재를 총괄하시던 회장께서 기업으로서는 선분양제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는 하지만 비상식적인 모델이니 후분양제로 바뀌는 것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셔서 놀란 일이 있다. 나는 평생 토건분야에서 일해 왔고 그룹의 주축사가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지만 아파트 선분양제에는 부정적이다. 그런 내게도 그 발언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저자는 우선 후분양일 경우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 차액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말한다. 또한 건설업체의 자금 여력이 취약할 경우 금리 부담이 더욱 커지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업체는 사업이 더욱 위축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아파트 건설에 최소한 2~3년이 걸리는데 준공 이후 주택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건설업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후분양제는 전체적으로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켜 소비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평생 재산인 아파트를 실물도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원론적 지적도 그렇고, 하자 확인이 어렵다는 실질적인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후분양이더라도 하자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일부분에 국한될 뿐이고, 하자 발생은 분양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건설업체의 품질관리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선분양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선분양은 신뢰가 전제된 사회에서 모두가 리스크를 함께 줄여가자는 진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에게는 후분양 선택권을 주고, 리스크를 감내하겠다는 이에게는 선분양 선택권을 돌려주자는 것이다. 다만 획일적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토건회사에서 평생 일했지만 토목 인프라사업에 참여했을 뿐 건축에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선분양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일반 소비자의 시각이었지 건축업 종사자의 시각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분양제도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것에 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며칠 전에 서울 아파트 값의 평균이 고가 주택의 기준인 9억 원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공급확대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후분양제가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킬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거의 그럴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강제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 아닌가 한다. 저자가 제안한 대로 선택권을 소비자와 건설업체에 돌려주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당초 이 책이 토건 인프라를 부정하는 시각에 대한 반박일 것으로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추천사에 언급된 것 같이 “개발과 보전의 낡은 이분법을 깼다”거나, “인텔리겐치아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거나, “지자체장으로 출마할 사람들이 숙지하고 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내용”을 찾지 못했다. 추천사야 홍보용 글이니 크게 비중을 둘 일이 아니었는데 그만 추천한 이의 이름에 걸려들었다. 이미 몇 번 겪고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했다.


토건기술자로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경험을 겪었겠으나 토건 인프라와 관련한 내용 중에 아쉬운 부분이 몇몇 눈에 띄었다. 오류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견강부회라고 여길 부분에 있었다. 하나 예를 들자면,


저자는 보도블록을 매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도시 지역 대부분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는 비교적 젊은 지층이어서 압밀침하로 보도블록 밑의 지층이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인천공항의 공사 중 침하량이 0.5미터 향후 20년간 잔류침하량이 2.5센티미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에 조성된 지층이 젊은 것하고 압밀침하가 일어나는 것은 별 상관이 없다. 압밀침하는 점성토(진흙)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사질토(모래흙)에서는 즉시침하가 일어나 공사가 끝날 때쯤이면 침하가 모두 끝난다. 낙동강 유역은 압밀침하의 대표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적용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 하구지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압밀침하 때문에 보도블록을 매년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없느니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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